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한겨레’ 현장기자 41명 성명 “문재인 정권 법무부에 유독 관대…어설픈 정권 감싸기” 비판

한겨레신문 창간호

<한겨레>는 지난 2019년 9월 ‘조국 보도 참사’ 성명을 발표할 때와 견주어 달라진 게 없습니다. 지난 30년 동안 ‘성역’ 없이 비판의 칼날을 세웠던 <한겨레>는 조국 사태 이후 ‘권력’을 검증하고 비판하는 데 점점 무뎌지고 있습니다. 청와대나 법무부 관련 의혹 취재는 가장 늦게 시작했으며, 결국 빈손으로 빠져나오기 일쑤였습니다. 최근에는 한발 늦은 취재를 넘어 이용구 법무부 차관의 운전 중 폭행을 감싸는 기사를 썼다가 오보 사태를 맞이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일들이 결국 현장에서 무기력을 넘어서 열패감을 느끼게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소통이 잘 된다”, “균형 잡힌 보도”라며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 하는 국장단을 향해 절박한 심정으로 현장 기자들의 뜻을 모아 이 성명을 씁니다.

<한겨레>는 문재인 정권의 법무부에 유독 관대했습니다. ‘윤석열 새 혐의…’양승태 문건’으로 조국 재판부 성향 뒷조사’라는 지난해 11월25일자 기사에서는 추 장관의 틀린 주장을 그대로 담기도 했습니다. 이 기사는 “윤석열 검찰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건 재판부의 물의 야기 법관 해당 여부 등을 조사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공개된 문건에 ‘조국 재판부의 물의 야기 법관 여부’와 관련한 내용은 없었습니다.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는데도 <한겨레>는 침묵했습니다.

현장 분위기와 전혀 다른 무리한 기사 계획이 편집회의 과정에서 만들어져 일방적으로 찍어 내려진 경우도 많았습니다. 법원이 검찰총장 직무배제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한 다음 날인 12월2일 ‘”법원 초토화시킨 장본인인데…” 윤석열 살린 법원 결정에 착잡한 판사들’이라는 기사가 오전 지면계획에 잡혔습니다. 애초 현장 기자들은 ‘법원이 추 장관의 행정권 남용을 제한했다’, ‘재판부의 법리와 양심에 따른 판단이었다’는 판사들의 반응을 묶어 발제했지만, 편집회의를 거치더니 법원 판결로 ‘착잡한 판사’를 앞세우는, 취지가 정반대인 기사안으로 정리된 것입니다. 취재 과정에서 ‘법원이 초토화됐다’거나 ‘법원 결정이 착잡하다’는 판사들의 반응은 극소수였습니다. ‘착잡한 판사들’ 기사는 결국 오후 지면계획에서 빠졌지만, 이 기사가 어떤 이유로 누구에 의해 만들어진 것인지 현장 기자들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같은 날 편집부에서도 ‘오늘자 1면을 보며’라는 제목의 비판 글을 집배신에 올렸습니다. 윤 총장의 직무배제 집행정지를 인용한 법원 판결을 비롯해 추 장관의 무리한 징계 절차 등을 균형 있게 다루지 못한 지면을 비판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감탄고토.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갈수록 염치도 없는 것인지. 정파성 미명하에 저널리즘이 죽어가고 있다”는 의견도 덧붙였습니다. 이는 현장에서 ‘친정부 매체’라고 조롱받는 기자들의 열패감과 비슷했습니다. 그런데도 집배신에까지 올라온 추-윤 사태 관련 항의 글에 대해 국장단은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았습니다.

무리한 편 들기는 오보로 이어졌습니다. ‘이용구 차관 관련 검찰 수사지침 “목적지 도달 뒤엔 운행 중 아니다”’는 기사는 법조계뿐만 아니라 진보진영에서도 ‘사실과 맥락에 맞지 않는 보도’라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경찰이 법무부 차관의 폭행 사건을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는 비판 여론이 거센 상황에서 이 사건이 검찰에 송치되었어도 어차피 특가법 적용을 하지 못했다는 여론을 만들기 위해 추미애 라인 검사에게 받은 자료를 사실 확인도 하지 않고 받아써 준 결과였습니다. 서초동에선 “추미애 라인 검사가 전날 밤 텔레그램으로 <한겨레>에 기사를 써줄 것을 요구했다”는 찌라시까지 돌았습니다. 현장 기자들은 기사가 나간 뒤 공보관에게 사실관계에 대해 지적을 받고 해당 의견을 법조팀장에게 전달했지만 자료를 준 취재원과 의견이 엇갈린다는 이유로 틀린 사실은 제대로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사실관계가 틀린 자료라는 현장 보고가 수차례 있었음에도 일부 내용만 수정해 이를 지면에까지 실은 이유가 무엇인지 국장단에 묻고 싶습니다.

최근 불거진 ‘김학의 불법 출국금지 의혹’ 또한 공정한 잣대로 보도되고 있는지 의문이 듭니다. 심지어 지난 15일자 지면에 실린 ‘김학의 출국금지, 절차 흠결과 실체적 정의 함께 봐야’라는 제목의 사설은 ‘실체적 정의’를 위해 적법한 절차를 지키지 않았던 상황을 옹호하는 논리로 쓰였습니다. 절차적 정의는 결코 훼손될 수 없는 법치주의의 핵심 가치입니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라는 인물을 떠나 기본권 침해는 최소한의 적법 절차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는 건 <한겨레>가 지난 30년간 지켜온 가치입니다.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 수사로 김 전 차관이 저지른 죗값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점에 대한 분노와 제대로 된 절차에 따라 김 전 차관을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전혀 상충하는 것이 아닙니다. 조국 사태 때부터 지적된 편 들기 식 보도가 이런 사설과 보도를 낳은 본질입니다.

현재 법조 기사들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쓰여지고 있습니다. 그에 따른 부끄러움과 책임은 온전히 현장 기자의 몫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한겨레>가 어쩌다가 “파시즘적”이라는 비판을 받는 기사를 쓰게 된 걸까요. <한겨레>가 쓰고 있는 비판 기사 가운데 상대가 아프다고 받아들일 만한 기사는 몇 개나 될까요. 그런데도 데스크들은 “현장 발제가 없다”, “현장 기자들은 식견이 없다”며 논점을 회피하고 있습니다. 사회부장이 지난 11월 열린편집위원회에서 “전통적인 검찰 기사가 아니다 보니 식견 있는 기자들이 볼 수 있다. 일선 취재기자들은 깊이 있게 볼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라고 한 말은 데스크가 현장의 목소리를 어떤 논리로 배제하고 있는지 보여줍니다. 일방적인 찍어 누르기식 발제와 기사 작성 지시 환경에는 현장의 적극적인 발제도 불가능합니다.

“특정 정당이나 정치세력을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한겨레> 창간사를 다시 되새깁니다. 이해관계를 떠나 틀린 건 틀렸다고 비판하고, 의혹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취재해야 합니다. 국장단의 정확한 판단과 현장 기자들과의 원활한 소통이 좋은 보도를 만듭니다. 데스크에서 구체적인 정황이나 물증 없이 ‘한쪽 편을 드는 기사’를 현장에 요구하며 설명하는 게 소통이 아닙니다. 현장에선 더는 “법무부 기관지”, “추미애 나팔수”라는 비아냥을 듣고 싶지 않습니다.

국장단의 어설픈 정권 감싸기와 모호한 판단으로 ‘좋은 저널리즘’의 가치가 훼손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법조팀도 비슷한 문제 제기를 수차례 해왔지만 전혀 개선된 게 없었습니다. 이는 법조팀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한겨레> 취재기자들이 겪고 있는 문제라는 데에 젊은 기자들의 뜻이 모였습니다. 데스크와 현장 기자들의 생각 격차는 커져만 가는데 국장이 공약으로 내세운 ‘토론단위 확대’ ‘보도 점검 자리’ ‘현장 기자 비상구’ 등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이에 <한겨레> 현장 기자들은 국장단과 사회부장, 법조팀장이 해당 기사와 사설에 대한 경위를 밝힌 뒤 그에 따른 합당한 책임을 지고 공식 사과와 재발방지책 마련에 나설 것을 요구합니다. 탁상공론을 넘어, 현장 기자들의 목소리를 반영하고 특정 정파·좌우 진영 가릴 것 없이 공정한 잣대로 보도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것인지 구체적인 대책 마련도 함께 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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