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산 김일훈 67] 소경의 눈을 뜨게 하다
서울 광나루 부근의 어느 절에 법명(法名)도 없이 그저 ‘어(魚) 대사(大師)’라고 불리며 지내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승려도 아니었고, 오랜 세월 동안 그 절에서 더부살이를 하는 사람이었는데, 17세 때 열병을 앓다가 시신경(視神經)에 염증이 생겨 앞을 볼 수 없게 되었다. 소경이 된 직후부터 그는 부처의 가피(加被)를 받아 눈을 뜨겠다는 일념으로 절에서 생활하며 기도로써 30년의 세월을 지내왔다.
그러나 그렇게도 많은 나날 동안 지극 정성으로 불상 앞에 절하며 소원을 빌었건만 눈을 뜨기는 고사하고 아직 쉰 살도 되기 전인 자신의 육신이 차츰 늙어간다는 현실을 인식하고는 ‘아, 나는 끝내 이 세상의 밝은 빛을 다시 보지 못하고 늙어 죽는구나!’ 하며, 자신을 감싼 어둠보다도 더욱 짙은 절망감에 빠져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절에 시주를 하러 왔던 신자 한 사람이 그의 기구한 사연을 듣더니 지나가는 말처럼 한마디를 던졌다. “어 대사님, 지금 장안에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우고 곱사등이의 등을 펴주는 은덕을 베풀고 계시는 분 소문이 자자한데, 여기서 이러고 계실 게 아니라 어서 그분을 찾아뵙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어 대사의 귀가 번쩍 띄는 듯했다.
“아니, 그게 참말이오? 그분이 대관절 뉘시기에 그런 은덕을 베푼단 말이오?”
“글쎄 나도 전해들은 얘기라 정확히는 모르겠고…… 그저 묘향산에서 내려오신 생불(生佛)이 틀림없을 게라는 얘기만 들었지요.”
“묘향산에서 내려오신 생불이라……! 이런…… 이런…… 내가 어찌 그 얘기를 이제야 듣게 되었는고?”
어 대사는 갑자기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자신을 향해 구원의 손길이 닿은 것 같은 느낌으로 뛸 듯이 기뻐하며 그 묘향산 생불이라는 분을 찾아 나섰다. 그리하여 마침내 종로 5가의 시중한의원에서 진료를 하고 있는 인산 앞에 앉아 자신의 눈을 뜨게 해달라고 간청을 하기에 이르렀다. 인산은 어 대사가 비록 앞을 보지는 못하지만 그 눈동자만큼은 손상되지 않은 채 멀쩡히 보존되어 있음을 보고는 그가 다시 세상 빛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였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환자가 그 고통스러운 치료 과정을 능히 감내해 낼 수 있을지, 그게 문제라고 생각한 인산은 환자에게 물었다.
“그대가 세상의 광명을 다시 보기 위해서는 죽는 것보다 더 심한 고통이 따를 것인데, 그 고통을 감내할 수 있겠소?”
어 대사는 그게 무슨 말씀이냐는 듯 보이지 않는 눈을 희번덕거리며 일언지하에 잘라 말했다.
“저에게 육신의 고통 따위는 조금도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눈만 뜰 수 있다면 무슨 고통인들 저어하겠습니까? 30년을 하루같이 부처님 전에 빈 덕분으로 마침내 금일 살아 계신 부처님의 음성을 곁에서 듣게 되었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일러주시는 대로 할 터이니 이 불쌍한 중생의 눈을 뜨게만 해주십시오.”
간절히 애소하는 어 대사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솟구치고 있었다.
“내가 그대의 눈을 뜨게 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까닭은 아직 그대의 눈동자가 성하기 때문이오.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시신경을 회복시키기만 한다면 그대는 틀림없이 세상 빛을 다시 보게 될 것이오. 그러니 마음에 확신을 가지고 내가 일러주는 대로 하시오.”
인산은 어 대사를 눕게 하고 그 자리에서 관원에 5분 이상 타는 영구법(靈灸法)으로 10장의 뜸을 떴다.
“그대는 일반인들과 마찬가지로 눈으로 빛과 상(像)이 들어오지만 정작 그것을 뇌로 전달하는 통로가 막히고 끊어졌기 때문에 볼 수가 없는 것이오. 때문에 죽기를 각오하고 이 영구법에 의한 뜸 치료를 지속적으로 시행하면 막히고 끊어졌던 시신경의 통로가 열리고 다시 이어져 소원하는 대로 세상 빛을 다시 보게 될 것이오. 치료 기간은 대략 1년 이상이 걸릴 것으로 생각해야 하지만, 그 단축됨과 연장됨은 오직 그대 스스로의 치료 의지에 달려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오.”
언제부터인가 인산은 환자에게 최선의 치료를 시행했을 경우의 치료 기간을 미리 정해 주고 있었다. 왜냐 하면 빨리 치료의 결과를 보고 싶은 환자들 가운데 치료를 시작한 지 사나흘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아무런 차도가 없다.’며 쫓아와서 항의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기 때문이었다.
인산에게 뜸자리와 뜸뜨는 방법, 주의사항 등을 듣고 돌아간 어 대사는 그날로부터 자가 뜸 치료를 시행하였다. 차라리 생사람을 화장하는 편이 덜 고통스럽다고 느껴질 만큼 처절한 고통이 뒤따랐지만, 오직 눈을 뜨겠다는 일념으로 뜸을 뜨고 또 떴다. 그리하여 기적처럼 40일 만에 잃었던 육안의 광명을 되찾았다. 어 대사는 그 뒤 자신의 체험을 널리 전파하고 자신과 같은 처지에 처해 있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치료 방법을 알려주어 일곱 명의 앞 못 보는 이들에게 세상의 광명을 되찾아주는 보시(布施)를 하였다. 그러면서 한 사람의 눈을 뜨게 할 때마다 그 결과를 가지고 인산을 찾아와 상세한 경과를 설명하면서 함께 기뻐하고는 하였다.
소경 어 대사가 인산이 일러준 영구법으로 눈을 떴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 나갔다. 그 소문은 특히 몸이 성치 않았던 불구자들에게는 희세(稀世)의 복음이나 마찬가지였다. 연일 구름 떼 같은 사람들이 간절한 소망을 품고 인산을 찾아왔다. 그중에 마포에 산다는 젊은 부부가 있었다.
“선생님, 저희 어머니께서는 나면서부터 앞을 보지 못하시는 불행 속에서 한평생을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선생님께서 앞 못 보는 이의 눈을 뜨게 해주셨다는 소문을 들으시고는 선생님을 모셔 오라고 성화가 이만저만이 아니십니다. 어려우신 줄은 알겠지만, 진료가 끝난 후에라도 저희 집에 가셔서 저희 어머니를 한번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앞을 못 본다는 이의 아들로부터 그런 청을 들은 인산은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끊임없이 밀려드는 환자들을 일일이 살피느라 피곤이 넘치는 데다, 날 때부터의 소경이라면 안력(眼力)의 소생이 불가능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이미 숨이 끊어진 사람을 살려내려고 하는 것과 같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것은 고치고 자시고 할 영역 바깥쪽에 있는 본래의 상태일 뿐 아닌가 말이다.
“이보게, 자네의 효심은 세상에 드러내 놓고 칭찬할 일이겠지만, 자네도 알다시피 태생 시부터 70세가 넘도록 그렇게 살아오신 분의 눈을 뜨게 한다는 게 어디 가당키나 하겠는가? 될 성 부르지 않은 일이니 그만 단념하고 돌아가서 맛있는 음식이나 잘 드시도록 봉양하시게.”
인산은 그렇게 타일러 그들 부부를 돌려보냈다. 인산의 말에 무리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려면 숨은 붙어 있어야 하는 것이고, 꽃을 피우려면 씨앗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미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생명 현상을 일으켜 세운다는 것은 의자(醫者)의 영역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 부부는 그날이 저물 때쯤 다시 인산을 찾아왔다.
“저희 사정 좀 봐주십시오. 아까 하셨던 말씀을 저희 어머니께 그대로 전하였는데도 어머니께서는 막무가내로……. 선생님을 모셔오기 전에는 식음을 전폐하겠노라고 선언하시면서……. 제발 부탁드리니, 한번만이라도 저희 집에 가주십시오, 선생님.”
그 대목에서까지 마다할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하는 수 없이 그들 부부를 따라나선 인산이 마포에 있는 그들 집의 대문을 들어서자 안방 문이 벌컥 열리면서 머리를 곱게 빗어 쪽 찐 노파가 얼굴을 내밀었다.
“애비냐? 그래, 그 선생님을 모셔왔느냐? 내 눈 뜨게 해주실 그 의사 선생님 말이다.” 노파의 목소리가 꽤나 카랑카랑했다.
“네, 가까스로 부탁을 드려 모시고 왔어요.”
노파의 아들이 안방으로 인산을 안내해 들어서며 말했다. 인산은 노파의 눈을 보았다. 겉으로 보아서는 소경인지 아닌지 분간키가 어려울 정도로 눈동자가 투명했다. 소위 ‘눈뜬장님’이었다.
“아, 무슨 노인네가 아드님을 그리 닦달하십니까? 망령이라도 나신 겐지…….”
인산은 처음 보는 할머니의 성깔이 보통이 아니란 걸 단박에 눈치 채고, 분위기를 눅이기 위해 짐짓 농담조로 말했다.
“아이고, 선생님! 이 누추한 곳까지 오시게 해서 천 번 만 번 죄송합니다. 이 늙은이가 평생에 사무친 한이 깊어서 염치를 모르고 청했으니 너무 나무라지 마세요.”
노파는 기능을 잃은 눈동자를 초점 없이 이리저리 굴리며 아랫목 쪽을 손으로 가리켜 인산을 앉게 했다. 양 볼에 홍조가 엷게 물드는 것으로 보아서 내심 수줍어하는 것 같기도 하였다. 좌정한 인산은 노파에게 자신의 느낌을 그대로 담아 말했다.
“여사께서는 앞을 볼 수 없다는 것뿐 여타의 복은 모두 누리시며 살아오신 것 같은데, 뭐 그리 애착이 많으셔서 눈을 뜨려 하십니까? 이 세상에 눈 뜨고 못 볼 해괴한 꼴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아십니까? 괜히 눈을 뜨고서도 후회할 일이라면 생고생을 사서 할 이유가 없지요.”
“선생님, 무슨 말씀을 그리 하십니까? 제 아무리 세상의 더러운 꼴을 보게 되더라도 내 눈을 번히 뜨고 보는 것이 낫지, 어떻게 암흑천지에서 더듬거리는 삶을 그대로 살다가 죽으라고 하시는 겝니까? 눈을 뜨기 위해 생고생을 하면 어떻고, 눈을 뜨자마자 죽게 된다 한들 그게 뭐 두렵겠습니까? 오로지 내 아들ㆍ며느리ㆍ손자ㆍ손녀들의 얼굴을 내 눈으로 볼 수만 있다면, 그 무엇이라도 두려울 게 없고 아까울 게 없습니다. 그러니 내 눈을 뜨게 해주십시오. 부디…… 부디…… 은혜를 베풀어 내 눈을 뜨게 해주십시오.”
노파는 눈물에 섞인 애원을 하였다. 인산은 비록 그 노파가 날 때부터의 소경이었지만,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눈동자가 살아 있는 것을 보고 치료의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70여 세의 고령인 노인이 치료 과정의 고통과 체력 소모를 과연 잘 견뎌낼지 걱정이 앞섰다. 여느 사람 같으면 ‘내가 살면 얼마나 더 산다고…….’ 하며 중도에 포기하기 십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한번 해보십시다. 하지만 극심한 고통이 뒤따른다는 것을 각오하고, 감내하셔야 합니다.” 인산은 마침내 노파에 대한 치료를 결정하였다. 옆에 앉아 있던 노파의 아들에게도 덧붙여 말했다. “가족들도 어머니의 치료에 적극 협조해야 할 것은 물론이고, 어머니가 아무리 고통스러워한다 하더라도 치료를 중단케 해서는 아니 되니 그리 아시게.”
그날 저녁부터 시작된 노파의 쑥뜸 정진(精進)은 눈을 뜨겠다는 열망만큼이나 강렬한 의지로 진행되었다. 마포의 앞 못 보는 노파는 인산이 일러준 대로 하루에 장당 5분 이상 타는 영구 뜸법으로 50장 이상씩을 뜨는 보기 드문 의지력으로 치료에 임했다. 말이 하루에 50장이지, 그렇게 하려면 하루 온종일 배 위에 뜸 불을 올려놓고 지내야 할 정도였다. 멀쩡한 젊은이도 배겨내기 어려운 그 과정을 노파는 군소리 한번 하지 않고 오직 눈을 뜨겠다는 일념 하나로 버텼다. 그렇게 40일이 지났을 때 노파는 결국 기력이 소진하여 일어나 앉기조차 힘들어지고 말았다. 방 안에는 살이 타는 누린내가 배어 다른 사람들은 잠시도 들어가 앉아 있기 어려웠다. 노파 아들의 마음에 먼저 회의(懷疑)가 찾아들었다.
“저러다가는 지레 돌아가실 것 같소. 아무래도 쑥뜸을 중단해야 되지 않겠소?”
“그 선생님이 어떤 일이 있어도 치료를 중단케 하지 말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지금까지 고생하신 보람도 없이 뜸뜨는 일을 중단한다면…….”
“그래도 그렇지, 내 어찌 저 참상을 보고만 있을 수 있겠소? 아무래도 안 되겠으니 그 선생님을 다시 한 번 모셔다가 어머니의 지금 상태를 보시고 판단하시도록 합시다. 말이야 바른 말로 어머니가 눈을 뜨신다는 것은 아무래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겠소?”
노파가 치료를 시작한 지 41일째 되는 날 아침, 그들 부부는 그렇게 말을 주고받은 끝에 아침 일찍 인산을 찾아가 그간의 치료 경위와 현재 노파가 처한 몇 가지 상태들을 설명하며, 자기들로서는 쑥뜸 치료를 중단했으면 좋겠다고 말하였다. 인산은 그들의 노모가 생각보다 훨씬 더 열심히 치료에 임했다는 것을 알고, 현 상태를 직접 확인해 보고자 그들과 함께 그들 집으로 갔다.
그런데 아들 부부가 인산을 찾아가 치료를 중단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말하던 그 시간에 노파는 바깥 공기를 쐬고 싶어서 엉금엉금 기어 대청에 나와 있었다. 신선한 아침 공기를 마시니 뭔가 꽉 막혔던 가슴께가 시원하게 뚫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순간 지금까지 한 번도 체험해 보지 못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70여 평생 동안 노파의 앞에 드리워졌던 것은 오직 한 가지로 짙은 어둠의 장막뿐이었거늘, 갑자기 안마당에 가득한 햇빛이 그 장막을 젖히며 노파에게 감지되었던 것이다.
“이게 뭐인고? ……이게 무슨 일인고?”
처음에는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없었던 노파는 그저 혼잣소리로 중얼거리며 자기도 모르게 눈을 비볐을 뿐이었다. 그때 대문간에 놓인 쓰레기통을 비우러 온 청소부의 모습이 노파의 눈에 어른거렸다. 노파는 얼른 자기 손으로 눈앞을 가렸다가 다시 손을 옆으로 비켜 보았다. 비로소 자기가 지금 처음으로 세상의 빛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노파의 마음은 기절을 할 정도로 놀라움에 뛰고 있었지만, 입은 열리지 않았고 몸은 더더욱 움직이기 어려웠다. 눈을 떴다 감았다 하기를 수십 번-그 사이에 점점 더 뚜렷해지는 세상의 모습이라니! 노파는 가까스로 몸을 움직여 마루 끝에 다다랐다. 그동안 수도 없이 오르내렸던 마룻바닥이 이제는 감촉으로뿐 아니라 그 빛깔과 나뭇결까지 모양으로도 느낄 수 있었다.
“아이고 하늘님…… 고맙습니다. 내가 눈을 뜨다니……. 내가 눈을 떴어, 암 떴고말고……!”
노파는 다리를 뻗어 댓돌 위의 고무신을 발에 뀄다. 촉감으로만 알고 있던 고무신의 색깔이 이렇구나 하는 생각이 또 들었다. 있는 힘을 다해 일어서서 마당의 한가운데로 나아갔다. 자신의 머리와 어깨 위로 쏟아지는 햇빛이 얼마나 눈부신 것인지 비로소 알았다. 머리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아 저것이 하늘이고…… 파란색이라는 것이로구나!’
노파의 눈에 난생 처음으로 보이는 세상의 물상들이 차츰 뜨거운 눈물에 가려 흐려지기 시작했다. 더 이상 서 있을 힘이 없어 땅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아무도 없는 집 안에서 홀로 그 첫 감동을 받아들이고 있는 노파는 벅차오르는 가슴이 터질 것만 같이 숨이 막혀 헐떡거렸다.
그때 노파의 아들 내외가 인산과 함께 대문 안에 들어선 것이다.
“아니, 어머니, 왜 거기에 나와 계세요?”
아들은 문간에 들어서자마자 자기 어머니를 향해 황급히 달려갔다. 노파가 아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귀에 익은 목소리, 발소리였다.
“네가 영민이 애비냐? 네가 내 아들이냐? 아이고, 우리 아들 얼굴 좀 보자!”
노파의 두 눈에 초점이 잡혀 있었다. 노파는 절규를 닮은 울음보를 터뜨리며 달려온 아들의 얼굴을 붙들고 눈을 갖다 대었다.
“네가 김, 한, 규…… 내 아들이란 말이지? 아이고 내가 드디어 눈을 떴구나! 우리 아들 얼굴을 보게 되다니……!
며느리도 시어머니를 붙들고 함께 울음을 터뜨렸다. 그 광경을 지켜보는 인산만이 혼자서 빙그레 웃고 있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