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직 묵상] 족함 모르는 ‘불행’, 상처입은 ‘위로자’
전도서 4:1-16 “족함을 모르는 불행”
8 그의 눈은 부요를 족하게 여기지 아니하면서 이르기를 내가 누구를 위하여는 이같이 수고하고 나를 위하여는 행복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가
1. 보라고 있는 눈입니다. 들으라고 있는 귀입니다. 말하라고 있는 입입니다. 그러니 사람이 보고 듣고 말하는 것을 누가 탓할 수 있습니까?
2. 그러나 그 눈과 귀와 입 때문에 당연히 누려야 할 인생의 행복이 오히려 바람에 날아가듯 사라지고 강물에 떠내려가듯 흘러가버립니다.
3. 왜 그렇습니까? 사지 멀쩡하고 몸의 모든 기관이 멀쩡한 것이 왜 오히려 화근이 되는 일이 일어납니까? 제대로 쓰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4. 눈은 마땅히 보아야 할 것을 보라고 있지만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귀는 제발 경청하라고 있지만 듣고 싶은 것만 들으니 어떡합니까?
5. 입은 더 합니다. 할 말 안 할 말 가려야 하지만 생각나는 대로 말하고 하고 싶은 말 마음껏 발설하고 살면 나도 주변도 더 어지러워지지요.
6. 전도자는 이 점에 주목합니다. 우리의 감각기관은 남과 비교하라고 주어진 것이 아닌데도 우리는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모든 걸 비교합니다.
7. 비교에 능한 사람치고 행복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잠시 가졌던 우월감도 그 비교 때문에 한 순간에 열등감이 되는 것 아닙니까?
8. 그러고서 무슨 만족이 있겠습니까? 족함을 모르는데 무슨 행복이 있을 수 있습니까? 스스로 불행을 자초하는데 어떻게 좋은 말이 나옵니까?
9. 입에서는 쓴 소리 거친 소리가 쏟아집니다. 아무리 애쓰고 수고해도 기쁘지 않습니다. ‘내가 왜 이 고생을 하나’ 항상 불평이 쏟아집니다.
10. 따지고 보면 불행해서 불행한 것이 아니라 ‘족함을 모르는 불행’이고 스스로 ‘불행하다고 여기는 만큼 불행’해진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11. 바울이 이 사실을 깨닫고 고백합니다. “나는 어떤 형편에서든 자족하기를 배웠습니다.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비결을 배웠습니다.”
12. 그러니 무엇을 탓하며 누구를 원망하겠습니까? 그는 더 이상 흔들리지 않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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