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표의 신문명②] 노숙자와 비만, 그리고 국민행복

비만, 방치했다간 여러 질병이 몰려온다

[아시아엔=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 원장] 국민들도 노숙자 문제를 남의 문제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정부더러 이 문제를 해결하도록 촉구해야 한다. 노숙자의 인권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우리 자신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다. 노숙자들이 방치되어 있는 한 누구도 행복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본성상 연민의 정을 갖고 있어서 다른 사람의 불행을 보면 자신도 고통스럽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맹자는 인간에게는 불인지심(不忍之心), 곧 어쩔 수 없이 갖게 되는 마음이 있는데,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이 그것이라고 했다. 측은지심 곧 다른 사람의 고통을 보면 그것을 측은하게 생각해서 그도 고통을 느낄 수밖에 없는 마음을 인간은 본능적으로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혹 이런 마음이 없다면 그런 사람은 인간이 아니라는 것이다.

<국부론>의 저자 아담 스미스도 <도덕감정론>이란 책에서 인간은 다른 사람과 공감하는 마음을 본능처럼 지니고 있어서 이웃에 불행한 사람이 있으면 자신도 불행한 마음을 갖게 된다고 했다.

‘인간의 원형’이라고 볼 수 있는 전태일이란 사람은 이런 말을 한 일이 있다. “나는 조금만 불쌍한 사람을 보아도 마음이 언짢아 그날은 기분이 우울한 편입니다”라고. 어찌 전태일 만이겠는가? 인간은 누구나 본질적으로 불쌍한 사람을 보면 마음이 언짢고 연민의 정을 느끼게 되어 있다.

그래서 주위에 불쌍한 사람이 있으면 자신도 행복할 수가 없다. 노숙자가 방치되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고서 어떻게 자기만 행복할 수 있겠는가? 이렇기 때문에 노숙자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도 노숙자가 방치되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한다. 모든 사람이 행복해야 자신도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다.

다음으로 미국에는 비만자가 너무 많다. 통계상 미국인의 약 40%가 비만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의학적 수치를 말하는 것 같고, 내가 로스앤젤레스에서 본 바로는 거리에 돌아다니는 사람의 약 30%가 비만으로 보인다.

비만자들이 개인적으로 겪는 고통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겠지만, 사회적으로 이를 쳐다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고통도 굉장히 크지 않을 수 없다. 노숙자는 구제수단이라도 있을 것 같은데 비만은 구제 수단조차 찾기 어려울 것 같아 더 마음이 아프다. 비만이 심한 사람을 보면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다.

왜 이처럼 비만자가 많을까? 한 마디로 경제적 풍요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때문인 것은 분명하다. 먹고 살기가 어려웠던 때는 비만자가 거의 없다시피 하다가 먹을 것이 많아진 때부터 비만자가 폭발적으로 많아졌으니 말이다.

비만은 영양을 과다하게 섭취한 때문이겠는데, 이런 일은 주로 가난한 사람과 지식수준이 낮은 사람들에게 압도적으로 많이 나타나는 것이 분명하다. 가난하니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게 되는데도 생활의 여유가 없어 운동을 적절히 하지 못하는 것이 비만의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또 지식수준이 낮아 음식을 절제하거나 생활을 절도 있게 하지 못하는 것 또한 비만의 중요한 원인일 것이다. 부자와 고학력자 중에는 비만한 사람이 극히 적은 것도 이를 말해준다.

여기서 비만의 원인을 따지자는 것이 아니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든 비만자가 이렇게나 많아서는 결코 행복한 사회가 될 수 없기에 이런 상태를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되겠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앞에서 노숙자 문제는 노숙자들만의 고통에 그치지 않고 국민 전체의 고통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음을 지적한 바 있듯이, 비만자의 문제도 비만자만의 고통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국민 전체의 고통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없다.

요컨대 미국 사회에 비만자가 이렇게나 많은 것은 미국 국민의 불행이기도 하지만 미국 사회의 수치이기도 하다. 국민소득이 아무리 많고 국력이 아무리 강하면 뭐하나? 국민이 불행하고 나라가 수치스러운데 말이다. 국민소득이 100만 달러가 되면 뭐하나? 노숙자 문제나 비만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말이다. 지금까지와 같은 방식의 국가운영과 삶의 영위로는 국민소득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노숙자 문제나 비만 문제가 더 심각해질 것이니 말이다.

많은 다른 나라들도 사정은 비슷하겠지만 특히 우리나라는 미국을 선진국으로 간주하여 미국을 따라가기를 바라는 국민이 많은 편이다. 물론 여러 부문에서 미국이 뛰어난 점도 많다. 그러나 나더러 미국에 가서 살라고 하면 살 수 없을 것 같다. 총기 문제나 마약 문제 등도 심각한 것 같지만 그런 문제는 당장 눈에 보이지 않으니 참고 넘길 수가 있겠으나, 노숙자와 비만자는 일상적으로 눈에 보이니 참고 보아 넘길 수가 없어서 말이다.

나는 오래 전에 중국이 한창 경제개발을 시작할 때 이런 생각을 한 일이 있다. ‘이왕 늦게 경제개발을 시작하게 되었으니 선진 공업국들이 겪은 시행착오를 거울삼아 올바른 경제개발을 했으면’ 하고 말이다. 그런데 중국도 선진 공업국들이 걸어간 그 길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 같아 안타깝게 생각한 일이 있다.

우리나라는 더 그러하다. 국민소득이 4만 달러 내지 5만 달러를 넘는 선진공업국들이 노숙자, 비만, 폭력, 마약, 성범죄, 이혼 등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보고서도 거기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오히려 그런 나라들을 따라가고자 하니 이래서야 되겠는가?

경제성장 곧 국민소득 증대만을 추구하는 것으로는 국민이 결코 행복할 수가 없는데도 말이다. 국민소득이 2만 달러일 때 국민이 행복할 수 없으면 국민소득이 5만 달러, 10만 달러가 되어도 국민이 행복할 수가 없다. 올바른 국가운영 방법과 삶의 영위 방식을 강구하면 국민소득이 2만 달러일 때도 국민이 행복할 수 있지만, 올바른 국가운영 방법과 삶의 영위 방식을 강구하지 못하면 국민소득이 5만 달러, 10만 달러가 되어도 국민이 행복할 수가 없고 오히려 더 불행할 수 있다. 내가 ‘신문명 정치’를 주장하는 이유이다.

나는 대선 직후 현재의 정치와는 거리를 두려고 미국으로 도망을 왔는데, 이왕 온 김에 미국 서부에 있는 그랜드 캐년 등 자연의 위대한 작품들을 보면서 자연의 오묘한 섭리를 학습하고자 패키지여행을 다녀왔다. 이에 대한 소감은 다음 기회에 써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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