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표의 신문명①] “한-미 정치권은 왜 노숙자 문제를 방치할까?”

서울역 급식소 앞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노숙인들

[아시아엔=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 원장] 미국은 전 세계에서 자연자원이 가장 풍부할 뿐만 아니라 과학기술도 가장 발달한 나라다. 여기다가 민주주의도 발달해서 모든 국민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 그래서 국민소득도 5만 달러를 넘어 북유럽 작은 나라들과 중동의 산유국 몇 나라를 제외하면 전 세계에서 가장 높다.

그런데도 국민의 삶은 어떤가? 계층에 따라 삶의 질의 차이가 크겠지만, 내가 이번에 미국에 와서 느낀 점 몇 가지를 중심으로 미국이 얼마나 비인간적인 사회인가를 지적하고자 한다. 미국을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여기서 교훈을 얻었으면 해서다.

우선 노숙자가 너무 많다. 노숙자가 이렇게나 많아서는 국민소득이 아무리 높은들 국민이 행복할 수가 없다. 내가 와 있는 로스앤젤레스의 경우 노숙자들이 길에 늘려 있다시피 하다. 일반적으로 로스앤젤레스에만 약 10만명의 노숙자가 있다고 하는데, 눈에 보이는 사람으로는 최소한 20% 이상이 노숙자 내지 행려자인 것 같다.

물론 이런 점이 있을 것이다. 살 만한 사람들은 대부분 차로 이동해서 길에서 보이는 사람 기준으로는 노숙자의 비율이 더 높아 보일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국민소득이 5만 달러가 넘는 데다 천혜의 자연자원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나라에서, 그리고 너무 많이 생산하고 너무 많이 소비하고 있는 나라에서 삶의 기본이 되는 집이 없어서 인간으로서는 절대로 겪어서는 안 되는 참상을 겪고 있는 노숙자들이 너무나 많은 것은 미국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비인간적인 나라인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예다. 그리고 노숙자 문제 해결에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하는 미국의 정치권이 얼마나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나는 이번에 미국에 와서 일부러 버스를 타고 오랜 시간 정처 없이 가 보았는데 버스 안이 노숙자로 가득 차 있었다. 버스에 타는 사람의 90% 이상이 흑인이고, 어쩌다 백인이 한두 명 있을 정도였다. 유색인종은 모두 흑인처럼 보였다.

로스앤젤레스의 기온은 여름철이나 마찬가지라 핫팬티만 입고 다니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낮에는 더운 편이다. 그런데도 대부분 승객이 두터운 겨울옷을 입고 있었다. 거기다가 시커먼 모자까지 쓰고 있었고, 또 보따리를 두어 개 들고 있었다. 이런 모습은 이들이 대부분 노숙자임을 말해준다. 노숙자가 아니라면 저렇게 두꺼운 옷에 모자를 쓰고 다닐 필요가 없을 것이니 말이다. 보따리에는 잠잘 때 바닥에 까는 것과 덮는 것이 들어있을 것이 분명했다. 완전히 거지의 모습 그대로인데, 몇 날 며칠 목욕은커녕 세수도 하지 않은 것 같아 몸이 닿을까 봐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도 승객이 많을 때는 몸이 닿으려 해서 피하려고 안간힘을 써도 피하기가 어려웠다.

이런 날은 나는 호텔로 돌아오자마자 손부터 씻고 옷도 밖에 나가 털고 곧바로 목욕을 했다. 한두 시간 그들과 함께 서 있거나 앉아 있는 것조차 참기 어려워서 말이다.

나는 평소 노숙자 문제로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이다. 자괴감을 가진 때도 많았다. 우선 국민을 위해 정치를 한다면서, 더욱이 민중운동을 해온 사람으로서, 특히 단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모든 사람이 행복하게 사는 세상을 건설하기 위해 정치를 한다고 해온 사람으로서 노숙자 문제가 대두되면 부끄러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노숙자의 어려움이 그렇게나 가슴 아프면 ‘단 한 사람, 단 한 번이라도 노숙자를 집에 데려와서 목욕시키고 밥 먹여서 재운 일이 있는가’라는 물음이 나를 짓눌렀기 때문이다. 설사 집에는 못 데려오더라도 목욕탕으로 데리고 가서 목욕시켜서 밥이라도 사주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한 일조차 없어서 말이다. ‘노숙자’를 입에 올리기 참으로 부끄럽다.

그런데 변명거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공적 권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고는 노숙자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말이다. 감히 말하건대 성현군자도 노숙자를 자기 집에 데려가 함께 살지는 못하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은 인간에 대한 사랑이 부족한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런 생각을 해 온 사람이 노숙자와 같은 버스를 타고서 몸이 좀 부딪친 일이 있다고 해서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목욕을 할 정도니 노숙자에 대한 내 걱정이 진실한 것인지 의심스럽기는 하다.

나는 미국에 있는 동안 하루 한 끼는 한국 음식을 먹어야 체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아 한국 식당에서 불고기를 아주 맛있게 먹고 호텔로 돌아와 침대에서 자는데 낮에 본 노숙자들이 생각나서 잠자기가 힘들었다.

나는 지금 하얀 시트로 정돈된 호텔 침대 위에서 폭신한 이불을 덮고 자는데 저들은 평생 이런 방에 한 번도 자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할 것 같아서다. 이래도 되나 싶지만 뾰족한 대책이 떠오르지는 않았다. 다만 언젠가 노숙자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반드시 강구해야겠다는 다짐은 했다. 가장 시급한 것이 이 문제 아니겠는가?

그런데 미국 사람들은 노숙자의 이런 참담한 삶을 모를까? 부자 동네인 비버리힐즈나 산타모니카 같은 곳에 사는 사람들은 이런 하층민(사실은 하층민도 못 되지만)이 있는지조차 모를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강력한 나라라는 미국에 이런 노숙자들이 부지기수로 많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 혹자는 홈리스들은 집에서 사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이어서 어쩔 수 없다고. 또 강제로 국가시설에서 살게 하는 것은 그들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인간의 존엄을 보장하는 것이 자유의 보장이지 비인간적인 고통을 겪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자유의 보장일 수는 없다.

나는 노숙자 문제와 관련하여 다음 두 가지를 지적해두고자 한다.

우선 정부가 노숙자 문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점이다.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특히 미국은 돈이 넘쳐나는 나라다. 위정자가 결심만 하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다. 그 방법은 여기서 길게 말할 일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든 미국이든 왜 정치권이 노숙자 문제를 방치하고 있을까? 심지어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으려 한다. 해결할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그들 눈에 노숙자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보이기는 하지만 국민으로 보이지 않고 심지어 인간으로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혹 그들은 투표를 하지 않을 가능성이 커서 정치인들이 그들을 무시하는 걸까? 만약 그렇다면 그런 사람은 정치를 해서는 안 된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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