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려’라는 말 속에 들어있는 것들···내일·내가·혹시, 그리고
[아시아엔=김서권 예수사랑교회 담임목사] 내일 염려까지 가불해서 쓰지 마십시오. 아직 오지도 않은 내일의 염려를 끌어다가 시달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염려라는 말 속에는 ‘내일’ ‘내가’ ‘혹시’가 들어 있습니다.
내일은 하나님의 시간이지 내 시간이 아닙니다. 오늘만이 나의 시간입니다. 나는 안개와 같이 사라지는 존재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밤이라도 내 영혼을 하나님이 거두어가시면 창고에 쌓아놓은 것도 내 것이 아닙니다.
내 것도 아닌 내일을 놓고 염려하는 것은 얼이 썩은, 어리석은 자의 일입니다. 그래서 염려하면 병에 걸리는 것입니다.
이생의 자랑과 세상 재물에 주목하면 ‘염려 바이러스’가 생각 속에 들어와 열심히 살다가 열병에 걸리고 맙니다. 열병에 거리면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같이 생기를 잃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에스겔 37장2절)
가룟 유다 속에 들어가 예수님을 팔려는 생각과 자살해서 죽을 생각을 누가 집어넣었습니까?
답은 간단합니다.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요한복음 13장2절)
우선순위를 회복하여 기본으로 돌아가십시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십시오.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것은 신학적인 것이 아니라 실천적인 것입니다.
내 기준이나 세상이 요구하는 의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떠나 사탄의 함정에 빠져 염려와 두려움의 올무에 묶여있는 나를 구출하시려고 뱀의 머리를 깨뜨려버린 메시아, 창세기 3장15절 예수 그리스도가 나에게 오신 것이 원시복음, 진짜 복음이 하나님의 의입니다.
하나님의 의,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복음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성경은 가르치십니다. (로마서 1장16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