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비추어리] ‘미니스커트’ 혁명가 메리 퀀트
그녀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면, 여성들은 불편했을 거다.
치마를 입고 마음대로 뛰어다니고, 핸드백 없이 편히 외출하며, 화장한 고운 얼굴로 눈물 흘릴 자유 세가지 말이다.
미니스커트를 유행시켰으며, 원피스에 주머니를 달아 핸드백 없이도 나들이 할 수 있게 했다.
방수 마스카라도 발명해 슬플 때 화장을 지우지 않고, 마음껏 눈물 흘릴 자유도 여성에게 선물했다.
21세기 패션에서 성별의 경계가 허물어진지는 오래다. 남성이 진주 목걸이를 착용하고, 여성들은 넥타이 패션을 즐긴다.
구찌 홍보대사 아이유는 밀라노에서 열린 패션쇼에 슈트와 함께 넥타이를 매치한 세련된 넥타이 스타일링을 했다.
훨씬 앞서, 1960년대 패션의 유행을 이끈 ‘미니스커트 선구자’로 알려진 메리 퀀트가 하늘의 별이 됐다. 향년 93세.
<BBC>는 “퀀트가 13일 오전 서리의 자택에서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스윙잉 식스티즈’(Swinging sisxties)를 정의한 미니스커트를 대중화한 게 그다.
시크한 디자인에 편안함과 실용성을 결합한 혁신가로 오랫 동안 찬사를 받았다.
퀀트는 1955년 런던 첼시 킹스로드의 부티크 ‘바자’에서 패션을 처음으로 선보였다.
BBC는 바자에 대해 “스윙잉 런던의 심장이 됐다”고 회고했다.
이어 “퀀트가 미니스커트를 창시했는지 의문이 있지만, 미니스커트를 유행시켰다는 점은 논쟁의 여지가 없다”고 단언했다. 미니스커트 뿐아니라 핫팬츠, 보브컷을 유행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외 패션계 인사들 사이에서는 그를 추모하는 물결이 이어졌다. 1960년대 패션의 아이콘 트위기는 인스타그램에 “퀀트는 1950년대 후반~1960년대 초반 젊은 소녀들에게 영향을 끼쳤다”며 “그는 패션을 혁신한 인물이고, 뛰어난 여성 기업가였다”고 적었다.
NYT 패션 디렉터 바네사 프리드먼은 “여성의 다리를 해방시킨 메리 퀀트의 명복을 빈다”며 “우리는 당신에게 빚을 졌다”고 깊이 추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