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교리에는 독선이 있지만 고백에는 은혜가 있습니다”

영화 <사도 바울>


예정론 이해하기···에베소서 1-3장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에베소서 1장 11절)

예정론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예정, 참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예정이라면 납득이 어려운 일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니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 나는 하나님이 선택하셨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내 친구는 하나님이 선택하지 않으셨나요? 부모님이 임종 직전까지 하나님을 부인하다가 돌아가신 건 애시당초 하나님의 구원 계획 속에 예정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일까요? 누구는 천국에 갈 운명을 가지고 태어나고 누구는 지옥에 갈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을까요? 동족상잔의 비극이나 9.11테러도 하나님이 예정하셨을까요?

모든 일이 하나님의 예정이라고 하기에는 성경적이지 않은 견해까지도 억지스럽게 받아들여야 할 것 같고, 모든 일이 하나님의 예정이 아니라고 하기에는 하나님의 주권이 불완전하다고 말하는 것 같은 딜레마가 예정론 안에 있습니다. 이것이 교리가 가지는 맹점입니다.

그런데 ‘예정’은 교리가 아니라 고백입니다. 바울은 고백했는데 사람들은 교리를 만들었습니다.

예정을 고백한다는 뜻이 무엇일까요? 사실은 우리 모두가 다 이미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보니까 내 생애의 아프고 부끄러운 과거조차 하나님의 뜻 안에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을 알고 보니까 ‘나’라는 존재 자체를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선택하셨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을 부인하고 원망했던 시절이 분명히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예정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교리란 수학 공식과 같습니다. 원리를 모르고 아무데나 적용했다가는 오답만 잔뜩 도출되는 것이지요. 뜻밖의 병을 얻은 사람에게 그것도 하나님의 뜻이라고 함부로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당사자가 스스로 깨닫고 하나님의 뜻이었다고 고백해야 하는 것이지, 남이 그를 향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해서는 안되는 것이지요.

에베소서나 로마서와 같은 교리적 성격의 책을 읽을 때 잊어버리면 안되는 것이 있습니다. 바울은 교리책을 편찬하려고 펜을 든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향해 자신의 신앙고백을 담은 편지를 썼을 뿐입니다.

내가 말하고 전하는 건 교리인지,아니면 고백인지 생각해 봅니다. 남의 눈에서 눈물 나게 하면 교리이고, 내 눈에서 눈물이 나면 고백 아닐까요? 교리에는 독선이 있지만 고백에는 은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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