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한국대학(KICA), 한국-키르기스 교류협력 교두보 ‘큰 걸음’
19일 저녁 서울 평창동 보주차박물관에서 뜻 깊은 행사가 열렸다. 2023년 중앙아시아 한국대학(KICA) 서울본부 개소식 겸 신년회가 한국과 키르기스스탄 내 외빈이 참석한 가운데 조촐하게 열린 거다. 필자는 작년 키르기스탄을 7박8일간 방문해 눈이 시린 텐산의 절경을 완상한 일이 있다. 詩仙 이백의 태를 묻은 고향(토크마크), 그 나라는 한반도 전체 면적과 비슷한 크기다.
우리 민족이 유래한 텐산산맥 분지에 자리한 키르기스스탄을 나는 좋아한다. 세계의 지붕이라는 파미르고원 인근의 그 나라는 천혜의 관광자원을 지녔다.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중국 등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중앙아시아의 알프스로 맑은 물과 푸른 하늘, 높은 산들이 어우러진 절경을 뽐낸다. 해발 1600m 세계 두번째로 큰 산정호수인 이시쿨호수가 수도 비슈케크 인근에 있다.
이식쿨호수는 제주도 3배 크기의 넓은 호수로 전체 둘레가 477km, 가로 177km, 세로 53km에 해당하는, 마치 ‘사람의 눈’처럼 가로가 긴 호수다. 바다나 다름없다. 바람이 불면 그곳에는 파도가 친다. 바이칼과는 달리 평균 수심이 1m 내외로 따뜻하다. 이식쿨의 ‘이식’은 ‘따뜻한’, ‘쿨’은 호수란 뜻이다.
그곳은 과일 채소 유제품의 질이 매우 뛰어난 천혜의 농업국가이기도 하다. 모스크바를 먹여 살리는 곳, 중동 부호들도 키르기스스탄 채소와 과일, 유제품을 먹는다. 앞으로 기후위기와 공급망 교란이 일상화할 21세기, 농업의 중요성은 갈수록 더해진다. 한국인과 기업들이 대거 키르기스스탄 현지로 진출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키르기스스탄 수도인 비스케크에 있는 KICA는 교두보이자 전진기지일 수 있다. 이 대학 서울본부가 서울에 자리한다는 것은 전략적으로 아주 중요하다고 본다. 키르기스스탄측에선 바이볼로프 쿠바트벡 전 검찰총장, 누르자말 악쿠 그룹 회장 부부와 수바노프 술탄벡 유수의 건설기업 전 회장, 아타카노바 미라 리베르타스 그룹 회장, 세리쿨로바 미나라 KICA 총장 백태현 교수 부부 등이 참석했다.
한국에선 성낙인 전 서울대 총장, 김문환 전 국민대 총장과 조재목 에이스리서치 회장, 윤석길 한민족공동체 사무총장 서상호 실로호텔 총괄세프, 백진호 대추밭한의원원장, 김세민 인터폴 근무, 이종현 씨라인 대표 등이 참석했다.
환영사를 한 미나라 총장은 30여년 전 서울대에 유학 와 언어학박사를 받은 키르기스스탄 출신의 재원이다. 미나라 총장의 부군 백태현 교수는 부인을 중앙아시아 최초의 서울대 박사라고 소개했다. 이날 유창한 한국어 실력을 과시한 미나라(‘미나리’가 아님) 총장은 “처음이자 유일한…”이라고 정정해 좌중의 폭소를 자아내기도 했다.
쿠바트벡 전 검찰총장은 축사에서 “한국이 이렇게 잘 사는 줄 몰랐다”며 “10년만 더 젊었다면, 한국어를 반드시 배웠을 것”이라고 했다.
성낙인 서울대 전 총장은 답사에서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에서 명예박사를 받았는데, 키르기스스탄에서는 아직…”이라며 “양국간 선린관계를 두텁게 하는데 KICA가 공헌을 해달라”고 했다.
쿠바트벡 총장은 러시아 푸틴과 KGB 동료로 중동 지역에서 같이 근무한 적도 있다. 쿠바트벡 총장은 “(푸틴과) 친하지는 않았다. 대통령이 될 줄 알았으면 친해 둘 걸…”이라면서 “친하지 않은 게 오히려 더 낫다”고 재치있게 말했다.
향산 한영용 보주차박물관장은 KICA 대외협력부총장 겸 대학발전위원장이라는 무거운 책임을 맡았다. 백태현 교수는 한국과 키르기스스탄이 ‘덕불고 필유린’의 정신으로 연대와 상생하는데 밀알이 되도록 상임고문을 맡았다.
산학협력교수로 우정호(외식산업) 배준희(헬스뷰티) 김종윤(식음료 발전위원장) 등이 임명됐다.
한영용 관장은 부총장 임명장을 받은 뒤 개소식의 취지 및 대학 발전방안을 소개했다. 그는 한국과 키르기스스탄의 연대와 협력을 상징하는 울산 반구대 암각화의 고래와 텐산산맥 설산을 뛰노는 순록을 연결시켜 뜻깊은 연설을 했다.
뒤풀이 자리에서 향산은 판소리를 전공하는 딸의 장단에 맞춰 수궁가 한 대목을 불렀다. 검은 토끼해를 맞아 부른 ‘토끼화상’ 소리는 구성지고 경쾌했다.
바이올니스트 백현경은 식전 연주에 이어 밀양 진도아리랑을 연주해 박수를 받았다. 그는 거장 임동창의 제자다.
벗 재목은 하모니카로 식전에 고향의 봄을, 뒤풀이 때 My way와 아리랑을 연주해 갈채를 받았다. 미슐렝 셰프 만찬에는 고래삼합과 언양불고기, 생굴보삼, 삼치회밥, 흑산홍어, 찹쌀막걸리가 나왔다.
이날 저녁 한국과 키르기스스탄 간 선린관계를 기원하듯 하늘에선 서설이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