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혁재의 지선 전망대 D-2] 막바지 필사적 선거운동
D-2일. 6.1지방선거 선거운동의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각 정당 후보들이 총력을 기울이는 가운데 여러 후보들이 한밤중에도 쉬지 않고 시민들을 만나겠다며 ‘72시간 선거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공개된 장소에서 연설 대담 등 주간과는 달리 야간에는 편의점이나 주유소, 노점상 등을 찾아가 늦게까지 일하는 시민들을 만나는 겁니다.
선거법에는 공개된 장소에서의 연설 대담 등은 오전 7시부터 오후 9시까지로 시간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지난 대선까지는 오후 10시였으나 밤늦은 시간의 선거운동에 대해 피로감과 소음에 대한 민원이 많아 9시까지로 줄었습니다. 확성기를 사용하지 않으면 오후 11시까지도 가능합니다. 공개된 장소에서의 연설 대담이 아니면 제한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한 표가 아쉬운 후보들은 3일 동안 유세차에서 쪽잠을 자고 세수는 주변 건물 화장실을 이용하면서 시민들을 한명이라도 더 만나기 위해 찾아다니는 겁니다. ‘마라톤 선거운동’이라 불리기도 하는 72시간 연속 선거운동이 처음 등장한 것은 2006년 제4회 지방선거입니다. 강금실 열린우리당 서울시장 후보가 처음 시작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 거부정서가 너무 강해 제4회 지방선거는 열린우리당의 참패가 처음부터 예상됐습니다. 열린우리당 서울시장 후보로 우리나라 첫 여성 법무장관이었던 강금실 후보가 영입됐습니다. 후보가 된 직후에는 반응이 좋았으나 정계를 은퇴했던 오세훈 전 의원이 한나라당 후보가 되면서 지지율이 다시 낮아졌습니다.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강금실 후보가 채택한 선거전략이 바로 마라톤유세였습니다. 명동성당에서 시작해 다시 명동성당으로 돌아와 마무리한 72시간 연속유세는 시민의 관심을 끌었지만 ‘정권심판’ 민심을 뒤집지는 못했습니다. 강금실 후보는 27.1%를 득표해 61.7%를 득표한 오세훈 후보에게 매우 큰 표 차이로 졌습니다.
지지율이 큰 차이가 없을 때는 선거 판세를 뒤집을 수도 있겠지만 크게 차이가 난다면 후보의 노력만으로는 힘든 법입니다. 2018년 제7회 지방선거 때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가 선거운동을 색깔론 막말 등에 기댄 건 여론조사에 잡히지 않는 이른바 ‘샤이 보수’를 끌어들여 판세를 뒤집으려는 의도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실패했습니다.
홍준표 대표는 지원유세를 거부당했고, 그가 장담했던 ‘샤이 보수’도 끝내 나타나지 않아 자유한국당은 참패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도 2021년 서울시장·부산시장 보궐선거 때 같은 일을 겪었습니다. ‘샤이 문재인’을 기대하고 재·보선의 원인을 제공했을 때는 무공천하겠다는 당규까지 바꿔가며 공천을 강행했지만 대패하고 말았습니다.
또 1950년 오늘(5.30)은 제헌국회가 제정한 선거법으로 우리 정부가 관리한 첫 번째 선거인 제2대 국회의원 총선이 실시된 날입니다. 1948년 5.10 총선으로 구성된 제헌국회는 헌법을 제정하고 정부 수립에 필요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기 위한 국회였습니다. 그래서 남조선과도입법의원이 국회의원 임기를 2년으로 정했습니다.
210명을 선출한 제2대 총선은 2,209명의 후보가 출마해 사상 최고의 경쟁률을 보였습니다. 제헌의원 선거 때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고 남북협상을 주장하면서 총선참가를 거부하거나 주저했던 세력들이 참여했기 때문입니다. 선거 결과는 무소속 126석 대한국민당 24석 민주국민당 24석 국민회 10석 한청 10석 등이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총선 패배가 예상되자 12월로 연기하려 했지만 딘 애치슨 미국 국무장관이 반대해 총선은 예정대로 실시됐습니다. 그러나 제2대 국회는 개원 6일 만에 터진 한국전쟁과, 그리고 후반기에는 직선제 개헌을 집요하게 추진한 이 대통령의 부산정치파동 등 정치 폭거로 정상적인 의정활동을 하지 못한 국회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