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구약 율법의 ‘비보호 좌회전’…”분노에 대한 선긋기”

레위기 24장

“상처에는 상처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갚을지라 남에게 상해를 입힌 그대로 그에게 그렇게 할 것이며”(레 24:20)

화가 날 때, 참는 것만이 능사는 아닙니다. 분노를 속으로 삯히기만 하다간 화병이 납니다. 그렇다고 화가 나는대로 화를 낼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낼수록 더 화가 나는 것이 분노의 속성이기 때문입니다. 분노에 있어서 적정선을 찾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상대가 나에게 입힌 피해 그대로 상대에게 되돌려 주고 나면 과연 분노는 가라앉을까요? 주먹을 한 대 맞은 쪽에서 상대방을 한 대만 때리고 끝나는 싸움을 본 적이 있으십니까? 한 대 맞고 나면 죽도록 패주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만약 누군가가 내 눈 하나를 뽑는다면 ‘나도 저 놈 눈 하나만 뽑고 잘 마무리 해야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상대의 두 눈을 뽑고도 직성이 풀리지 않아 더 고통스럽게 할 방법은 없을까 궁리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분노는 끝을 봐야 직성이 풀립니다. 아니 끝을 봐도 좀처럼 잘 풀리지 않습니다. 결국 해결되지 않은 분노는 도를 넘어서 자기 자신이나 불특정 다수를 향하기 마련입니다.

성경에는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갚으라는 말씀과 원수를 갚지 말라는 말씀이 동시에 나옵니다. 둘 다 같은 레위기 구절입니다. 예수님 당시 사람들에게도 상충되는 두 구절을 어떻게 이해하고 적용해야 하는가가 이슈였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정확하게 위의 두 구절을 인용하시면서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에 손을 들어주셨습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이 구절은 보복을 장려하는 명령이기보다 끝장을 보고 싶어하는 인간 분노에 대한 명확한 선 긋기입니다. 개인이 적극적으로 이행해야 할 명령은 아닌 것이죠. 교통신호로 치면 비보호 좌회전과 같은 것입니다.

상해를 입힌 자를 반드시 처벌해야할 상황에서 공동체 전체의 합의가 전제될 때만 조심스럽고 아주 신중하게, 최소한으로 적용되어야 할 규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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