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10일 취임 한돌 윤대통령 “지난 1년 가장 중요한 건 인내심”
미국 국빈방문을 마치고 지난달 30일 귀국한 윤석열 대통령이 2일 대통령실 출입기자들과 오찬간담회를 열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미국 가셔서 재미있는 얘기들 좀 전해 주십시오.
“재미가 별로 없었던 것이 아침부터 밤까지 일정이 너무 많아 가지고, 밤에 오면 다음 날 할 것 챙겨봐야지, 그리고 회의 한 번씩 하잖아요. 의전팀 와서, 아침에 일찍 와서 의전과 회의하고, 밤에는 다 끝나고 늦게 들어와서 안보, 경제수석 하지, 미국에 있는 동안에 잠을 거의 서너 시간씩밖에 못 잔 것 같아요. 비행기 안에서, 여기 국내 일이 바쁘니까 봐야 될 자료도 전부 비행기 안에서 다 보고, 올 때는 비행기에서 좀 잤는데, 갈 때는 앉자마자부터 내릴 때까지 계속, 바인더 이만한 것을 주거든요. 저것을 토요일 날 넘겨받았나? 주말에도 회의하고 이랬으니까 정신없이 보냈어요. 이번에는 특히 행사가 많아 가지고요.”
‘아메리칸 파이’를 어떻게 부르셨는지 들을 수 있을까요?
“미국 출국하기 전에 우리 의전에서 미국 쪽 의전이 나하고 우리 집사람 좋아하는 음악을 몇 개 알려주면 만찬장이나 또는 끝나고 공연을 하는데 들려준다고 그래서 나는 돈 맥클린(Don Mclean) 곡 세 개를 주고 그중에 아무 것이나 하면 좋고, 안 되면 로보(Lobo)의 ‘I’d love you to want me’하고 ‘We’ll be one by two today’, We’ll be one by two today는 한미 동맹을 함께 간다는 뜻이 있잖아요. 그 정도 알려줬어요. 그러면 자신들이 알아서 하겠지, 근데 돈 맥클린을 데려오려고 했는데 돈 맥클린이 호주 공연 중이어서 이미 다 약속하고 다니는 것이니까 못 온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냐고 했죠. 근데 뮤지컬 가수가 3명이 왔어요. 브로드웨이에서 하던 사람들인데, 하나는 ‘팬텀 오브 오페라’, 한 사람은 ‘지킬 앤 하이드’, 레아 살롱가는 ‘미스 사이공’으로 유명한 사람인데, 미국 대통령과 서서 만찬 리시빙을 받잖아요? 1시간 서서 쭉 오는 손님들 맞이하는데, 레아 살롱가가 오더라고요. 나는 이 사람을 봤지요. 둘이 서로 굉장히 친밀하길래 가수로 온 것이 아니라 뮤지션으로 대통령 부부하고 잘 아니까 초대받은 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까 이 사람들이 노래를 하는 거예요. 팬텀 오브 오페라 하나 하고, 식사하고 다른 방으로 옮겨와 가지고 지킬 앤 하이드 노래 하나 하고, 미스 사이공에 나오는 굉장히 대표적인 킴의 노래가 하나 있어요. 그걸 다 하더니 셋이서 돈 맥클린의 아메리칸 파이 1절을 부르더라고요. 맥클린이 없으니까 이 사람들이 대신 해주는 구나, 갑자기 바이든 대통령이 무대 위로 내게 올라와 달라고 하는 거예요. 내가 이러고 있으니까 질 바이든 여사가 손을 잡고 올리고. 내가 약간 당황스럽고, 집사람도 옆에 앉았거든요. 질 바이든 여사가 여기에 앉고요. 보니까 가라고 그래서 올라갔더니, 돈 맥클린 사인한 기타 준다는 것은 만찬장 직전에 내가 들어서 이게 기타 주려고 하는 모양이구나 그러고, 누가 저쪽에서 기타를 들고 있어요. 저것을 선물 받는구나 그랬더니 바이든 대통령이 ‘아메리칸 파이를 불러달라(I want you to sing American Pie)’고 하더라고요. 내가 가사도 생각이 안 난다고. 만찬이나 전날 친교 행사를 굉장히 정성스럽게 준비했는데 안 한다고 할 수도 없고, 그래 가지고 앞에 1절 한 소절 그것을 그냥, 근데 부르니까 또 생각이 나더라고요. 옛날에 많이 불렀던 것이라 생각이 나는 거예요. 만약에 가사가 생각이 안 났으면 아주 망신당할 뻔했어요. 내가 거기 노래하러 간 것도 아니고 그냥 뮤직 가이드까지 하면 된다, 거기는.”
하버드대 갔을 때 질문이 날카롭지는 않으셨어요?
“원래 질문이라는 것은 다 날카로워요. 받는 사람은 날카롭고, 던지는 사람은 부드럽다고 생각하고 던지는데. 질문 던지는 사람들이 3명이었는데, 전부 학생이에요. 케네디 스쿨 학생인데, 일본 학생은 일본 외무성 외교관이에요, 유학 온 사람이에요. 여자 학생은 언론인이고, 독일인데, 미국 NBC에서도 근무하고 했다는 것 같던데, 자기가 스스로 밝히더라고요. 그리고 파키스탄 여학생이 물어봤는데, 그 여학생은 나하고 대담 진행한 나이 교수의 제자, 나이 교수 지도반 학생이에요. 그러니까 그 학생은 워싱턴 선언의 확장억제를 물어봤는데, 나이 교수가 묻고 싶은 것을 그 친구를 통해서, 나는 나중에 알았어요. ‘그냥 학생’이 아니니까 질문이 어떻게 보면 날카롭죠.”
대통령께서 역대 대통령들보다 취임 초기에 지방을 제일 많이 방문하셨는데, 그만큼 지역 발전에 대한 애정을 갖고 계신 것이라고 저희가 분석하고요. 지역을 그렇게 많이 강조하시는 특별한 이유 같은 것을 가지고 계신지요.
“지역이 균형 있게 발전해야 된다는 것은 당연한 상식인데, 선거 때 내가 아마 후보 중에, 경선, 본선 후보 중에 지역을 제일 많이 다녔을 거에요? 엄청나게 다녔어요. 선거 때 주식이 김밥과 샌드위치였으니까요. 온전한 밥을 먹어본 적이 별로 없을 정도로 엄청 다녔어요. 나는 캠프 사무실에 앉아 있는 것보다 시간 나면 카니발 타고 돌아다니는 것이 체질에 맞더라고요. 돌아다녔는데 당선인 때도 사실 상당히 바빴거든요. 인사를 한다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당선인 때도 통의동에 사무실이 있었지만 광화문 근처에 호텔을 하나 잡아 놓고 거의 1시 전에 퇴근해 본 적이 없었어요. 지방을 무지하게 다녔잖아요. 대통령직을 해도 선거 때와 똑같이 하겠다는 생각이 기본적으로 있어서 대통령이 됐다고 바뀌는 것이 아니라 선거 때 보여준 그 모습 그대로 가급적이면, 물론 여기는 해외에도 나가야 되고 하니까 아무래도 지역 다니는 것이 제한은 있죠, 여기에서 또 행사도 있고 일도 많고 하니까. 어떻게든 시간을 만들어서 계속 임기 말까지, 해외도 많이 다니고, 금년 1월 초에 올해는 해외 순방, 그리고 전국을 다니면 용산에 출근하는 날이 며칠 되겠나 했는데, 여기는 여기의 일이 있으니까 출근도 많이 하게 되는데, 가급적이면 많이 다니려고 그래요. 많이 다니면서 사람들과 만나서 얘기를 들어 보고, 예를 들면 이런 산업 현장 같은 데 있잖아요? 전기차 공장이나 지난번에 디스플레이 공장, 바이오 제조시설, 연구소 가보면 앉아서 장관들한테 보고 받고 이러는 것보다 가서 눈으로 실제 보는 것이 과학기술 정책이나 R&D 정책이나 이런 것을 할 때 쏙쏙 잘 들어와요. 그러니까 가서 현장을 봐야 돼요.”
대구에서 시구할 때도 나이나 그동안의 커리어에 비춰 봤을 때 공을 잘 던지신다 이런 평가도 있었다. 이번에 (한미 정상) 만찬 노래도 다들 놀랐지 않습니까? 그리고 의회 연설도 다들 놀라는 분들이 많을 테고, 그래서 스타덤이 그 전과 비교해서 생기신 것 같은지, 그다음에 스타덤을 실감하고 계시는지요?
“대통령이라는 직책 자체가, 스타라는 것이 딴 게 뭐 있겠어요? 많은 사람들한테 알려지는 인지도죠. 그러니까 대통령이라는 직업 자체가 스포츠 스타나 또는 문화예술계 스타처럼 그런 자세를 가지고 있으면 더 잘할 수 있겠죠. 그런데 모르겠어요. 저도 시작할 때는 대통령이라고 하는 스타성 있는 일, 이게 약간 어색하더라고요. 그런데 1년 지나면서 좀 익숙해지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말이에요, 정치 처음 시작할 때는 TV 토론 인터뷰한다고 방송국을 가니까 분장실로 데려가서 막 하는데 그때 내가 정치 괜히 시작했구나 (일동 웃음) 나는 살면서 헤어드라이어 한번 안 써본 사람인데, 수건으로 이렇게 하고 이렇게 하던 사람인데, 얼굴에 로션도 발라본 적이 없는 사람이에요.”
취임 1주년 기자회견을 하실 건지요?
“1년 동안 뭘 했고, 어떤 변화가 있었고, 이런 것은 국민들과 공유하고, 또 앞으로 어떤 식으로 이 변화를 끌고 할 것인지, 개혁, 혁신, 이런 것보다는 저는 그냥 변화라는 것을, 이게 아무래도 개혁 하면 순간적인 것 같고, 변화라는 것은 지속적인 것이니까, 이게 함께하는 것이니까 그런 것을 보여는 주고 싶은데, 기자회견이 될지 간담회가 좋을지, 홍보수석이 시키는 대로 해야지요.”
이번에 회담 마치고 나서 중국에서는 불편한 반응들이 몇 번 나왔습니다. 그런 반응들이 대통령님께서 생각하시는 범위 안에서 있는 정도의 수준이었는지요?
“중국이 우리한테 적대행위만 안 하면 서로 계약을 정확히 지키고 예측 가능하게 하고, 상호존중하면 중국하고 얼마든지 경제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고. 우리가 중국이 필요로 하는 물건을 우리가 안 주는 것도 아니고. 현재 그런 것 없어요. 기술이든 상품이든 중국에 수출 통제하는 것 없습니다. 한미 간 워싱턴 선언하고 핵 기반으로 안보협력을 업그레이드 하는 것을 우리한테 이의를 제기하고 비판하려고 하면 핵 위협을 줄여주든가 적어도 핵 위협을 가하는 데 대한 안보리 제재는 국제법은 지켜줘야죠. 국제법 중에 중요한 게 UN 결의 아닙니까? 안보리 결의에 위반한 것에 대해서 제재에 전혀 동참을 안 하면서 우리보고 어떻게 하라는 얘기에요. 우리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요. 제가 하버드대학 질의에서도 정권 담당자가 바뀌면 바뀌는 것 아니냐 하는데 ‘형성 행위’를 한 것도 아니고 불가피한 상황에서 만들어진 시스템인데 정권 담당자가 바뀐다고 바뀌겠느냐, 당연히 핵 기반으로 업그레이드 됐어야 하는 거다. 전부 방어체계이지 공격체계라는 게 있나요?”
넷플릭스는 첫 번째 일정이었는데 분위기는 어땠나요?
“내가 하버드대학에서 그 이야기 했지만 K-콘텐츠가 세계적인 매력을 끄는데 정부가 해준 게 없다. 투자 하고 싶으면 하면 되는 거고. 다만 우리는 규제 때문에 못하겠다고 하면 문화는 싱글 마켓으로 가는 게 맞기 때문에 풀어주겠다는 거고. 투자하면 하는 거죠. 오히려 내가 테드 회장한테 물어봤어요. 한국에 투자하면 되지 몇 년동안 얼마 하겠다고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냐? 물어봤어요. 한국의 히스토리가 아주 매력적이다 이거예요. 그때는 그냥 그런가 하고, 밤에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까 옛날에는 헐리우드 콘텐츠가 많았잖아요. 미국이 제일 잘 살았단 말이에요. 어릴 때 미국 드라마나 영화 보면 잔디 쫙 깔린 집에 자동차 캐딜락에 햄버거도 먹고 블루진도 입고 어릴 때 사먹기도 어려운 코카콜라 먹고 이러니까 미국 콘텐츠를 봤단 말이에요. 지금은 영화관에 가려고 하면 영화관 하나 지으려면 돈이 얼마 들어요? 영화가 만 원이면 적어도 10불 줘야 하잖아요. 지금은 아프리카 저개발국가에 가도 휴대폰 다 있고 넷플릭스로 본단 말이에요. 이제 그 사람들한테 매력이 있으려면 한국이 딱 맞다는 거예요. 옛날에 못살았다가 지금 잘살아서 콘텐츠도 다양하고. 못 사는 나라에서 봐도 재미있거든요. 2019년도에 기생충을 우리 식구와 보고 나오면서 이런 것은 엽기적인데 이런 것을 보자고 하느냐 이랬는데 오스카상을 몇 달 후에 받더라고요. 그때는 이해를 못했어요. 이번에 미국에 가서 테드 회장하고 얘기하면서 깨달았어요. 기생충을 보세요, 못사는 사람, 잘사는 사람 다 있어요. 비가 오면 자기 집 안으로 물이 들어와서 우리 옛날 7-80년대에 신림동 친구 집에 가서 물 퍼다 나르고. 지금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공감하는 숫자가 많은 거죠. 그러니까 스토리가 아주 매력적이라는 이야기예요. 한국의 스토리가 폭이 넓다는 얘기예요. 물론 우리가 잘 만드는 센스와 능력도 있지만 우리 한국사람들의 일상의 스토리가 굉장히 버전이 넓다는 뜻인 것 같아요. 한국 스토리 가지고 만들어내면 사람들이 전 세계에서 많이 본다 이거죠.”
대통령님께서는 우리나라의 모든 고급정보를 다 보고 받으시고 다 아시잖아요? 1년 동안 하시면서 비판하거나 공격하는 여러 가지 목소리들 중에 참고할 만한 것도 있지만 팩트 자체를 잘 몰라서 그런 것도 많을 텐데 고급 정보, 모든 정보를 다 알고 계시는 입장에서는 어떤 측면에서는 답답하신 것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하거든요. 사실대로 다 이야기할 수도 없고.
“정보라는 것은 참고사항이지, 정보 가지고 정치를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정보를 가지고 정치하는 것은 소위 말해서 모작 있잖아요? 이발소 그림 계속 그리는 거나 다름이 없고. 그림을 잘 그리려면 화첩을 많이 봐야 하는데 그 화첩을 가지고 옛날에는 그런 그림 그렸잖아요. 정보를 머리에 넣고 그냥 잊어버려야 하는. 세상에 이런 게 있구나 하고 참고하고. 중요한 안보에 관한 정보 같으면 다르겠지만, 그것은 정보 가지고 거기에 터잡아서 정치하고 이런 건 아니니까. 결국은 나도 국민에게 모든 실상을 잘 알려주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민주주의라는 게 억지로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고. 그리고 팩트를 공개한다고 해도 안 믿어요. 많은 사람이 모바일화해서 너무 정보가 많이 들어오니까 2000년대 초반 정도, 내가 판·검사 할 때만 해도 언론사도 몇 개 없어서 정보가 많지 않았어요. 그때는 언론도 크게 이쪽저쪽으로 갈라지지도 않았고 정당도 마찬가지예요. 지금은 모바일화 되면서 정보가 너무 많이 들어오니까 그것을 꼼꼼히 볼 수가 없어요. 방향을 딱 잡으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확증 편향,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싶은 것만 듣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한단 말이에요. 그런 사회에서 국민에 대한 설득이라고 하는 것이 쉽지가 않아요. 설득을 하려고 하면 아주 고도화된 커뮤니케이션 전문 영역이 있어야지 그냥 대변인이 가서 ‘이거입니다’라고 말한다고 해서 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역효과가 날 수 있다 이말이에요. 간접적인 방식, 어차피 꾸준히 우리 사회의 변화를 만들어 나가고, 변화라는 게 더 잘살 수 있는 변화죠. 나는 어떤 신념이라는 게 뭐냐면 계획 경제로 잘 살 수 없다 이거죠. 그러니까 정부가 생각하는, 정부가 계획한대로 100% 달성이 되면 그 사회는 내가 볼 때 별로 발전을 못 할 거예요. 내가 ‘이것 하겠습니다’ 공약을 하고, 이것 이것하면 우리나라 잘 된다고 해서 정말 운좋게 국회 다수당 가지고 있어서 만약에 100% 플랜을 달성한다고 했을 때 과연 우리나라가 지속가능하게 잘 될 수 있는 나라라고 나는 안 봅니다. 실패도 할 수 있고. 뭐를 트라이 하는데 기득권의 저항이라고 해서 반대 때문에 못할 수도 있는데 어떤 시도를 하고 어떤 노력하느냐 하는 것이 사회를 바꾼다고 봐요. 예산이 배정돼서 실시를 하는 것, 그것도 물론 사회를 바꾸겠지만 뭐를 위해서 어떻게 노력하고 어떤 변화를 위해서 노력하느냐 하는 그 노력 자체가 사회를 바꾼다고 봐요. 결국 바꾸는 것은 사람들이 바꾸는 거거든요. 정부가 바꾸고 대통령이 바꾸는 게 아니에요. 대통령과 정부는 사람들이 생각을 바꾸고 바꿔나갈 수 있는 분위기를 자꾸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어떤 것은 우리가 다수당이니까 한방에 예산도 만들고 했어, 그런데 일순간으로 이렇게 됐구나. 이런 복지 혜택이 주어지는구나. 그걸 변화라고 말할 수 있나요? 예를 들어서 중위소득 몇 %, 얼마 이상 몇십 퍼센트 늘려서 지원을 한다, 이런 것 보다 과학기술이 더 발전할 수 있는, 교육이 더 발전할 수 있는 뭔가를 해보려고 교육에 어떤 다양성과 창의를 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제도를 추진하는데 그게 제대로 반대가 되고 그것을 위해서 강하게 논쟁하는 과정을 국민이 지켜보면서 양쪽 이야기 다 들어보니까 이런 쪽으로 가는 게 좋겠네, 또는 반대가 좋겠네 라고 생각을 하면서, 어떤 이슈에 대해서 지나쳤다가 생각하게 되는 것이 우리 사회가 더 발전하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뭔지는 알 수가 없어요. 그래서 정보를 알고 있다고 해서 정보를 잘 설명하고 이야기한다고 해서 거기에서 직접적인 결과가 오는 건 아니기 때문에. 하여튼 1년 하면서 느끼는 것은 가장 중요한 덕목은 인내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