[이만수 칼럼] SSG 한유섬 선수의 ‘효율 이전에 노력의 축적을’ 소개합니다
집에서 모처럼 편안하게 쉬고 있는데 아내가 “여보~ 혹시 한유섬 선수 기사 읽어 보았어요?” 하는 것이다. 한국에 들어오자마자 정신 없이 전국을 또다시 뛰어 다니다보니 아내가 이야기 한 한유섬 기사를 보지 못했다.
아내가 찾아서 기사를 보여 주어 편안하게 쇼파에 앉아 한유섬 선수가 쓴 글을 천천히 다 읽어보았다. 한유섬 선수가 어린시절부터 야구를 시작해 얼마나 많은 노력과 힘든 과정들을 걸쳐서 여기까지 올라오게 되었는지 보게 되었다.
한유섬 선수 기사에 유독 많은 관심이 가는 것은 그의 야구관이다. 한유섬 선수는 이제 어느 정도 프로의 세계에서 자기 입지를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의 자리에 서 있음에도 교만하지 않고 언제나 프로 첫회에 입단한 선수처럼 초심을 잃지 않고 성실하게 야구와 가정에 최선을 다하는 선수다.
모처럼 야구인의 진솔한 글을 읽고 잊혀져 가는 옛 추억들을 다시금 새록새록 기억나게 해주어 고맙다. 나이가 들면 체력을 키우기 위해 많은 연습보다는 젊은 시절에 가졌던 강한 멘탈을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미 한유섬 선수는 그것을 너무나 잘 알고 글로 설명했다. 야구인으로서 그런 한유섬 선수가 너무나 자랑스럽다. 그가 이야기한 내용을 여기에 옮긴다.
“효율 이전에 노력의 축적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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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SSG 랜더스의 한유섬입니다.
저에게 칼럼 제의가 들어왔을 때, 저보다 더 성적이 좋은 선수도 많은데, 제가 해도 괜찮은지 걱정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글을 쓰게 된 것은, 고교 시절에 한 번 드래프트라는 관문을 통과하지 못한 선수가 대학을 거쳐 상무 시절을 포함해 11년간 프로에서 쌓은 경험이 야구 후배들에게, 또 야구를 사랑하는 팬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야구를 시작한 이래, 배트를 손에서 놓는 게 항상 불안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경남고 때나 경성대 때는 다음날 아침에 수업 등이 있으니까, 대개 밤 10시가 되면 연습장 불이 꺼지고 연습도 끝납니다. 그때까지 연습하다가 들어와서 잠시 쉰 후, 숙소 불도 꺼지고 다들 잠이 들었을 때 다시 배트를 들고 나가서 밤공기를 갈랐습니다. 매일 같이.
그때는 너무 힘들어서 타협하고 싶은 마음도 컸습니다. 오늘 하루만 배트를 내려놓고 쉬고 싶었습니다. 너무 힘드니까요. 그런데 하루를 쉬면 왠지 그게 이틀이 되고 일주일이 될 것 같은 강박이 있어 배트를 내려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 강박이 생긴 건 중학교 때부터입니다.
아버님이 하루는 “남들처럼 해서는 절대로 살아남을 수 없다”고 말씀하셔서, 집에 돌아온 후 개인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안 하던 걸 하려니까 힘이 들어서, 그냥 배트만 들고 놀이터 벤치에 앉아 있다가 들어간 적도 있었습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할 필요가 있느냐는 불만도 들었으니까요. 그런데 벤치에만 앉아 있다가 들어가는 시간이 아깝게 느껴져 하루에 10번 배트를 돌리던 게 20번 스윙하고, 그게 100번이 되고 500번 스윙이 됐습니다.
그렇게 연습하는 게 루틴이 돼, 하루라도 개인 연습을 안 하면 찜찜한 마음이 들어 빼먹을 수 없게 됐습니다. 다만 노력의 결과물로 나름 경남고에서도, 경성대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뒀지만 드래프트 미지명의 아픔도 겪었고, 드래프트에서 하위 순번(9라운드)에 지명되는데 그쳐 아쉬움도 크게 느꼈습니다. 그만큼 노력하고 결과도 냈는데, 드래프트에서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아 실망도 꽤 컸습니다.
매일 같이 노력하는 것이 힘들지만, 그 노력이 결과로 나타나면 힘듦 속에서 성취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경기에서 좋은 결과가 동기부여가 됐지만 드래프트에서 한 차례 실패하고, 대학에서도 9라운드 지명에 그쳤을 때는 자존심도 상하고 제가 노력한 것에 비해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아니라서 노력에 대한 회의감도 컸습니다.
그런데 프로에 들어가니까 9라운드라는 지명이 제가 보여준 것에 딱 맞는 결과라고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지명된 후, 마무리 훈련에 참가해 기존 선수들과 함께 연습해 보니까 말로만 듣던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됐기 때문입니다.
퓨처스 선수들이라고 해도, 능력은 뛰어난 데 기회를 못 받는 선수도 적지 않습니다. 퓨처스에서 타율 3할을 치며 날아다녀도 KBO리그로 못 올라가는 선배님들. 그 선배님들 가운데는 나이만 보면 저보다 작은 분들도 많았는데, 연습량 등에서 제가 따라가지를 못했습니다. 처음에는. 아마와 프로와의 격차, 그것을 프로 1년 차(2012년)를 보내며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습니다.
아마추어 때도 그렇지만 프로에서도 정말 쉬지 않고 배트를 돌렸습니다. 그렇게 하면 코치님이 지나가다가도 눈에 띄니까, 지켜보고 무엇인가 조언을 해주실 것이라는 바람도 있었습니다.
사실 프로라면 선수가 먼저 코치님을 찾아가서 조언을 구해야 하는 것이지만, 아마추어 때의 습성이 남아 있어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묵묵히 배트를 돌렸습니다. 경기 후 실내 연습장에서 피칭 머신 등을 상대로 끊임없이 치니까, 코치님들이 와서 봐주시며 조언도 많이 해주셨습니다.
다만 코치님들의 조언을 완벽하게 소화하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 나날을 보내다가, 도저히 지금처럼 소극적으로 해서는 기량 향상이 더딜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극적으로 코치님들이 저에게 찾아오기를 바라는 게 아니라 제가 일부러라도 찾아가 조언을 구하게 됐습니다.
김경기 코치님을 비롯해 김용희 감독님, 이만수 감독님 등 많은 분이 도움을 주셨습니다. 특히, 김용희 감독님은 단 한번도 저에게 좋은 말을 해주신 적이 없었습니다. 항상 쓴소리를 해주셨는데, 그게 저에게는 피가 되고 살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도움 속에 운 좋게도 프로 동기생 가운데는 제가 가장 먼저 KBO리그에 올라갔습니다. 2012년 5월 3일 광주에서 열린 KIA전이었습니다. 사실 대타로 나갈 수도 있어 준비를 계속하고 있었는데, 12회 초에 그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상대 투수는 유동훈 선배님이었고, 초구를 쳐서 우익수 플라이 아웃이 됐습니다.
너무나도 아쉬웠습니다. 타석에 들어설 때는 선두 타자라서 어떻게든 버텨서 출루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딱 치기 좋은 공이 들어와서 무의식적으로 몸이 반응해 배트가 나갔습니다. 살짝 타이밍이 늦어 외야 뜬공에 그쳤습니다. ‘더 자신 있게 배트를 돌렸다면’이라는 아쉬움이 크게 남았습니다. 뜬공으로 아웃되고 더그아웃에 돌아오니까, 선배님들이 “괜찮다, 괜찮다”라고 하시면서 “이렇게 배워나가는 것”이라고 격려해 주신 것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오히려 프로 첫 안타는 잘 맞은 타구가 아니었습니다. 방향이 좋아 첫 안타를 신고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야구가 정말로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잘 맞은 타구는 안타가 되지 않고, 빗맞은 타구가 안타가 될 때도 잦습니다. 또 찰나의 타이밍 차이로 안타가 되기도, 홈런이 되기도, 뜬공이 되기도 합니다.
야구는 운의 요소가 크게 작용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운에 기대기만 해서도 안 됩니다. 결국에는 제가 할 수 있는 준비를 다하고 결과는 하늘에 맡길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준비는 끊임없는 연습과 노력입니다.
아마추어 때부터 쉬지 않고 배트를 휘두르니까 손바닥에 물집과 굳은살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런 험한 손바닥을 노력의 상징처럼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과학적 야구라는 측면에서 보면 물집과 굳은살로 울퉁불퉁한 손바닥은 ‘비상식’적입니다. 왜냐하면, 배트를 쥔 손바닥이 울퉁불퉁한 만큼, 스윙 궤적이 미세하지만 흔들릴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즉, 좋은 타구가 나올 확률이 떨어집니다.
물론 선수라면 굳은살을 칼로 베어내는 등 손바닥 관리도 게을리하지 않지만, 효율이라는 측면에서는 손바닥이 울퉁불퉁해질 때까지 배트를 휘두르는 것은 미련한 행동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저를 비롯한 대부분 프로 선수가 그런 노력을 하는 것은 어제보다 더 나아지고 싶다는 ‘욕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과거에는 죽을둥 살둥 연습하는 ‘워크 하드’(Work Hard)가 미덕이었다면, 요즘은 효율적으로 일하는 ‘워크 스마트’(Work Smart)가 중요하게 여겨집니다. 그러다 보니까 워크 하드는 무조건 나쁜 것으로 치부되는 경향도 있습니다. 하지만 워크 스마트는 워크 하드의 토대 위에서 자라난다고 생각합니다.
굵은 땀방울이 혈관을 타고 흐르는 기쁨. 그것을 느꼈을 때, 사람은 한 단계 더 성장하게 됩니다. 그리고 효율성과 같은 요령은 노력의 축적 없이는 사상누각과도 같습니다. 무의미한 듯한 노력도, 시행착오도, 그것 역시 성장의 자양분이 됩니다. 노력과 실패 없이 요령만 추구해서는 변화에 대응하기 어렵습니다. 잘 되지 않을 때, 스스로 수정하고 보완하는 능력은 흘린 땀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제가 야구를 해오며 배우고 느낀 점이며, 지금도 지켜나가고 있습니다. <글 한유섬, 에디터 손윤, 유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