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치 파노라마⑫] 이준석 가처분 인용 그후, 국민의힘 반성과 사과는?
국민의힘이 새로운 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법원이 주호영 비대위원장 직무를 정지한 지 하루 만의 결정입니다. 국민의힘 긴급 의원총회는 새로운 비대위는 8월 29일 의원총회를 다시 열어 당헌·당규를 고친 뒤에 새로운 비대위를 꾸리기로 결의했습니다. 그때까지 현 비대위는 그대로 두고, 이준석 대표는 추가 징계하기로 했습니다.
새 비대위를 만들 때까지 직무정지된 비대위원장 직무대행을 누가 맡을지는 정하지 못했습니다. 대표 직무대행을 맡았던 권성동 원내대표가 다시 당 대표직무대행을 맡을 수도 있었지만 의원총회에서 거부됐습니다. ‘내부총질 당 대표’ 메시지를 노출시켜 문제를 일으킨 뒤에도 계속 사고를 치고 있는 권 대표에 대한 반대가 심했기 때문입니다.
국민의힘 대응은 다소 억지스러워 보입니다. 가처분 결정에 대한 이의신청과 항고 절차 진행은 당연히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헌 당규를 고쳐서라도 기어이 비대위를 만들겠다는 건 어떡해서라도 이준석 대표를 쫓아내겠다는 오기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이 대표 추가 징계도 화풀이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반성과 사과는 들어설 자리가 없습니다.
권성동 대표를 새 직무대행으로 하지 않은 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여러 의원들이 제기한 원내대표 사퇴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건 여전히 윤핵관 중심 당 운영 기조를 끌어가겠다는 것으로 비칩니다. 권 대표 진퇴를 사태 수습 뒤 의원총회에서 다루기로 유보한 걸 일부 언론은 “권성동 중심 ‘새 비대위’ 구성 결의”(머니투데이)로 해석했습니다.
여론이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리자는 것이겠지만 그 사이 갈등은 더 커질 겁니다. “법원 판결을 존중해 비대위를 즉각 해산하고 새로운 원내대표 뽑아서 ··· 새롭게 출발하자”는 하태경 의원의 제안이 합리적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럴 경우 새 원내대표가 당 대표 직무대행을 맡으면 일이 복잡해지지 않고 비대위 출범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가처분 심판을 담당한 황정수 부장판사는 국민의힘에 비상상황이 발생한 걸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오히려 일부 최고위원들이 지도체제 전환을 위해 비상상황을 만들었다는 겁니다. “재판장이 ‘특정 연구모임’ 출신으로 편향성이 있다”는 국민의힘 주장은 사실이 아닐 뿐더러 왜 굳이 당이 비상상황이라고 고집을 부리는 건지 고개가 갸웃거려집니다.
황정수 부장판사는 직무대행을 지정하지 않았습니다. 예전에는 직무정지 가처분신청을 인용하면서 아예 직무대행을 지명한 일도 있었습니다. 폭주하던 박정희 정권 말기인 1979년 9월 8일 서울민사지법(재판장 조언 부장판사)가 김영삼 신민당 총재의 직무를 정지시켰습니다. 조 부장판사는 박 정권 초기인 제3, 4대 조진만 대법원장의 아들입니다.
조언 재판장은 5선 정운갑 신민당 전당대회의장을 직무대행으로 지명했습니다. 당원이 뽑은 정당대표를 날리고 직무대행이지만 새 대표까지 법원이 임명한 셈입니다. 가처분신청부터 인용, 직무대행 지명까지 정치공작이라는 논란 속에 직무대행을 수락했지만 한달 만에 10.26으로 물러났습니다.
‘선명야당론’을 내세운 김영삼 전 총재가 1979년 5월 31일 신민당 전당대회에서 ‘중도통합론’을 내세운 이철승 대표를 누르고 새 대표가 되었습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징계를 내린 윤리위원회 이양희 위원장이 이철승 대표의 딸입니다. 김 총재는 유신정권 타도, 민주회복 등 강경노선을 걸었고 박정희 정권은 김 총재를 껄끄럽게 여겼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유기준 윤완중 조일환 등 신민당 원외지구당위원장 3명이 김영삼 총재직 당선무효 소송과 직무정지 가처분신청을 냈습니다. 5월 전당대회 대의원 가운데 22명이 당원자격이 없어 무효라는 겁니다. 법원은 가처분신청을 인용했습니다. 신민당 사태는 10.26으로 이내 풀렸지만 국민의힘 사태는 풀리기는커녕 갈수록 더 꼬일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