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크 이만수 감독 ‘게임 체인저’에서 ‘인생 체인저’로
최근 들어 사회 및 경제 등에서 게임 체인저(Game Changer)라는 용어를 자주 듣게 된다. 이 용어는 어떤 일에서 결과나 흐름의 판도를 뒤바꿔 놓을 만한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나 사건, 제품 등을 이르는 말로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다.
선수와 지도자 생활을 포함해 50년 넘는 시간을 야구 한길을 묵묵하게 달려온 나에게 지금 이 용어는 크게 와 닿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선수로서의 삶 속에서 한 경기 한 경기 게임 체인저의 역할을 하기 위해 매달려 왔던 숨가쁜 시절들이 있었다.
그러한 프로야구 선수생활을 하면서 매 경기 최선을 다하는 내 모습을 통해 용기를 얻고 꿈을 가지게 되었다고 말해주는 누군가의 이야기에 감동 받았던 경험이 있다. 또한 치열했던 야구 현장을 떠나 국내와 세계 곳곳을 누비며 재능기부를 시작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야구를 통해 꿈과 희망을 가질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았던 화려했던 선수 생활을 뒤안길로 보내고 점점 나이가 들고 더 이상 선수로서 고향팀에서 뛸 수 없음을 직감했다. 좌절과 슬픔 속에 선택한 미국에서의 외로웠던 시간을 견디며 경험했던 메이저리그 우승. 이후 누구나 꿈꾸는 한국프로야구의 감독이 되어 화려하게 돌아왔지만 성적 등으로 인해 팬들의 비난을 혼자서 감수해야 했던 힘든 고독의 시간을 보냈다.
야구인이 꿈꾸는 최고의 자리에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그 뒤에 감춰진 고통과 고뇌의 시간이 나를 되돌아보게 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9년 전 야구의 불모지 라오스에서 야구를 전파하고 보급하는 활동을 시작하면서 내 인생 야구 2막을 시작했다. 누군가는 헐크의 인생 야구 2막이 1막과 비교해 초라하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뜻밖의 메시지 한 통으로 그것이 아님을 자신있게 설명하고 싶다.
“사업을 통해 부와 명예를 누리면서 화려한 인생을 살아가다가 한순간에 회사가 부도를 맞이하였습니다. 죽음의 길을 선택하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때 오랫동안 팬으로 좋아했던 이만수 감독님의 라오스 야구 보급 뉴스를 보고 문득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이만수 감독님의 표정에서 진정한 행복이 느껴졌습니다. 어떻게 이만수 감독은 최고의 자리에서 너무나 힘든 저런 선택을 하면서 행복할 수 있을까? 문득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용기를 가지고 살아보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야구장을 호령하며 파이팅을 외치는 헐크의 강인한 인상에 감탄하여 야구 선수가 되었고, 지금은 그라운드를 종횡무진 누비는 프로야구 선수가 된 이도 있다.
힘든 경기를 마치고 버스로 돌아가는 길에 팬이라고 찾아와 공부에 지쳐 방황하고 있다는 말에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에 용기를 얻고 학업에 매진하여 지금은 어엿한 성형외과 의사가 되었노라 소식을 전하는 이도 있다.
선수로서, 지도자로서 야구 현장에서 항상 게임 체인저가 되기 위해 매 순간 최선을 다했다. 많은 명예를 누렸고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지만 나 스스로 만족하는 삶을 좇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야구’라는 단어조차 존재하지 않았던 라오스에서 시작한 야구 재능기부와 보급을 통해 나는 ‘나’를 넘어서 ‘모두’가 행복해지는 것을 느끼고 있다. 화려하지도 않고 아무런 부와 명예도 주어지지 않는 이 활동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의미를 찾게 하고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다는 것이 너무 행복하기만 하다.
나는 이제 더 이상 게임 체인저는 아니지만 누군가에게 희망을 주고 그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인생 체인저(Life Changer)로 살아가고 싶다. 그것이 이제 내가 야구를 통해 받은 사랑에 대한 마지막 과제이며 숙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