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산 김일훈 34] 50줄 日형무소장 부인 임신 처방해주다

“단군 성조(聖祖)의 35대 손(孫)에 영걸(英傑)한 인물이 나와 일본 땅을 다스리게 되었으니, 그가 바로 일본의 초대 천황 진무(神武)이오. 일본의 역사는 그때로부터 시작된 것이고, 그로부터 또한 수백 년 후에 한반도의 백제에서 건너간 문성(文聖) 왕인(王仁) 박사가 전한 문자를 토대로 현재의 일본 문자가 생기게 된 것이오.”(본문 가운데) 사진은 단군상 

다음 날 형무소장 내외는 관사에 술과 음식을 성대하게 차려놓고 부하를 시켜 운룡을 데리고 오게 했다. “지내기에 고생이 많으실텐데 사정이 여의치 않으니 송구스럽소.”

나이 50줄의 지긋한 소장은 20대의 젊은 운룡에게 깍듯이 대했다. 남루한 수의를 걸치고 있으면서도 새벽별 빛처럼 쏘는 듯한 운룡의 안광을 눈부신 듯 바라보며 말을 꺼냈다. 소장의 부인도 부처님을 뵙는 듯 다소곳이 곁을 지키고 앉았다.

“변변치 않은 것이지만 좀 드시지요.” 지극히 공손한 목소리로 소장의 아내가 말하였다.

“우리 두 사람은 지(池) 선생이 남다른 분인줄 알고 실례를 무릅쓰고 이렇게 자리를 만들었소. 내외 둘이서 지선생 얘기를 하다가 저기 저 그림 속에 그려진 관음보살의 모습이 지 선생을 닮았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한참을 신기하게 여겼소.”

형무소장이 가리키는 쪽을 바라보니 그 방 한쪽 벽면에는 어느 시대의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족자 형태의 탱화 한 점이 걸려 있었다.

“정말이지 보면 볼수록 저 그림 속의 부처님 모습과 똑같으시네요. 아마도 뭔가 그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이왕 오신 김에 이것저것 많이 가르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형무소장의 아내는 적국의 사상범인 젊은 운룡에게 공손히 청했다.

“섬나라에 도착한 왕검성 성민들은 그곳을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삼고 농사지을 땅을 개간하여 씨를 뿌리고 정착하였소.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일본 땅에 사는 인종들은 농경을 할 줄 모르고 오로지 채취와 수렵에 의해 연명하는 수준이었는데, 반도에서 건너간 왕검성 성민들에 의해 농경법이 전해지게 된 것이오. 그 후로 왕검성 성민들은 일본 땅에서 자손을 퍼뜨렸고, 그 가운데 단군 성조(聖祖)의 35대 손(孫)에 영걸(英傑)한 인물이 나와 일본 땅을 다스리게 되었으니, 그가 바로 일본의 초대 천황 진무(神武)이오. 일본의 역사는 그때로부터 시작된 것이고, 그로부터 또한 수백 년 후에 한반도의 백제에서 건너간 문성(文聖) 왕인(王仁) 박사가 전한 문자를 토대로 현재의 일본 문자가 생기게 된 것이오. 지나간 역사가 이러하니 조선을 일본의 부모 나라라고 한들 잘못이라고 할 수 있겠소? 단군 성조가 남긴 천부경(天符經)을 보면 내가 방금 얘기한 내용과 일본이 한반도를 침략해 온 작금의 상황을 미리 예언해 놓은 부분을 볼 수 있소. 천부경 가운데 ‘環五七一妙衍萬往萬來用變不動本’이라는 부분이 그것인데 해석하자면, 다섯과 일곱이 얽히는 때에(環五七), 즉 5×7=35, 단군의 35대 손에 이르러, 한 인물이 묘하게 퍼져 나가(一妙衍), 만이 되어가고 만이 되어 오되 쓰임이 변하나(萬往萬來用變), 즉 하나의 나라를 이루어 본래 있던 곳으로 침략해 오지만, 그 근본은 변할 수 없다(不動本), 즉 본래 한반도에서 건너간 동족임은 부인할 수가 없다는 말이오. 천부경에 대한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一析三極無盡本’, 즉 ‘하나를 세 끄트머리(갈래)로 쪼갠다 하더라도 그 근본에 다함은 없다.’는 구절에서 말하는 3이라는 숫자는 양수 중의 최상위 숫자이며 사물의 극(極)을 의미하는 아홉(九)이라는 숫자와 함께 천부경에서 일컫는 신수(神數)인데, 그 신수를 이름에 사용한 일본의 지명과 인명ㆍ회사명을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에서도 우리는 일본에 대한 천부경의 영향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오. 큐슈(九州), 미시마(三島), 미키(三木), 미우라(三浦), 미쓰이(三井), 미쓰비시(三菱) 등 무수한 명칭에서 천부경의 흔적을 볼 수 있듯이, 일본인들 가운데 상당수는 결국 우리 조선인과 매한가지로 단군 성조의 후손이란 말이오. 그런데 일본은 화평을 도모하고 서로 힘을 합쳐 오순도순 살아야 할 조선을 줄곧 무력을 앞세워 침략하는 죄를 저질렀으니 머지 않아 일본은 큰 재앙을 자초하게 될 것이오.”

운룡은 자신의 존재 그 어딘가에 세세히 기록되어 있는 수천 년 전의 일들을 눈앞에 환히 보이는 듯 거침없이 말을 이어갔다. 두 내외는 처음 듣는 신기한 얘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귀를 기울였다.

“지 선생이 하시는 얘기를 문헌으로 확인하자면 어떤 것을 찾아 읽어야 되는지 말해 주겠소? 좀 더 자세하게 알고 싶어서…….”

운룡은 그와 같은 상황에 처할 때마다 이해시킬 말이 없었다. 눈 앞의 단순한 오감에 의지하여 자기가 보는 것, 듣는 것만이 전부인 줄 알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시공을 초월하여 자유자재로 관조할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을 납득시킬 수는 없었다. 운룡의 눈에만 환히 보이는 역사적 사실을 아무 것도 보지 못하는 캄캄한 보통 사람들에게 무슨 수로 이해시킨단 말인가. 사실은 사실인데 왜 사실인지 증명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글쎄올시다. 혹 문헌에 기록되어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하는 얘기는 어떤 문헌을 보고 나서 하는 얘기가 아니라 내 머릿속에 보이는 대로 말하는 것뿐이오. 사람들은 눈을 감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겠지만, 나는 눈을 감으면 상고(上古) 시대에 일어났던 일이나, 우주만상이 거울알처럼 다 비치니 누군들 이상하게 여기겠지요. 믿으면 다행이고 안 믿어도 할 수 없습니다.”

형무소장은 마치 자기가 운룡의 이야기를 믿지 않으려 하는 것으로 오해받을까 염려하여 당황하는 표정을 보이며 말했다.

“오해하지 말아 주시오. 내가 지 선생의 말을 의심해서 한 말은 아니었소. 단지 옛일과 관련하여 보다 많은 내용들을 알고 싶었을 뿐이오. 아무튼 국가 차원에서 행해지는 일이야 말단 관리인 내 입장에서는 알 수도 없고, 또 어떻게 해볼 도리도 없다는 것을 이해해 주시구려. 불법을 따르고자 하는 한 인간으로서 일본국과 조선의 관계를 생각하면 안타까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요만, 사필귀정이라고 했으니 언젠가는 빗나간 역사가 올바른 방향을 잡을 때가 반드시 있을 것이오. 자, 말씀하시느라 시장하실텐데 하찮은 음식이지만 집사람의 정성으로 보아 어서 좀 드십시다.”

형무소장은 일본인이지만 점잖은 인물이었다. 그의 아내 역시 평범하면서도 마음 착해 보이는 여성이었다. 운룡은 이들 부부가 자신을 부른 것은 마음 속에 원하는 바가 있으리라고 생각하여 운을 떼었다.

“이렇게 대접해 주시니 이젠 제가 보답을 해드려야 도리인 것 같습니다. 두 분을 보아하니 다른 부족한 것은 없을 듯하고 오직 한 가지 후사를 간절히 원하는 것 같은데 제가 잘못 본 것인지요?”

운룡이 짐짓 어조를 부드럽게 하여 말하자 형무소장 내외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아니, 지 선생께서는 우리 부부의 마음을 어찌 그리 훤히 들여다보십니까? 아닌 게 아니라 우리에게는 자식이 없어서 살아가는 게 늘 쓸쓸하답니다. 아무래도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그 쓸쓸함은 더 깊어지겠지요. 우리 나이 이제 50이라 자식 인연이 없다 생각해보기도 했는데 부처님의 뜻인지 이렇게 지 선생같은 분을 만나게 되었으니 감히 말씀드리는 바입니다. 염치없는 부탁인줄 잘 알지만 지 선생께서 워낙 보통 분이 아닌 듯하여 언감생심 청해봅니다.”

형무소장의 부인은 간절한 눈빛으로 운룡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으로 보아 그녀가 얼마나 간절히 자식을 가지고 싶어 하는지 알고도 남을 것 같았다. 운룡은 비록 적이지만 개인적인 적개심은 없으니 이것도 인연이라 생각하고 착한 부부에게 처방을 일러주었다.

“부인께 포태(胞胎)가 되지 않는 까닭은 아기집이 허냉(虛冷)한 까닭이오. 그것을 먼저 보(補)하지 않으면 결코 후사(後嗣)를 볼 수가 없을 것이오. 하지만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하면 머지않아 소원을 이루어 기쁜 결과를 보게 될 것이오.”

형무소장의 부인은 운룡의 말을 듣고 얼굴 가득 기쁨에 찬 미소를 떠올리며 임신을 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무엇이든지 따르겠노라고 다짐을 했다.

“우리나라의 토종 집오리 한 마리를 잡아서 털과 똥만 제거하고 내장을 포함한 그 나머지를 모두 솥에 넣고 뼈가 흐물흐물해질 때까지 푹 곤 다음 식히면 위에 흰 기름이 엉기는데, 그것을 걷어낸 뒤에 더운물을 더 붓고 말린 참옻나무 껍질 1근과 금은화(金銀花, 인동꽃) 1근을 넣고 국물이 한 되 가량으로 졸아들 때까지 달여서 그 국물을 수시로 마시도록 하시오. 그렇게 서너 마리의 집오리를 달여 먹고 자궁상태가 좋아지면 이 포태방을 약방에 구해 달여 드시오. 좋은 결과가 있게 될 것이오.”

운룡은 즉석에서 지필묵을 가져오게 한 다음 포태 처방을 적어 주었다.

“사람 몸의 간이 모든 피를 관장하는데 간의 일곱 잎 중에 동쪽 셋째 잎의 피가 난소에 이르러 아기가 이루어집니다. 부인의 자궁 온도가 낮거나 남편의 정력이 부족하여 자궁에 이르지 못하면 임신이 되지 않는데 이 약의 도움을 받으면 원하시는 아기를 잉태하실 수 있습니다. 이 약을 다 먹는 기간 동안은 절대 내외관계를 하시면 안되고 술은 입에도 되면 안 됩니다.”

운룡은 약재의 법제법을 하나하나 다 일러주고 그 원리를 설명하여 주었다. 태어나서 처음 듣는 잉태의 원리에 소장 부부는 운룡을 신처럼 우르러 보았고 포태비방을 얻자 날아갈 듯이 기뻐하며 수십번 머리를 조아렸다.

소장 부인은 운룡의 지시대로 약재를 구해다 한 점 소홀함이 없도록 정성을 다해 복용했고 몇 달 뒤 임신하자 사람을 시켜 운룡을 다시 관사에 초빙했다.

“지 선생으로부터 입은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해야 할지……. 마침내 집사람이 임신을 했소이다. 우리 부부에게 이런 기적이 일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신 은혜는 죽을 때까지 잊지 않으리다. 고맙소이다. 정말 고맙소이다.”

형무소장 부부는 산해진미로 정성을 다한 상차림 앞에서 이마로 다다미 방바닥을 찧듯이 하며 몇 번이고 절을 하는 것이었다.

“선생님 같은 분이 이런 처지에 계시는 것이 기가 막힌 일이지만 나라 일은 어쩔 수 없으니 여기 계시는 동안은 저희가 정성껏 모시겠습니다. 법을 집행하는 관리로서 위법 행위를 할 수는 없지만 출소하시는 날까지 가능한 한 모든 편의를 봐드릴 것이니, 필요 사항이 있으면 언제라도 괘념치 말고 말해 주시오. 신통(神通)한 솜씨를 지니신 지 선생을 만나게 된 것이 우리 부부의 생애에서는 가장 복된 일이 될 것이오. 정말 고맙소, 지 선생.”

운룡은 형무소장이 진심으로 고마워하여 자신의 감옥에서의 생활 편의를 돌봐주려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동지들이 산과 들에서 비참히 죽어가고 있는 것을 알기에 소장의 배려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소장님 내외분의 마음은 감사하나 내가 어찌 동지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나 혼자만 편안히 지낼 수 있겠소? 오늘 이런 대접 받은 것으로 족하니 나는 가만히 내버려 두시고 정당치 못한 일본국의 침략 행위는 처참한 패배로 막을 내리게 될 것이라는 점을 명심하시고 늘 자중자애하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소.”

운룡의 마음속에는 언제고 기회가 닿으면 탈옥을 하겠다는 계획이 있었기에 형무소장과의 인연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죽을 목숨을 살려주거나 평생의 소원인 자식을 갖게 해준 것이 부지기수였지만 운룡이 늘 그 댓가로 받는 것은 감사하다는 말이 대부분이었다.

춘천 형무소에서는 웬만한 죄수들은 낮에는 외부의 건축공사장으로 차출되어 노역을 하고 밤에는 형무소에서 잠을 잤다. 운룡은 고문으로 만신창이가 된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고 빠진 발톱도 아물어가면서 노역 죄수가 되었다. 머리가 뛰어나고 노동력 또한 보통 사람의 열 몫 스무 몫을 해냈기에 건축공사장에서 운룡은 간수들의 신임을 얻게 되었다.

그들 중에는 환자를 가족으로 둔 자들도 있어 운룡에게 처방을 물어서 치료받기도 하였다. 운룡이 건축 일을 워낙 잘 해냈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자 간수들의 감시가 소홀해졌다. 일하는 틈틈이 주변의 지리를 살펴보고 도주로를 계산해 계획을 세우다가 마침내 복역한지 1년 6개월 되는 어느 날 운룡은 노역장에서 탈출하여 산속으로 몸을 숨기는 데 성공하였다. 탈옥에 성공한 운룡은 태백산맥을 따라 갖은 고초를 겪으며 북으로 북으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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