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치 파노라마⑬] 국회의원의 똥물과 최루탄 투척사건
“똥이나 처먹어 이 새끼들아!” 1966년 9월 22일 오늘 김두한 의원(한국독립당, 용산)이 국무위원들에게 똥물을 뿌리면서 외친 말입니다. 김 의원은 제58회 정기회 제14차 본회의에서 ‘특정재벌밀수사건에 관한 질문’을 주제로 대정부 질문을 했습니다. 특정재벌은 삼성을 말합니다. 삼성 계열사 한국비료가 일본에서 사카린 원료를 밀수했던 사건입니다.
밀수 사실이 9월 15일 경향신문 보도로 알려지면서 정부와 대기업의 부정부패를 규탄하는 여론이 커지자 국회가 이 문제를 다뤘습니다. 9월 22일은 국회 질의 마지막 날이었고, 김두한 의원의 질의 순서는 마지막이었습니다. 김두한 의원은 “대통령에게 호되게 따지고 싶”었고 “대통령을 대리한 국무총리와 장관”을 “내각으로 보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내각이 “부정과 불의 도적질을 합리화시켜버린 피고”라고 몰아붙인 김두한 의원은 “내각을 규탄하는 국민의 ‘사카린’을 맛보라”며 미리 준비해 간 똥물을 끼얹었습니다. 사회를 보던 이상철 국회부의장은 부랴부랴 산회를 선포했습니다. 이효상 국회의장이 국회법 제146조 제1항의 규정을 들어 김두한 의원을 징계하려 했습니다. 김 의원은 자진사퇴했습니다.
정일권 국무총리와 장기영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 김정렴 재무부장관, 민복기 법무부장관 등이 똥물을 뒤집어썼습니다. 이에 항의해 국무총리 이하 내각이 일괄 사표를 제출하였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나흘 뒤인 9월 26일 민복기 법무부장관과 김정렴 재무부장관을 삼성밀수사건과 관련해 해임하면서 나머지 국무위원들의 사표는 반려했습니다.
김두한 의원의 똥물투척이 정부아 삼성 재벌의 정경유착을 깨지는 못했습니다. 국회밀수조사위원회는 1966년 11월 11일 민주공화당 단독으로 밀수사건처리안을 가결하고 조사활동을 종결지었습니다. 12월 23일에는 민중당 등 야당 의원들이 ‘특정재벌밀수사건진상조사보고’ 내용에 항의해 총퇴장한 상태에서 공화당 의원들만으로 채택됐습니다.
똥물 사건 이후 국회 본회의장 출입이 엄격해졌습니다. 회의장 안에 회의 진행에 방해가 되는 물건을 갖고 들어갈 수 없게 됐습니다. 그러나 그 뒤로도 사건 사고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1999년 8월 12일 신구범 축산업협동조합중앙회 회장이 농림해양수산위 상임위 회의실에서 커터 칼로 자신의 배를 30 cm 긋는 자해소동을 일으켰습니다.
축협이 농협으로 통합되는 데 대한 항의였는데, 국회의 법안 처리에 반대해 관련단체 인사가 국회에서 자해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신구범 회장은 목숨을 잃지 않았으나, 농축협통합법안은 통과되었고, 축협은 2000년 7월 1일 자로 농협에 통폐합되었습니다. 초대 민선 제주지사였던 신 회장은 그 뒤 두 차례 더 제주지사에 도전했으나 실패했습니다.
2011년에는 국회 본회의장에서 최루탄이 터졌습니다. 11월 22일 한미 FTA 협정 의결에 반대한 김선동 민주노동당 의원이 최루탄을 터뜨리고 가루를 던졌습니다. 최루탄 출처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총포 도검 화약류 등 단속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기소된 김선동 의원은 2012년 제19대 총선에서 재선됐으나 의원직 상실형으로 의원직을 잃었습니다.
1심과 2심 모두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고, 대법원이 2014년 6월 12일 원심을 확정했습니다. 2016년 6월 2일 서울고등법원 재심도 의원직 상실형이었습니다.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는 무죄, 정치자금법위반, 특수공무집행방해, 총포·도검·화약류등단속법위반, 특수 국회회의장 소동 혐의로 징역 8개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습니다.
법원은 “국회의원이 폭력을 행사해 의사 진행을 방해하는 건 스스로의 권위를 저버리고, 국회에 대한 국민 신뢰를 근본적으로 훼손하므로 어떠한 이유로도 용납되거나 합리화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이들 세 사건의 경우 오히려 폭력행위가 부각됨으로써 정경유착에 대한 책임, 농수축협 통폐합의 문제점, 한미FTA 협상내용의 문제점 등은 묻혀버리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