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산 김일훈 37] 묘향산의 청년 도사 뭇 환자 치료하다

눈 덮인 묘향산

설령암에서 90리 가량 떨어진 강선암을 오가는 도중 곳곳이나 그 밖의 산중에 산재한 암자나 동굴에는 참선 수행하는 승려나 신선이 되겠다고 도를 닦는 도가(道家)의 도인 등이 많이 있었다.

그들 가운데 운룡과 더불어 도요(道要) 문답을 주고받은 선지식(善知識)으로서 세상에 알려진 인물로는 오대산의 방한암(方漢岩) 선사와 예산 덕숭산의 송만공(宋滿空), 김수월(金水月), 백벽산의 강보살 등이 있다. 속세의 나이로는 운룡보다 까마득히 높은 어른들이었으나, 불법을 포함한 이 세상의 진리를 논함에 있어서는 대선사들이 오히려 운룡 앞에 머리를 숙였다.

자신들이 미처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고 깨뜨리지 못하는 것들을 일거에 쪼개어 보게 하고 깨닫게 하는 운룡에게는 오랜 세월 참선의 길을 걸어온 자신들이 오히려 마냥 섣부를 뿐이라며 혀를 내두르는 때가 많았다.

그 시기에도 운룡은 병든 사람들을 질병의 고통에서 건져내기를 멈추지 않았다. 산중에서 생활하는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가 중풍이나 위장병, 신경통, 관절염, 폐결핵 등의 질병에 걸려 있었다. 운룡이 금강산 유점사에서 선방의 승려들이 결가부좌의 자세로 참선하는 방법의 오류를 지적했던 것처럼, 산중의 많은 수행자들이 질병과의 고독한 싸움에 심신을 빼앗겨 수행을 온전하게 이어가지 못하는 예를 흔히 볼 수 있었다.

운룡 자신은 산중에서 자연의 묘를 최대한 활용하여 건강을 유지하거나 증진시키는 무궁무진한 방법을 알고 있었거니와, 그것을 조식법(調息法)과 더불어 자정수(子正水)와 죽염의 이용으로 요약하여 주변 수행자들에게 권하고 가르쳤다. 그 세 가지는 인체에 유익한 것으로서 우주 공간에 충만한 유황 성분을 섭취하는 방법이라는 점에서 일치한다.

조식(調息)이라 하면 글자 그대로 고르게 하는 호흡, 즉 자연스럽게 하는 호흡을 의미하는데, 일반 생활인들은 물론이거니와 산중의 수도자들도 수행이나 일하는 자세와 생각의 깊고 얕음 등 제반 원인들로 인하여 고르지 못한 호흡을 하게 되기가 일반인 것이다.

하지만 조식법은 자세를 바로하고 정신을 집중하는 한편 소우주인 인체의 모든 작용에 부합하는 명명백백한 원리에 따라 고르고 자연스럽게 호흡함으로써 각종 질병을 예방하고 건강을 증진시키는 방법이다. 좀더 부연하여 말하자면 조식은 영과 신의 비밀을 깨닫는 첩경이며 우주의 정기를 활용하는 묘법이라 할 수가 있다.

조식법

조식의 극치는 하단(下壇)인 단전에서 도태(道胎)를 이루고, 중단(中壇)인 심장에서는 우주를 관조하는 능력을 갖추고, 상단(上壇)으로서 천곡궁(天谷宮)인 뇌에 이르러서는 천지와 더불어 하나가 되는 것에 있다. 그런데 수행자들 가운데에는 예로부터 잘못 전해져 내려오는 방법에 따라 긴 시간 동안 호흡을 중지하여 참거나, 내쉬고 들이쉬는 그 간격을 넓어지게 함으로써 도리어 작게는 건강에 치명적인 해를 불러오고 크게는 생명을 잃는 경우가 허다했다.

지나친 욕심과 무지의 소치라 아니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오랜 기간의 연습을 쌓으면 1~2시간에 이르는 긴 시간 동안 호흡을 참을 수 있게 되는데, 마치 뭔가를 이룬 듯한 착각 속에서 “모공 호흡이 가능해졌다”고 흐뭇해 하다가 절명하게 되는 것이다.

자정수란 만물을 영물로 화하게 하는 신비의 물인 감로가 일정량 함유된 물을 일컫는다. 지령(地靈)의 순응처인 명산의 명천(名泉)을 밤 12시 정각에 취하여 사용하므로 운룡은 그것을 편의상 자정수라고 불렀다. 자정수를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마시면 눈이 밝아지고 만성 위장병을 비롯하여 폐병, 요통, 관절염, 신경통 및 간과 쓸개의 제 질환 등 모든 병 치료에 특별한 효과를 보게 되며, 아무리 힘든 일을 하더라도 피로한 줄을 모를 정도로 강한 활력을 얻게 된다. 자정수가 사람의 정신을 맑게 하고 영력을 강화시켜 주는 힘과 여러 질병을 낫게 하는 효능을 지니는 것은 그 안에 함유되는 감로 때문이다.

우주의 생명은 물과 불인데, 물의 정(精)과 불의 신(神)이 합해지면 영(靈)을 이루게 된다. 낮 동안의 태양열이 땅속의 열에 흡수될 때 태양의 기(氣)는 신으로 변하고, 그 신은 또한 땅속 물의 정과 자정에 만나 영으로 화한다. 그에 따라 밤 12시 정각이 되었을 때 지상의 모든 샘에서는 감로의 기운이 함유된 자정수가 일시적으로 흘러나오게 된다.

묘향산


자정수

감로의 함유량은 샘에 이어진 지령의 정도에 따라 다른데, 대략 0.01~0.1%의 함유량을 보이는 일반 샘과 1%의 높은 함유량을 보이는 명천들도 있다. 자정수에 감로가 전혀 함유되어 있지 않은 샘은 거의 없으나, 공해독이나 세균들에 의해 오염됨으로써 감로가 소멸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운룡이 공해독을 인류 건강의 제일 무서운 적이라고 보는 것은 그것이 인체에 직접적으로 미치는 악영향도 있거니와, 이처럼 간접적으로도 여러 면에서 많은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었다.

감로의 뜻을 풀면 단맛, 즉 감미는 흙 본래의 맛을 뜻하고[土味曰甘] 이슬은 순수한 물의 응집체[水結曰露]를 뜻하는 것으로 영묘한 물을 의미한다. 감로는 예로부터 천하가 태평할 때 하늘이 상서로움을 나타내기 위해 내리는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불교에서는 도리천(忉利天)에 있는 달콤한 맛의 영액(靈液)으로서 사람이 이를 한 방울만 먹어도 온갖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산 사람은 오래 살고 죽어 가던 사람은 다시 살아나는 신비의 물이라 전해진다.

운룡이 천마산 영덕사에 머물면서 마신 영덕천의 자정수는 감로의 함량이 매우 높아 물맛이 단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빛깔이 누렇고 비중이 높아 재래종 꿀에 비할 수 있을 정도였다. 자정수는 그대로 마시는 것 외에도 그 끓는 물에 산나물을 살짝 데쳐 먹거나 밥물이나 찻물로 사용해서 섭취해도 좋다. 가능한 한 많은 양의 자정수를 오랫동안 장복할수록 좋다.

운룡이 영덕천의 자정수를 마시기 시작하여 약 5백일간 지속했을 무렵에는 대낮에도 두세 개의 별을 다시 볼 수 있을 정도로 시력이 조금이나마 회복되었고, 3년이 되었을 때에는 밤에 보는 별빛을 환한 대낮에도 어느 정도 볼 수 있을만치는 회복되었다. 그리고 칠흑같이 어두운 그믐날 밤에도 보름달 아래에서 보는 것과 같은 정도로 사물을 구별하여 볼 수 있었다.

운룡은 산중의 수행자들에게 매일 밤 12시 정각에 자정수 석 잔을 마시고 공기 중의 유황 성분을 최대한 흡수할 수 있는 새벽 4~6시 사이에 조식법을 실행한다면 어떤 질병에도 걸리지 않고 뜻하는 바대로 수행의 성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역설하여 가르쳤다. 거기에다 바다 속 유황과 공기 중의 유황을 합성한 죽염 이용법을 더하여 소화기 계통의 제 질환과 그 밖의 외상을 다스린다면 산중 수도인은 비로소 마음 놓고 자신의 득도와 제도 중생을 위한 수행에 정진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서해의 바닷물로 만들어진 천일염은 여러 가지 유독성 광물질과 활인성 약소(핵비소 등) 등의 혼합체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왕대나무는 수정에 응하여 화생한 것으로서 땅속의 유황정(硫黃精)과 수분 속의 핵비소(核砒素)를 흡수하며 성장한다. 그리하여 천일염 속의 유독성 성분을 제거하고 남은 핵비소와 대나무 속에 함유된 맑은 물속의 핵비소를 추출, 합성하여 만든 신약이 바로 죽염이다. 가벼운 외상에서부터 인체의 내부 장기에 자리잡아 끝내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는 악성 종양(암)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질병에 두루 불가사의한 효능을 발휘하는 식품 신약, 그것이 바로 죽염이다.

핵비소

여기에서 핵비소라는 것이 무엇인지 짚고 넘어가 보자.

물 중에서 응고하는 수정이 곧 소금이다. 소금의 간수 속에 만 가지 광석물의 성분을 지닌 결정체를 보금석(保金石)이라 하고, 보금석 가운데 비상(砒霜)을 이룰 수 있는 성분을 핵비소라고 하는데 이것이 곧 수정의 핵(核)이다. 핵비소의 함량이 높아지면 살인물(殺人物)이 되지만 적당한 함량은 활인물(活人物)로서 만병을 낫게 하는 신약이 된다.

우리나라 서해안의 바닷물 속에는 지구상의 모든 생물이 의지해 살아갈 수 있는 무궁한 자원이 간직되어 있다. 그러한 자원 가운데 가장 요긴한 약성을 지닌 요소가 바로 핵비소이다. 핵비소는 바다가 처음으로 생성된 이래 바닷물이 장구한 세월 동안 지구 중심의 불기운을 받아 독소 중의 최고 독소로 변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러한 핵비소는 색소의 합성물인 인체를 병들게 하는 모든 독소들의 왕자(王者) 격이므로 체내에 들어온 모든 종류의 세균과 암세포를 포함한 모든 독성을 소멸시킬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서해안의 천일염에서 인체에 유익하게 사용할 수 있는 핵비소를 추출해 낼 수 있다면 그야말로 각종 질환에 폭넓게 쓰이는 신약이 되는 것이다. 지구의 유방인 바다는 억조창생이 써도 써도 다 못 쓸 핵비소를 무한정 공급해 주고 있는데 이 핵비소 추출물이 바로 운룡이 발명해낸 죽염인 것이다.

이렇듯 운룡이 창안한 죽염은 지구의 보물인 한반도에 널려 있는 핵비소와 유황정을 사람이 이용 가능하도록 합성해낸 것이다.

운룡의 눈앞에는 광대무변한 신약의 세계가 펼쳐져 보였다. 한반도 창공에 가득 분포하고 있는 약성분자, 바다에 녹아들어 있는 약성분자, 땅속에 스며있는 약성분자, 한반도는 약성분자가 가장 많이 분포된 지구의 보물창고인 것이다. 운룡은 자나깨나 이 보물 창고의 약성분자를 어떻게 하면 합성해내어 인간이 이용할 수 있을까를 궁리했다. 지구가 생긴 이래 늘 존재했으나 수 천년 역사속에 그 누구도 지구의 보물 창고를 보지 못했다. 오직 운룡 한 사람이 유사이래 처음으로 아무도 보지 못한 보물 창고를 발견한 것이다.

지구의 위쪽 공간을 3개 층으로 구분하면 지구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공간의 최고층은 독소로 채워져 있고, 중간층에는 영소(靈素)가 자리하며, 지구와 접촉해 있는 최하 공간 층에는 색소가 미만(彌滿)해 있다. 그런데 공간의 독소와 지중의 독소가 합쳐지는 때에는 색소마저도 병독으로 화하여 인류에게 암을 포함한 각종 괴질을 앓게 하는 원인이 되며, 그러한 질병은 핵비소를 사용하지 않으면 치료가 거의 불가능해진다. 그러므로 공해독이 점점 더 늘어갈 것으로 예상되는 20세기 초에 향후 인류 사회가 반드시 구비하고 있어야 할 필수 약으로서의 핵비소를 대량으로 공급할 수 있는 방법으로 죽염을 만들어낸 운룡의 업적은 아무리 높게 평가해도 모자랄 것이다.

고통받는 환자 치료에 평생을

운룡은 조용히 관조하며 지내는 산중 생활 속에서도 병에 걸려 고통받는 환자를 만나게 되면 아무런 댓가 없이 처방을 일러 주었다. 운룡은 평생을 그렇게 살아갔다. 댓가를 바라고 질병 치료를 한다는 것은 보통 사람이 하는 평범한 일일 뿐 운룡의 정신 체계속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운룡은 양식을 구하기 위해 산속에서 약초를 캐서 약재상에 넘기는 일은 있어도 돈을 먼저 생각하고 환자를 치료한다는 것은 그 의식속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개념이다. 먼저 치료하고 돈을 주면 받고 못된 환자가 약삭 빠르게 조그만 보답도 하지 않으면 그걸로 그만이었다. 고맙다고 인사하면 또 그것으로 그만이고 고마워서 선물을 들고 오면 또 그것으로 족했다.

어떤 약으로도 치료할 수 없는 각종 난치병 환자들이 우연히 운룡과 인연이 닿아 목숨을 건지면 그들에게 운룡은 묘향산 도사였고 또 어떤 이들에게는 살아있는 부처였다. 태천 고을에 머물며 동네 사람들의 고질병을 고쳐준 사건 이후로 개천, 영변 고을 인근 일대에는 ‘묘향산에 생불이 나타나 아픈 환자들을 치료한다’는 등 ‘묘향산 도사는 온갖 질병을 물리치는 신통력이 있어서 환자의 몸에 손끝만 갖다 대어도 환자의 병이 낫는다.’는 등 소문이 산중에는 물론 산 아래 일반인들이 모여 사는 마을에도 떠돌아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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