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헌 변호사···친절하고 유머 넘쳤던 ‘행동하는 지식인’

방송 인터뷰하는 생전의 한승헌 변호사

한승헌 변호사님이 20일 밤 별세했다는 소식을 오늘 아침 한겨레신문을 통해 확인했다. 너무 아쉽고, 안타깝고, 죄송하다. 코로나를 핑계로 지난 3년간 전화 두번, 문자 세번으로 인사치레에 그친 필자가 너무 초라하고 송구하기만 하다.

필자가 존경하며 가장 닮고 싶은 어른들(요즘은 젊은이들 가운데서도 늘어나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른다) 가운데 한 변호사님은 단연 앞줄에 계신다.

법과 인간의 항변

그분을 처음 안 것은 1980년 여름이다. 1972년 범우사에서 나온 <법과 인간의 항변> 수필집을 통해서다. 5.18 이후 휴교령으로 빈둥대던 그때 누군가에 의해서 혹은 어디선가에선가 우연한 계기로 내손에 쥐어졌다. 지금까지도 내 심중에 깊이 남아있는 몇 안되는 책이다. 그런 분을 8년 뒤 한겨레신문 창간 때 공채1기로 입사해 직접 만나게 됐으니 행운이고 운명에 가까운 일이었다.

지난 30여년 동안 한 변호사님을 오프라인에서 뵌 것은 다섯 손가락도 안 될 것이다. 기억에 남는 것은 노무현 대통령 부처가 함께 참석한 2004년 8월 17일 한국기자협회 창립 40주년 기념식에서 건배사를 맡아주셨을 때, 그리고 한참 후인 2019년 음력 설 직후 최재천 이대 교수, 유진룡 문화부 전 장관, 김종수 신부, 김용호 치과의사, 유동훈 문화부 전 차관 등 내가 평소 존경하던 분들과의 자리에서 정도다.

자주 만나뵙진 못했지만 그 대신 변호사님이 저술하신 책을 읽으면서 그의 생각을 이해하고, 내가 어떤 문제에 봉착했을 그라면 어떻게 풀어낼까 하고 상상하면서 머리 속에서 대화를 나눴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할 거다. 정 궁금하거나 답답한 일이 있으면 전화를 통해 여쭤보기도 했는데, 그는 누구보다도 친절하고 최선을 다해 길을 알려주시곤 했다.

검사 출신으로 박정희 유신독재 이후 전두환 체제 이후 줄곧 민주화와 인권운동에 매진하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은 점이 그분의 최고 강점이자 매력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의 유머집 시리즈 <산민객담>을 읽을 때면 짜릿한 희열까지 느끼곤 했다.

산민객담

지금도 모임자리에서 소개하는 그의 유머가 떠오른다. “(1998년 디제이정부 출범때) 감사원장 맡아 그해 여름 출입기자들과 식사하는데 한 기자가 나러더 ‘원장님 더운데 옷 벗으시죠’ 해요. 그래서 내가 그랬죠. ‘여보슈, 나 감사원장 시작한지 서너달밖에 안됐는데, 벌써 옷 벗길라고 그래요, 기자님!’ 모두 깔깔대고 그랬지요.”

재작년 9월 29일 생신 축하 문자를 드렸고, 이런 답을 보내오셨다. “변호사님 생신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내년 오늘 더 건강하시고 거룩하시리라 믿습니다. 이상기 드림” “오늘을 기억해주셔서 감사하고 영광스럽습니다. 제 인생의 노을이 흐려지지 않도록 힘쓰겠습니다. 귀댁 여러분의 강녕을 기원합니다. ㅡ한승헌 드림”

작년 9월 생신엔 전화를 드렸더니 책을 보내시겠다며 주소를 일러달라 하신다. 나 역시 우리 매체를 통해 발행된 <만해 한용운 시선집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와 오프라인 잡지 <매거진N>을 보내겠다며 주소를 부탁드렸다. “아침 전화 반가웠습니다. 저의 주소ㅡ서울시 은평구 진흥로 000입니다”

위 문자 메시지가 한 변호사님과 나눈 마지막 대화다. 늘 친절하고 여유있는 유머 듬뿍 언어로 응대해주신 山民 한승헌 변호사님의 명복을 빈다.

2018년 5월 25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창립 30주년 행사에 참석한 한승헌 변호사. 뒤에 조정래 작가가 보인다. <사진 민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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