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순의 추억과 사유] 연변시인 김정호

연변 동포시인 시선집 김정호외

한때 중국 조선족들이 한국을 오고싶어 난리법석이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그들은 한국을 오고싶어도 초청장이 없어서 전혀 그 꿈을 이루지 못했다. 그만큼 초청장의 위력은 대단했다.

연길 부근 모아산 정상을 오른 적이 있는데 거기엔 온통 한국초청장 판매광고로  가득했다. 지금은 전국의 식당이나 각종 일터에 조선족들의 취업이 아주 흔히 눈에 띠지만 9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취업은 불가했고 중국산 한약을 들고와서 그걸 팔아 목돈을 챙겨가는 일이 일반이었다.

당시 중국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연길에는 나랑 동년배의 김정호(金正浩)란 시인이 있었다. 그와 어떻게 인연이 닿았는지 그 구체적 과정은 지금 뚜렷하지 않다. 조선족들로서는 어떻게든 한국의 인맥과 선이 닿아 초청장을 받는 것이 최고의 목적 이었던 지라 김정호에게는 내가 유일한 실낱 같은 통로였다.

처음엔 몇 차례 편지를 주고받았는데 결국 그가 본 마음을 밝혔다. 초청장을 보내주면 그에 대한 보답을 하겠노라고. 나는 순정한 마음으로 기꺼이 그 요청에 응했다.

그의 증조부가 강원도 원주라든가 거기서 살다가 19세기 후반 두만강을 넘어갔다.
당시 흔했던 유랑민 행렬 중의 하나였으리라. 말하자면 김정호는 유랑민 3세였던 것이다.

연변 김정호 시인

그에 대한 연민의 마음을 주고받다가 나는 초청장을 발급해서 보내주고 그들 부부는 한국에 왔다. 따로 거처할 곳이 어디 있겠는가? 내 집의 방 하나를 비우고 지내도록 했다. 같이 중국식 만두도 만들어 먹고 조용한 날 경주를 비롯해 민족의 뿌리를 경험하는 그런 곳으로 데려가기도 했다.

그렇게 보름 동안 내 집에 머물다 갔다. 처음 도착할 때 엄청나게 큰 가방을 들고왔는데 거기엔 중국의 온갖 약들이 가득 들어있었고 결국 그걸 나에게 좀 팔아달라며 마음의 부담까지 한 아름 안기고 떠나갔다.

중국 약품을 누가 그렇게 반가워하는가. 여기저기에 권유해보았지만 모두 거절이었다. 결국 그 약값을 내가 떠안고 대납했다. 주변에 그냥 나누어주고 나머지는 버렸으리라. 김정호는 한국에 있는 동안 몹시 바쁘게 전국을 다니며 중국 약도 팔고
문단교제도 제법 하는 것으로 보였다.

문학과 지성사에서 “두만강 여울소리”란 제목의 연변 교포시인 시선집도 발간계약을 맺었다. 알고보니 그는 중국 연길에서 부부가 함께 여행사를 운영하는 사업가였다. 내 초청장으로 처음 한국을 다녀간 뒤 아마도 10여 차례는 다녀갔으리라.

그의 초청으로 나도 중국을 다녀오기도 했는데 온전한 사비라 비용이 꽤 많이 들었다. 그로부터 한참 뒤에 전해들은 이야기로는 그가 비운의 파룬궁 신도가 되어
중국 공안의 엄혹한 감시와 추적을 받다가 한국에서 의문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선대로부터 자손에 이르기까지 일생을 불안정한 떠돌이로 살다가 물풀처럼 생을 마감해버린 한 조선족 시인을 생각하는 새벽이다.

연변 김정호 시인이 이동순 시인에게

李東洵 교수님께

교수님과 사모님의 극진한 배려 하에 저희는 한국친지 방문을 원만히 결속하고
1월 18일 인천을 떠나 22일 아침에 연길에 도착하였습니다. 한국 방문에 여러 친구와 선생님들의 신세를 졌지만 이 교수님 일가가 저희를 열성적으로 접대하여준
인상이 가장 깊습니다.

이곳이나 그곳이나 친구를 정성껏 대해 준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연길에 돌아온 지 한 달이건만 이 교수님 일가와 함께 경주며 갓바위며 소풍가던 일이 날마다 눈에 선히 떠오릅니다.

제가 한국에서 본 가장 아름다운 풍경은 갓바위에서 바라본 구름진 산줄기 위에 떠오른 한 조각 초승달이었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씀 드려 제가 가장 기뻤던 일은 여러분이 도와 뭉칫돈을 받게 된 것보다도 이 교수님께 한복을 선물 받고 난생 처음 한복을 입은 일입니다.

앞으로 감격의 그 나날을 글로서나 써볼까 합니다. 저희가 연길에 도착하자 친구들이 끝없이 찾아왔지만 각지에서 지어 천 리 밖에서 친지들이 설 전부터 몰켜들기 시작한 것이 정월 보름인 오늘 오전에야 다 떠났습니다. 하여 여지껏 눈코 뜰새없이 분주히 보내다 나니 인사의 편지가 늦게 되어 참으로 죄송합니다.

저희를 위하여 고생하신 사모님께 문안을 드리고 단비와 응이한테도 공부를 잘  지내라고 부탁하여 주십시오. 그리고 시회 여러분을 만나면 안부를 전해주십시오.

이곳에 있는 이 교수님 친지를 통해 이 교수님 내외를 초청하기로 하였습니다.
주소와 함께 교수님 내외분의 주민등록증 사본을 저에게로 우송하여 주십시오.
그 서류에 근거하여 초청장을 보낼 수 있습니다.

금년 연길에서 교수님 내외분과 백두산 관광을 합시다. 이 교수님의 명시(名詩)가 이곳에서 교수님이 오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안녕히!

1992년 정월 보름
김 정 호

연변 김정호 시인이 이동순 시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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