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최우성 한겨레 대표 취임사 “세상을 바꾸려면 우리 한겨레가 먼저 바뀌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한겨레 동료 여러분.
저는 오늘 한겨레신문사 제19대 대표이사의 책무를 시작합니다.
세상이 온통 잿빛만 같던 시절, 새 신문이 세상에 나온다는 소식에 들떠 친구들과 함께 주머니 속 5만원을 창간기금으로 보탰던 스물두 살 청년이 35년이 지나 이 자리에 서 있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임기가 끝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떨쳐버리기 힘들, 무거운 책임감과 극한의 긴장감이 저를 사로잡습니다.
지난 주말 한겨레 정기주주총회 현장은 올해 초 불거진 불행한 사건의 파장이 어느 정도인지 실감하게 해준 무대였습니다.
이른 시간부터 주총 현장을 찾은 주주들, 특히 오로지 새 신문에 대한 열망 하나로 한겨레 탄생의 밑돌을 놓았던 창간 주주들은 날 선 언어와 거친 몸짓으로 충격과 상실감을 토해냈습니다.
숨길 수도, 피할 수도, 부인할 수도 없는 한겨레의 현주소입니다.
내부 구성원들이 입은 상처의 골이 섣불리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깊다는 점 역시 잘 알고 있습니다.
무겁게 깔린 침묵의 공기 속에 서로를 갈라놓는 믿음의 벽, 마음의 벽만 더욱 두터워지는 것 같아 안타깝고 착잡합니다.
이런 가운데 2023년 우리를 둘러싼 여건은 더 없이 열악합니다.
대내외 경기 상황은 하루가 다르게 나빠지고,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치와 무역 질서의 낯익은 틀은 빠르게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곧 출범 1년을 맞는 윤석열 정부의 행태는 많은 이들의 땀과 눈물로 일궈낸 민주주의의 성과를 위협하며 우리 사회를 다시금 퇴행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마냥 주저앉아 있을 순 없습니다.
다시 일어서야 합니다.
위기의 신호음에 주눅 들어 지레 움츠러들어서도, 방향을 잃고 오로지 당장의 수지 방어와 생존만을 갈구해서도 안 됩니다.
거침없는 쇄신과 전환의 에너지를 내부 동력 삼아 한겨레를 넘어선 한겨레로 거듭 나야 할 때입니다.
설령 눈앞에 닥친 당장의 위기를 어렵사리 버텨낸다한들 지각이 변동하고 생태계가 뒤바뀌는 더 큰 위기의 한복판으로 내몰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쇄신과 전환의 보폭은 콘텐츠 ? 인프라 ? 사람 ? 조직 문화 ? 수익모델 – 경영의 모든 분야를 예외 없이 관통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독보적인 ‘한겨레 저널리즘’의 가치를 이정표 삼아 언론으로서의 한겨레를 다시 세워야 합니다.
마케팅과 테크놀로지는 미디어로서의 한겨레를 튼튼하게 자리매김하는 토대입니다.
낡은 관행과 제도, 조직 문화의 대수술은 기업으로서의 한겨레를 다시 태어나게 하는 경영 혁신이어야 합니다.
단지 지난 대표이사 선거 과정에서 여러모로 부족한 제가 던진 이야기라서가 아니라,
결국엔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이자 좌표이기 때문이라 여겨주시길 간곡히 당부드립니다.
35년의 시간 동안 켜켜이 쌓인 한겨레의 역사는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자부심의 원천이자, 동시에 반드시 풀어야 할 힘겨운 숙제입니다.
불신과 냉소, 방관과 체념이 쇄신과 전환의 열망을 결코 잠재우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모든 한겨레 동료들과 함께 반드시 증명해보이고 싶습니다.
35년 전 한겨레를 탄생시켰던 우리의 선배들도, 한겨레의 구성원으로 지금 이 순간 새로운 한 주의 아침을 맞이하는 우리들 모두도 어쩌면 하나같이 세상을 바꾸고 싶었던, 세상을 바꾸고 싶은 사람들입니다.
정녕 세상을 바꾸려면 우리 스스로가, 한겨레가 먼저 바뀌어야 합니다.
당부와 다짐의 진심을 담아 첫 인사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23년 3월 27일 대표이사 최우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