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종필 칼럼] 42년 전 아버지의 ‘육필 유훈’
어버이날을 맞아 42년 전 아버지의 ‘육필 유훈’을 사진첩에서 꺼내 보았다. 내가 1981년 군대에서 제대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아버지와 무슨 대화 끝에 아버지는 한문을 인용하여 교훈적인 한 마디를 해주셨다. 어려운 한문이라 나는 적어달라고 했다.
이러면 보통 사람 같으면 후다닥 적고 설명해주면 그만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 아버지는 꼼꼼하기 이를 데 없는 분이셨다. 마치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서간용 양면 괘지를 상자에서 꺼낸 다음 볼펜을 정식으로 잡고 한 글자 한 글자 인쇄하듯 또박또박 박아주셨다.
“하늘이 지은 재앙은 어길 수 있지만 스스로 지은 재앙은 살아남지 못하느니라.”
사진에서 보는 구절은 맹자가 <서경>(書經)을 인용한 부분으로 “禍福無不自己求之者”(화와 복이 자신으로부터 구하지 않는 것이 없다)라고 한끝에 말한 것이다.
어려운 글자의 훈과 음을 따로 달아주신 것은 꼼꼼한 아버지로선 당연한 일이지만 새삼 훈훈한 부정(父情)이 느껴진다. 오랜 세월로 인해 종이는 빛이 바랬지만 아버지께서 주신 교훈과 정성 어린 글자는 빛이 더해진 것 같다.
당시에는 꿈에도 몰랐지만, 그때 우연한 기회에 나에게 써주신 육필은 결과적으로 아버지의 유훈이 되었다. 당신께서는 다음 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아버지의 육필 유훈은 단번에 42년 세월의 간극을 뛰어넘어 그때 그 장면으로 나를 데려다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