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라프 칼럼] 중동의 몰락한 ‘4인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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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 대통령 알리 압둘라 살레가 권력이양서에 서명하는 장면을 보면서 사우디 아라비아로 도망간 튀니지의 대통령, 카이로의 호화찬란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이집트 대통령, 그리고 자신의 국민들로부터 처참하게 죽임 당한 리비아의 대통령이 차례로 연상됐다.
예멘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서명하는 모습은 사우디 아라비아의 압둘라 국왕 입장에서 볼 때 실패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민주화의 물결이 자신의 왕국에까지 밀려올까 두려워한 나머지 ‘아랍의 봄’ 혁명을 어떻게든 막아보고자 무던히도 노력했기 때문이다. 사우디 아라비아 국왕은 이웃 나라에 새로운 세력이 등장하지 않고 살레 대통령이 계속 권력을 지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지원했다. 하지만 살레 대통령의 퇴진을 설득하라는 미국과 영국의 압력에 마침내 굴복했다.
살레 대통령의 퇴진 약속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여름 예멘의 수도 사나 가 공습받을 때 입은 부상을 치료하기 위해 사우디 아라비아의 리야드로 떠나기 전에도 퇴진 약속을 한 바 있다.
그는 권력이양 서명식에서 평소 입던 예멘 전통의상과는 달리 양복을 입고 아주 만족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마도 서방의 외교관들이 살레 대통령에게 미국과 영국정부가 그를 보호할 것이라고 전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곧 신병 치료차 미국으로 가는 것이라고 걸프협력회의 관계자들은 말한다. 그가 형사 처벌을 받지 않고 재산도 지키는 조건으로 권력을 포기한 것은 확실하다. 다른 몰락한 독재자들과 비교했을 때 그가 얻을 수 있는 최고의 거래였다.
예멘의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시위자들은 33년 독재 끝에 물러나는 살레의 퇴진을 환호한다. 그러나 아랍에서 가장 가난한 이 나라는 아직 혼란의 한가운데 있다. 당장 집권여당인 국민의회당(General People’s Congress)이 어떻게 반응할지도 미지수다. 인구 2300만명의 가난하고 불안정한 국가인 예멘은 남예멘과 북예멘의 분리운동, 부족간 갈등, 그리고 규모는 크진 않지만 위협적인 알 카에다의 활동까지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를 안고 있다.
살레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며 9개월간 진행된 격렬한 시위는 마침내 가시적인 성과를 얻었다. 그리고 살레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리비아의 가다피처럼 비참한 최후를 피할 수 있는 최선의 결과였다. 살레 대통령이 국제 사회의 압박도 물론 받았겠지만 가다피의 비인간적인 최후를 보면서 느낀 점이 많았을 것이다.
재산동결 가능성과 형사처벌 면제 중 택일하라는 걸프협력회의 중재안을 받아들고 살레는 후자를 선택했다. 하지만 살레 대통령이 서명했더라도 그가 완전히 힘을 잃는 것은 아니다. 차기대선까지 대통령직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그 동안은 부통령이(적어도 이론상으로는) 모든 권력을 이양받는다.
이 정도로는 예멘의 민심을 달랠 수 없다고 보는 사람들도 많다. 부통령인 압드 알랍 만수르 알 하디는 상당히 나약한 인물로,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나 확실한 지지 기반이 없다. 그리고 살레 대통령의 수많은 친척들이 아직도 각계 요직에 앉아 살레를 대신해 권력을 조종하고 있는 실정이다.
어쨌든 중재안에 따르면 하디 부통령은3개월 이내에 국민통합정부를 구성하게 된다. 하지만 새 대통령을 뽑는다고 해서 예멘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예멘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좀더 강력한 국회와 그에 비해 덜 강력한 대통령이다.
압드 알 라만 만수르 알 하디 부통령은 존재감이 약한 정치인으로서 카리스마가 부족하다. 정치 불안 속에서 막중한 역할을 하는 군부에서도 거의 지지를 못 받는 인물이다. 그는 영국, 이집트, 러시아 등에서 군 생활을 했음에도 군부 내에 거의 영향력이 없고 부통령으로 뽑힌 것도 남예멘의 지역감정을 고려한 판단이었다는 것이 지배적이다.
그는 1945년생으로 남예멘의 알 와드 지역에서 태어났다. 그는 남예멘에서 한창 막시스트들의 격렬한 저항이 있을 당시 그의 부대를 이끌고 북예멘으로 전향했다. 내전 때의 공로를 인정받아 초대 국방부장관을 거쳐, 이어 부통령에 임명됐다. 1964년 아덴사관학교(Aden Military School)를 졸업했으며 그 후 해외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