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중국-대만 갈등에 직·간접 개입 최대한 피해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차이잉원 대만 총통

이승만 대통령 시절 중화민국(대만)은 유력한 친한(親韓) 국가였다. 당시 중국(중화민국)대사관은 구한말 청의 원세개가 뺏은 명동 요지에 있었다. 1992년 한중수교 후 중국이 들어오자 대만은 자리를 비워 줄 수밖에 없었다.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 당시 한중관계는 한미관계와 거의 같았다.

노태우 정부 들어 북방정책이 추진되면서 대만과 한국의 사이가 벌어지게 된다. 박근혜 정부 이후 한국과 중국의 경제관계가 진전되면서 한국-대만 관계는 더욱 멀어지게 된다.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경우 어떻게 될 것인가로 미국에서 워게임이 한창이다. 근접한 전례는 노르망디상륙작전인데 미국의 해군과 공군은 압도적이었다. 중국과 대만이 이만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가? 대만은 장개석(蔣介石) 이래 대만독립(臺獨)을 위해 대비해왔다.

장개석 아들 장경국(蔣經國)이 잇고 리덩후이(李登揮)가 뒤를 이어도 대독(臺獨)은 한결 같았으며, 민진당의 천수이볜(陳水扁)도 대만독립은 철저하다. 대만은 1895년 청일전쟁 이후 1945년까지 50년 동안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는데, 현재는 한국과 달리 일본에 대해 친근감이 강하다. 대만은 아직도 대만총독부를 총통부로 쓰고 있다.

대만은 일본의 남중국해 제해권에 치명적으로 중요하다. 대만해협은 대만과 중국 사이의 요충이다. 중국은 1958년 4㎞ 떨어진 금문도(金門島) 마조도(馬祖島)에 대해 4개월간 집중포격을 퍼부었으나 건너지 못했다. 두 섬은 지금도 철통같이 방어되고 있다. 중국이 대만해협을 건너는 것은 고려시대 몽고가 강화도를 건너지 못한 상황의 재판이 될 것이다.

미국은 1979년 대만과 단교 이후에도 미중관계법에 의해 대만에 무기를 제공해왔다. 미국은 주한미군사령부와 같이 대만주둔미군사령부를 두고 육군과 공군 부대가 주둔하며 가오슝(高雄)에 7함대 분견대가 있다. 필리핀 주둔 미군이 즉각 대만에 지원할 수 있다. 미국은 대만을 非나토동맹국으로 챙기고 있다.

일본과 대만은 일중수교 후 단교했으나 서로 대표부를 두고 있다. 중국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워싱턴에 대만대표부가 설립되었다. 대만과 중국의 대립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싱가포르 화교는 중국과 교섭하면서도 체제적으로 중국에 가까이 할 수 없다. 리콴유와 리센룽 총리 등은 단순한 도시국가 지도자가 아니라 세계적으로 일정한 무게를 갖는 지도자다.

한국이 중국-대만 갈등에 끌려들어가는 것은 최대한 피해야 한다. 불가피하게 충돌이 일어나게 되면 미국과 행동을 같이 해야 한다. 여기에서 해군은 중요한 자산이다. 매년 태평양에서 이루어지는 환태평양 해군 연합연습은 이를 위한 준비다. 잠수함작전에서 한국은 탁월하다. 미 해군 태평양함대는 한국 잠수함을 잡기 위한 연습 함대를 별도로 둘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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