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산 김일훈 64] 독극물 중독자 치료···꺼뜨릴 수 없는 생명의 불꽃
1967년 봄, 서울 중구 충무로 5가에 위치한 성혜(聖惠)한의원의 현관문을 요란하게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이미 외출 채비를 갖추고 있던 인산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20여 분 전에 전화로 다급하게 외쳐 대던 조○○ 사장이 문 밖에 도착한 게 틀림없었기 때문이었다. 벽에 걸린 시계는 새벽 한 시 반을 막 지나고 있었다.
“주무시고 계셨을 텐데…… 정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상황이 워낙 급박하다 보니……. 어서 가시지요.”
평소에 단정한 신사로서만 보아 왔던 조 사장은 반쯤 실성한 사람처럼 어쩔 바를 몰라 허둥거렸다. 인산은 미리 챙겨두었던 침통(鍼筒)과 뜸쑥 뭉치가 담긴 가방을 들고 그를 따라나섰다. 조 사장은 어느 스님의 소개를 통해 알게 된 사람으로, 그가 운영하는 회사에서 생산되는 화학섬유가 소비자들로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국내에서 선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된 굴지의 기업 소유주였다. 그는 신인세계를 넘나드는 초월적 지혜로써 수많은 난치병 환자들을 구제하고 있다는 인산의 얘기를 듣고 틈틈이 인산을 찾아와 그가 지닌 지혜의 편린(片鱗)이나마 얻어듣기를 자청했었다. 그런 그가 느닷없이 새벽 한 시쯤 인산에게 전화를 걸어와 다급한 사정을 알린 것이다.
“인산 선생님, 큰일 났습니다! 저 좀 살려주십시오. 제 장남 놈이……자살을 한답시고 극약을 먹었습니다. 지금 병원으로 실려 갔는데…… 아무래도 선생님께서 가주셔야겠습니다. 제가 지금 댁으로 바로 갈 테니, 준비하고 계십시오. ……아아, 정말 큰일입니다!”
인산은 조 사장이 안내하는 대로 그의 차에 올라탔다. 조 사장의 아들이 실려 간 병원은 을지로 6가에 위치한 국립의료원이었다. 자동차는 한적한 밤거리를 전속력으로 달려갔다.
“조 사장, 침착하시오. 아드님의 숨이 아직 끊어지지 않았다면 내가 어떻게든 살려낼 테니 나를 믿고 마음을 굳게 가지시오. 그렇게 우왕좌왕하는 모습으로 허둥대기만 하다가는 때도 놓치고, 아드님의 생명마저도 잃게 될지 모르오. 아시겠소?”
인산은 달리는 차 안에서 조 사장에게 단단히 일렀다. 가로등 불빛이 스며드는 어둠침침한 차 안이었지만, 인산은 자기를 향해 보내오는 조 사장의 간절한 애원의 눈빛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선생님만 믿겠습니다. 부디 제 자식 놈을 살려주십시오.”
조 사장은 울먹이며 말했다.
응급실 병상에 누워 있는 환자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창백했고, 입과 코는 산소마스크로 덮여 있었다. 두 여인이 각각 환자의 손을 붙잡고 울고 있었다. 환자의 어머니와 누나인 듯했다.
“방금 위세척을 끝냈어요. 속에서 피가 넘어와서…… 이 일을 어쩌면 좋아요? 아빠…… 제 스스로는 숨조차 쉬기가 힘든가 봐요.”
환자의 누나는 인산과 조 사장이 다가가자 그간의 치료 경위를 설명했다. 산소마스크를 쓰고 있는 환자의 입가에 핏자국이 얼룩져 있는 것이 보였다. 아직 환자의 목숨이 붙어 있다는 증거는 간헐적으로 울컥거리며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붉은 핏물이었다. 그럴 때마다 환자의 어머니와 누나는 자지러질 듯한 비명을 삼키며 울었고, 간호사는 황급히 산소마스크 속으로 거즈 뭉치를 집어넣어 분비물을 닦아냈다.
환자의 아버지가 도착했다는 말을 들었는지 당직 의사 세 명이 수련의 서너 명을 대동하고 우르르 응급실로 들어왔다. 최후의 통첩을 전하는 것만이 그때 그들의 당면과제였던 것 같았다.
“최선을 다했습니다만……. 체내에 들어간 독극물이 맹독인 데다 그 양이 많아서……. 가족들께서는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중의 책임자인 것 같은 의사가 조심스러워하는 눈치를 보이며 조 사장에게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요? 나는 내 아들이 죽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소. 내 아들은 결코 죽지 않을 것이오. 여기 모셔온 인산 선생님이 반드시 저 애를 살려내실 것이오.”
조 사장은 그렇게 말하며 눈물이 번득이는 눈길을 돌려 인산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덧붙여 말했다.
“선생님, 이 아이의 목숨이 아직 붙어 있으니 살려내실 수 있겠지요? 선생님만 믿고 모든 걸 맡기겠습니다. 어서 저 녀석을 일으켜 세워 주십시오. 선생님……!”
인산은 그 말을 듣고서 묵묵히 환자에게 입혀진 환자복 상의의 단추를 풀어 젖혔다. 그러고는 자신의 왼손을 환자의 가슴에 대고 지그시 눈을 감았다. 잠시의 시간이 침묵 속에서 흘러갔다. 심장 박동이 마지막 고비로 치닫고 있음이 역력히 감지되었다. 무섭게 빠른 속도로 요동치는 환자의 심장, 그러나 그 힘은 이미 미약해질 대로 미약해져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체온은 아직 따뜻한 채로 유지되고 있었기에 인산은 마음속으로 그 환자를 소생시킬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 환자처럼 가슴에 온기가 남아 있는 환자는 물에 빠져 호흡을 멈춘 경우에나 연탄가스에 중독이 되어 의식을 잃은 경우에도 100% 살려낼 수 있다는 게 그간의 경험을 통해 얻은 인산의 신념이었다. 하지만 세상의 의사들이라는 사람 가운데 그런 것을 감지해 낼 만 한 사람은 전무(全無)하다는 것이 비극이라면 비극일 뿐이었다.
그들이 인간의 생명과 관련된 근본적인 지혜를 갖추지 못함으로써 충분히 더 살 수도 있는 사람들의 생명이 포기된 예가 무릇 얼마나 될지 헤아릴 수가 없을 것이다. 난치병이라 이름 붙은 질병의 환자들일수록 의사의 손에 자신의 목숨을 맡기고, 의사의 능력에 따라 스스로는 아무것도 해보지 못한 채 죽음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이 세상 돌아가는 실정이었다.
의식을 잃고 누워 있는 환자의 가슴에 손을 대고 잠시 생각에 잠겼던 인산은 손을 떼면서 병상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을 훑어보았다. 그때 당직 책임자인 듯한 의사가 인산과 눈이 마주치자 입이 근질거려 못 참겠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뉘신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서 진료하는 사람들은 저희들입니다. 저희들은 이미 이 환자를 위해 취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였습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저희들은 이 환자가 소생할 가능성이 없다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아마 어느 의사가 보더라도 같은 결론을 내렸을 것입니다. 저희로서도 말씀드리기 어려우나, 이 환자는 이미 사망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저희들이 인정할 수 없는 여타의 의료 행위를 하는 것을 묵과할 수 없다는 것도 말씀드립니다.”
인산은 그 순간 피가 거꾸로 솟는 듯한 분노가 일었다. 그러나 사경을 헤매는 환자와 그의 가족들을 보아서 그 분노를 표출할 수는 없었다.
“이보시오 의사 양반, 당신은 지금 당신이 할 수 없는 일은 그 누구도 할 수 없다고 얘기하고 있는 거요? 그런 독단이 어디 있소? 그게 과학이고, 그게 논리란 말이오? 나는 이 환자를 살려낼 수 있소. 이 환자는 분명히 아직 사망한 게 아니란 말이오.”
인산은 격정을 누르고 완곡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 말에 실려 있는 준엄한 질문의 무게는 듣는 이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고도 남을 정도였다. 그러자 그 옆에 있던 보다 젊은 의사가 나서며 책임자의 말을 변호하였다.
“저희들이 배우고 경험한 바에 비추어 볼 때 이 환자의 상태는 이제 가망이 없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현 상태를 호전시킬 특별한 방법이 더 이상은 없기 때문입니다. 위세척을 할 만큼 했고, 강심제와 해독제도 투여할 만큼 했습니다. 이 환자가 소생한다면 저희로서도 얼마나 보람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아무리 다시 말씀드린다 하더라도 저희로서는 이 시점에서 이 환자를 포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희 과장님의 말씀도 그런 뜻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인산은 평생 동안 마주해 온 벽을 그 자리에서 또 다시 마주치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환자를 위해서는 촌각이 아쉬운 터라 대꾸하고픈 마음을 억누르고 선언하듯이 내뱉었다.
“나는 이 자리에 이 젊은이의 생명을 구하러 온 것이지 당신들처럼 아집과 편견에 사로잡혀,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하는 용렬한 의사들과 의료 방법에 대한 왈가왈부를 논하러 온 것이 아니요. 말했다시피 당신들은 이 젊은이의 생명을 이미 포기했으니, 이 자리에서 나가든가 국으로 내가 이 젊은이를 어떻게 살려내는지 구경이나 하시오.”
인산은 가지고 온 뜸쑥을 꺼내놓고 환자의 명치와 배꼽 사이에 한 혈자리를 잡아 엄지로 깊게 눌렀다. 환자의 뱃속에서 ‘꾸르륵!’ 하는 소리가 났다. 인산은 능숙한 손놀림으로 뜸쑥 뭉치에서 약간의 뜸쑥을 뜯어내어 손가락으로 밤톨만 하게 꾹꾹 눌러 뭉쳤다. 뜸쑥은 밑면은 넓고 위쪽은 뾰족한 원뿔 모양으로 뭉쳐졌다. 인산은 그것을 방금 전에 엄지로 눌러본 자리에 올려놓고 성냥갑을 집어 들었다. 그때 그 과장이라는 의사가 또 나섰다.
“지금 거기에다 불을 붙이려는 겁니까? 그게 대체 뭡니까? 그게 무슨 치료 효과가 있다고…….”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인산의 손에 들린 성냥갑을 빼앗기라도 할 태세였다. 그러자 그때까지 의식을 잃고 누워 있는 아들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인산과 의사들의 오고가는 말들을 듣고만 있던 조 사장이 벽력같이 고함을 질렀다.
“잠자코 있으시오, 제발. 여기 이 선생님께는 내 아들을 살려 달라고 내가 부탁을 드려 모신 것이니 그냥 하시는 대로 하시게 하시오. 이분은 이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의술을 지니신 분이니, 모르면 잠자코 있기나 하시오.”
웬만하면 그런 힐난을 듣고 머쓱해지는 것이 일반적인 사람들의 정서이련만, 당직 과장이라는 사람은 물러서지 하고 한마디를 더 지껄였다.
“뭐 납득할 수 있는 방법이라야 용인할 것 아닙니까? 이미 손 써볼 지경을 넘어서 있는 환자의 배 위에다 검불을 태우려 한다니…….”
그 말에 마침내 인산의 분노가 폭발했다.
“뭐라고? 검불? 네가 정녕 사람의 병을 고치는 의사냐? 이런 천하에 무지몽매한 인간 같으니라고. 그래 이게 네 눈에는 검불로밖에 보이지 않더냐? 당장 이 자리에서 물러나거라. 잠시 뒤에 이 젊은이가 소생했다는 말을 듣게 되면 그때 가서 네 돌 머리를 벽에 부딪든지 혀를 깨물든지 그건 네가 알아서 해라. 네 눈에는 이 젊은이가 시체로밖에 보이지 않을지 모르지만, 내게는 생명의 불씨가 엄연히 남아 있기에 살아날 가망이 있는 환자로 보인다. 왜 잘못 되었냐? 내가 이 젊은이를 반드시 살려낼 테니 할 얘기가 남았거든 그때 들어보자.”
모두들 비탄과 흥분에 싸인 분위기에서 잠시 일었던 설왕설래는 인산이 당직 과장이라는 의사를 준엄하게 꾸짖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더 이상 인산을 제지하려는 사람이 없었다. 무거운 침묵이 자리 잡은 가운데, 인산은 성냥을 그어 환자의 배 위에 올려놓은 뜸쑥 끝에 불을 붙였다. 바싹 마른 약쑥 뭉치에 불이 닿자 그것은 빠른 속도로 타 내려가기 시작했다. 뾰족한 위쪽 끝의 점에서 출발한 불은 점점 더 넓어지는 화면(火面)을 이루며 타 내려갔다. 향연(香煙)처럼 일직선으로 피어오르던 회색 연기는 서 있는 사람들의 얼굴 높이에서 흩어졌다. 알싸하면서도 향긋한 냄새가 방 안 가득 퍼졌다. 6~7분이 지났을까, 시뻘건 불덩어리가 되었던 뜸장의 불기운이 서서히 사위어 갔다. 환자의 누이는 그 광경을 차마 볼 수 없었는지, 고개를 외면한 채 줄곧 흐느끼고 있었다. 첫 번째 뜸장의 불이 완전히 꺼지자 인산은 그 재를 손등으로 밀쳐내고 다시 먼저와 같은 크기로 뜸쑥을 뭉쳐 올려놓았다. 두 번째 뜸장도 연기를 피워 올리며 타 들어가기 시작했다. 축소된 산(山)의 형태를 하고 있는 뜸장이 타고 있다. 그것을 큰 고통을 없애려는 작은 고통의 산이다. 죽음을 물리치고 생명의 기운을 불러일으키려고 그 산은 타고 있는 것이다.
300~400도에 이르는 고열이 집중적으로 혈자리를 통해 환자의 몸속으로 들어간다. 약쑥의 영묘(靈妙)한 기운도 아울러 들어간다. 환자의 피를 데우고 심장을 강화하여 손상된 장기의 회복을 단시간 내에 완성하기 위해 고통의 산이 타고 있다. 하지만 그 고통은 산 자의 몫이다. 죽은 자는 고통조차 느낄 수 없으므로. 환자가 큰 숨을 들이마셨다. 그 바람에 환자의 배가 불쑥 올라갔다 내려갔다. 그러나 고통의 산은 미동도 하지 않고 타 들어가기를 계속했다.
인산도 그 고통을 잘 알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받은 결과로 몸 안 곳곳에 생긴 어혈을 푸느라 자신의 몸에 어느 누구도 감행하기 어려울 만큼 지독한 의지로 쑥뜸을 떴던 적이 있었다.
그때는 계란 크기의 뜸장을 썼었다. 그것이 시뻘건 불덩어리가 될 때쯤에는 마치 불타는 집 속에서 자신의 육신도 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고통이 극렬했다. 그러나 인산은 그 고통을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 그 고통은 벗어나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 극심해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그 고통을 받아들이려는 마음을 가지면 고통이 절정에 다다르는 순간 법열(法悅)처럼 다가오는 만족과 평온함이 깃든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예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인산은 자신이 명명백백하게 알고 있는 지혜라 하더라도 자신의 육신을 대상으로 1차 실험을 한 이후에라야 다른 사람에게도 적용한 경우가 많았다. 인산으로서는 자신의 체험으로 확인한 의료 방법과 건강법이기에 더욱 확고한 신념을 갖고 타인을 위해 시행할 수 있었지만, 그 대부분이 전래 문헌의 그 어디를 뒤져보아도 나와 있지 않은 비방(秘方)이었기에 세인들로부터 자주 오해를 받았다. 특히 의료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인산의 치료 방법에 대해 ‘근거도 없는 돌팔이 행위’라는 비난을 일삼았다.
인산은 60여 평생을,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 하늘 위와 하늘 아래 나 홀로 존귀하다.)’이라고 선언했던 석가모니 부처님을 능가하는 자존심으로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인간적으로 볼 때, 그로 하여금 절대 고독감 속에서 불행한 모습으로 살 수밖에 없도록 한 것은 다름 아닌 그의 초월적 예지 능력이라 할 수 있다. 그가 그런 능력만 지니지 않았어도 얼마든지 인간 세상에서 우러름과 대접을 받으며 호의호식할 수 있었을 것이다. 흔히 세상의 지식을 몇 발짝 앞서 알고 있거나, 세상의 흐름에 몇 걸음 앞서 나아가는 사람을 선각자나 선구자라고 한다. 그러나 세상이 이해할 수 있는 범주를 벗어나도록 앞선 지혜는 도리어 조소와 비난을 면키 어려운 것이 이 세상 이치인 것을 어떻게 하겠는가?
자살을 계획하고 극약을 마셔 죽어가는 그 젊은이를 살려내려는 방법만 해도 그렇다. 현대 의학적으로는 더 이상 호전시킬 수 없다는 환자를 앞에 두고 달리 무슨 조처와 방법을 쓸 것인가? 촌각을 다투어야 하는 만큼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 그래서 부득이 세상 사람들이 쉽게 납득할 수 없는 극단적인 방법을 쓰는 것이었다. 세상 사람들의 관점으로 본다 해도 환자가 죽든 살든 우선 할 수 있는 방법을 다한 연후에, 그 방법이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 따져도 좋았다. 그러나 속수무책으로 팔짱을 끼고 구경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더욱이 인산의 경험으로 볼 때 환자의 숨은 아직 끊어진 상태가 아니므로, 방법만 옳다면 충분히 살려낼 수 있는 것이었다.
두 번째 뜸장의 불도 사위어 갔다.
의식이 있는 환자였다면 피부를 거쳐 속살까지 태우며 들어가는 열꽃의 극성함이 주는 고통에서 벗어나 서서히 감소하는 고통의 강도(强度)에서 오히려 안온함을 느끼게 되는 시점이다. 그러나 그 젊은이는 아직 의식이 없는 상태이기에 아무런 고통도, 안온함도 느끼지 못하고 있을 것이었다. 단지 시술하고 있는 인산만이 내심으로 그 고통의 과정을 시시각각 느끼고 있을 뿐이었다.
어느덧 환자의 입에서 울컥거리며 넘어오던 핏물의 빈도와 양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었다. 뜸장을 올려놓았던 부위에 지름 1~2cm 크기의 딱지가 형성되었다. 살아 있는 환자의 몸이 외부의 자극에 반응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가 아닐 수 없었다. 인체의 자기 보호 반응이라고 할까, 체내에 들어간 독성분을 해소하고 손상된 장기를 회복시키기 위해 열기(熱氣)와 약쑥의 기운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지만 과도한 화독(火毒)을 입지 않기 위해서 몸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내는 방열막이 바로 그 딱지인 것이다.
세 번째 뜸장에도 불이 붙여졌다.
누군가가 병실의 창문을 열어 방 안에 가득 찬 연기가 빠지도록 하였다. 그와 함께 바깥의 신선한 새벽 공기가 밀려 들어왔다. 환자의 가족들은 여전히 근심으로 가득 찬 표정으로 환자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의사들도 물러가지 않은 채 인산이 시술하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이제 입을 열어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 가운데 세 번째 뜸장마저도 극성했던 열기를 누그러뜨리며 꺼져갔다. 알게 모르게 핏기가 돌기 시작하던 환자의 얼굴에 누가 봐도 뚜렷한 홍조가 자리를 잡았다. 당직 과장은 슬며시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며 환자의 호흡수를 체크하였다. 1분당 호흡수가 22회로 처음에 응급실로 실려 왔을 때보다 현저히 안정되어 있음을 확인한 그는 헛기침을 두어 번 하는 것으로 자신의 마음에 일어나는 동요를 무마하려 하였다.
“이제 산소 호흡기를 떼어내도 괜찮소.”
인산의 말에 젊은 의사는 두 말 없이 환자에게서 산소마스크를 벗겨냈다.
인산은 네 번째 뜸장에 불을 붙인 뒤 조 사장에게 말했다.
“고비를 넘겼소. 이 사람은 이제 살아났소. 지금 손상되었던 내부 장기가 회복되고 있는 중이며, 곧 의식을 되찾게 될 거요. 가족들은 이제 마음 놓으셔도 좋소.”
“선생님, 정말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잃을 뻔했던 자식을 살려내 주셨으니, 이 은혜는 뼈에 새기겠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조 사장은 인산의 손을 굳게 잡으며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의사들은 호기심을 억누를 수 없었던지 병상 앞으로 다가와 환자의 용태를 확인하며 복잡한 표정들을 지었다. 그들도 환자가 놀라운 속도로 회복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인체가 지닌 오묘한 능력과 그 능력을 이끌어내는 외부의 자극으로써 치료의 목적을 달성하는 신의(神醫)의 의료 방법을 그들이 어찌 이해할 수 있으랴? 불과 몇 백 년도 채 안 되는 역사 속에서 ‘현대ㆍ첨단ㆍ과학’이라는 미명으로 치장되어 인간의 장기를 함부로 적출해 내고 화학적 약품으로 대증(對症) 치료에 주력해 온 양의학을 배워, 그것이 의술의 전부인 양 착각하고, 인술을 베풀기보다는 세상의 명리(名利)를 좇아 개인적 영달에 몰두하려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게 의사라는 직업인이다. 그들이 어떻게 약쑥을 태우는 뜸 불이 발휘하는 신비스러운 효능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조 사장의 아들이 마신 독약의 독성은 그보다 한 차원 높은 쑥불의 높은 열기에 따라 소멸되고, 환자의 피돌기가 급속도로 빨라져 손상된 장기의 내벽이 신속하게 재생되는 원리를 그들이 어느 책에서 배울 수 있었던가? 섭씨 3백 도가 넘는 쑥불은 그 자체가 강자극이다. 독물에 의해 자지러졌던 체내의 신경 조직은 그 강자극에 따라 생기를 되찾아 활발해진 혈류(血流)와 동행하며 헐었던 장기 내벽의 조직을 재생시키게 된다. 또 그렇게 재생된 장기 조직 속으로는 새로운 신경 조직이 뻗어 나가 결국 온전한 신경망을 구축하게 된다. 일반 의사들은 인체 내에 ‘하늘이 주신 의사’가 존재한다는 것을 모른다. 그러나 인산은 그것을 안다. 그리하여 그 의사의 능력을 이용하여 소우주인 인체의 흐트러진 균형을 바로잡음으로써 치료의 목적을 이루는 것이다. 인체 내에 존재하는 하늘이 주신 의사란, 바로 인체의 자기 보호 능력, 자기 회복 능력 등을 일컬음이다.
하나하나 불붙어 고운 재로 변한 뜸장의 수가 여섯 개에 이르렀고, 어느덧 일곱 번째의 뜸장에 불이 붙여졌다. 환자의 얼굴색은 완전히 정상을 되찾아, 그가 음독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편안히 잠들어 있는 것으로 여길 정도가 되었다. 그 일곱 번째의 뜸장 전체가 불덩어리를 이루며 정점에 달한 열기를 발할 무렵이었다. 고개를 한두 번 좌우로 움직이던 환자가 눈을 번쩍 떴다. 그와 동시에 환자는 반사적으로 상반신을 벌떡 일으켰다.
“앗 뜨거워!”
환자가 몸을 뒤채며 상반신을 일으키는 사품에 이글거리던 뜸장이 배 위에서 떨어져 침상 위에 흩어졌다. 조 사장이 얼른 달려들어 뜸장의 불티들을 털어 내렸다. 쑥뜸을 시작한 지 얼추 두 시간 이상이 흐른 시점이었다.
“아이고 얘야, 이제 정신이 좀 드니?”
환자의 어머니가 환자의 손을 덥석 잡으며 물었다. 눈물이 채 마르지 않은 그녀의 눈가에 안도와 기쁨의 빛이 스쳐지나갔다.
“여기가 어디에요? 내가 왜 이러고 있지요?”
환자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자기를 둘러싼 사람들의 얼굴을 휘둘러보았다. 아직 자신이 음독을 했었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치지 않은 모양이었다.
“목이 몹시 말라요. 물 좀 주세요.”
인산은 그렇게 요구하는 환자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우유를 미지근하게 해서 마실 수 있도록 하십시오.”
옆에 있던 간호사가 그 말을 듣더니 쏜살같이 뛰어나갔다. 잠시 후 그녀는 살짝 데운 우유를 잔에 담아 들고 들어왔다. 환자는 단숨에 우유 잔을 비웠다. 비로소 자신이 자살을 기도했었다는 사실을 인식했던지, 아버지인 조 사장과 눈길이 마주치자 슬그머니 고개를 떨어드렸다.
“괜찮다. 이제 위험한 지경을 벗어나 정신이 들었으니 빨리 회복할 생각이나 해라. 얘기는 그 다음에 하자.”
조 사장은 만감이 교차하는 듯 다소 흔들리는 음성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러고는 인산을 향하여 물었다.
“환자가 아직 음식을 먹을 수는 없겠지요? 속을 모두 비워냈으니 배가 고플 텐데…….”
부모다운 걱정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인산에 앞서 당직 과장이라는 의사가 앞을 가로막으며 그 말에 대답을 했다.
“아직은 안 됩니다. 음식은 하루 이틀쯤 경과를 보아 가면서 먹도록 해야 합니다. 일단 포도당 주사로 조치하겠습니다.”
조 사장의 아들을 그 잘난 현대 의학으로도 살릴 수 없다던 사람이었다. 배울 만큼 배우고 경험을 쌓을 만큼 쌓은 자기가 보기에 포기할 수밖에 없는 환자의 상태라고 했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이제 와서 ‘하루 이틀쯤 경과를 보아 가면서 어쩌고저쩌고…….’ 하는 바람에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왠지 실소(失笑)라도 터뜨리고 싶은 심정이 들었을지 모른다.
“걱정할 것 없소. 이 젊은이의 소화기관은 물론이고 혈관이나 신경 계통도 모두 정상을 되찾았으니 음식을 먹도록 해도 무방하오. 조 사장께서는 얼른 사람을 시켜 쇠고깃국을 푹 끓여다가 밥과 함께 먹이도록 하시면 좋겠소. 그러고 나면 환자가 제 발로 걸어서 퇴원할 수 있을 만큼 기운을 차릴 거요.”
주섬주섬 뜸쑥 뭉치를 챙겨 가방에 담으며 말하는 인산의 등 뒤 창문가에는 희붐하게 밝아오는 새벽빛이 다가와 병실 안을 기웃거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