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혁재의 지선 전망대 D-49] 4월13일의 선거들···1919 임정·2000 총선·2016 총선
4월 13일 오늘이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선거가 실시된 날이라는 사실을 아십니까? 1948년 5.10 총선거가 우리나라에서 처음 실시된 보통선거라고 배운 내용과 달라 의아할 겁니다. 5.10 총선거보다 29년 전인 1919년 4월 13일에 이미 선거가 실시되었습니다. 일본의 식민통치를 받던 시기였고, 선거를 치른 곳은 중국 상하이였습니다.
4월 11일에 중국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을 선포했습니다. 이틀 뒤인 4월 13일 임시의정원을 구성하기 위해 독립지사 1,000여명이 상하이에 모여 대의사(代議士)를 선출했습니다. 대의사는 오늘날로 치면 국회의원입니다. 대의사는 조선 8도와 러시아·미국·중국령을 대표하는 33명이었습니다.
헌법 전문에는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에 따라 수립되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따라서 상하이 임시정부의 임시의정원 대의사를 선출한 이 선거가 우리나라 최초의 선거가 되는 셈입니다. 일제치하여서 식민지 조선의 민중들이 참여할 수 없었기 때문에 보통선거가 아니었을 뿐입니다.
지방선거는 아니지만 공교롭게도 4월 13일에 두 차례 선거가 실시되었습니다. 2000년 4월 13일에는 제16대 국회의원 총선거, 2016년 4월 13일에는 제20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실시되었습니다. 두 선거 모두 주춧돌선거(founding election)라 부를 만합니다. 주춧돌선거란 새로운 정치 지형을 만드는 결정적 계기가 된 선거를 말합니다.
2000년 제16대 총선의 투표율은 57.2%로 당시로선 역대 최저 투표율이었습니다. 제12대 총선(1985) 때 84.6%였던 투표율은 제13대(1988) 75.8%, 제14대(1992) 71.9%, 제15대(1996) 63.9%로 낮아지더니 처음으로 60% 밑으로 떨어졌습니다. 공동여당인 민주당과 자민련이 115석과 17석, 야당인 한나라당이 133석을 차지했습니다.
주권행사를 포기한 시민이 많았음에도 제16대 총선을 주춧돌선거로 부를 수 있는 건 낙천낙선운동 때문입니다. 제16대 총선의 승자는 여당도 야당도 아닌 바로 시민이었습니다. 낙천?낙선운동으로 말미암아 지금까지 정치의 구경꾼으로 밀려나있던 시민이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렸던 것입니다.
많은 시민단체들이 총선시민연대를 결성해 낙천낙선운동을 벌였습니다. 절대로 국민의 대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제시한 낡은 정치인 115명 가운데 29명은 정계를 은퇴하거나 낙천되었습니다. 출마한 86명 가운데 3분의 2가 넘는 59명이 낙선했습니다. 유엔은 낙선운동을 ‘올해의 시민운동’으로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낙선대상은 부정부패와 비리에 관련된 정치인, 군사 쿠데타 등 헌정질서 파괴나 반인권적 사건에 직접 관여했던 정치인, 선거법을 어긴 정치인들이었습니다. 지역감정을 선동하거나 의정활동이 부실했던 정치인, 교육?여성?환경?인권 문제 등에 대한 개혁성이 없거나 악법을 만드는 데 앞장섰던 정치인들도 낙선대상이었습니다.
21세기 첫 선거인 제16대 총선은 한국정치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 주었습니다. 과제를 구체적으로 해결한 건 아니지만 삐딱한 정치를 바로 세우는 계기는 마련되었습니다. 온 나라의 시민단체들이 함께 하지는 않지만 지금도 선거 때마다 지역별로 부문별로 다양한 낙선운동이 벌어집니다. 지방선거에서도 낙선운동이 벌어집니다.
2016년 제20대 총선도 ‘순차적 심판’으로 시민의 힘을 보여준 선거였습니다. 전국적으로는 무능하고 부패한 정권의 독선과 독주에 대한 ‘1차 심판’이 이뤄졌습니다. 16년 만의 여소야대가 됐고 1석 차이지만 집권여당은 제2당으로 떨어졌습니다. 제1당이 호남지역에서 참패한 건 부패 무능정권을 막지 못한데 대한 ‘2차 심판’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