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질그릇에 담긴 보화
*성경본문 고린도후서 4-6장
“하나님께서는 질그릇 같은 우리 속에 이 보화를 담아주셨습니다. 이것은 그 엄청난 능력이 우리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보여주시려는 것입니다.”(고후 4:7, 공동번역)
모든 물건은 그 물건에 걸맞는 포장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명품은 케이스도 고급스럽습니다. 싸구려는 포장도 조악합니다. 포장만 그럴듯하고 내용물은 형편 없는 경우를 심심찮게 볼 수 있는데, 반대로 최고급 상품을 싸구려 포장에 담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질그릇에는 보화를 담지 않는 것이 상식입니다. 보통 그릇이란 진흙을 성형하여 초벌로 구운 다음에 유약을 발라 또 다시 구워내는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데 질그릇은 초벌구이만 했기 때문에 깨어지기도 쉽고 표면도 거칠거칠합니다. 사실 모양만 그릇이지 그릇으로서의 가치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질그릇에는 걸레나 음식물 쓰레기 같은 것을 담고는 했습니다. 이런 질그릇에 보화를 담는다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상식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선택과 결정이 나에게는 은혜입니다. 납득이 되지 않고, 설명할 방법이 없기에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가장 평범한 것에 가장 특별한 것을 담아주셨습니다. 오늘 하루의 고단함도, 조그만 아픔에도 금새 상해버리는 알량한 감정도, 내세울 것 없는 내 인생도 보물을 담기에 더 없이 좋은 그릇이라 말씀하십니다. 조그만 충격에도 쉽게 깨어지는 것이 질그릇인데, 하나님은 질그릇 같은 내 인격에 예수 그리스도를 담아주신 것입니다.
신앙이란 그릇을 업그레이드 하는 일이 아닙니다.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이 되지 않는 것처럼, 질그릇은 보화를 담고 있어도 질그릇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이라기보다 내가 질그릇같이 잘난 것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일 아닐까요?
신앙이란 그릇을 업그레이드 하는 능력이 아니라 오히려 그릇을 깨뜨리는 능력입니다. 마리아는 그릇을 깨뜨려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부었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산산조각남으로 내용물을 드러내기 위해 존재하는 것, 그것이 질그릇의 존재 목적인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