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언 회갑’ 여제자의 35년 전 편지 속 ‘다짐’
[아시아엔=이동순 시인, 영남대 명예교수] 퇴직할 때 근속년수가 41년이었다. 어지간히 장구한 세월을 교단에서 보냈다. 숱한 제자들이 바람처럼 파도처럼 거쳐갔다.
이름을 기억하는 제자도 있고 얼굴만 기억하는 제자도 있다. 안동간호대학 3년, 충북대 국문과 10년, 영남대 국문과 25년, 나머지 3년은 교사 시절이다.
만나고 문하를 거쳐간 제자들은 모두들 제 구실과 역할을 잘 하고 있으리라. 선생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비통한 소식도 있었다. 이런저런 사연의 편지도 많이 받았었다.
대개 사라졌는데 이 편지는 남아 있다. 교직과정을 이수하고 예행연습까지 모두 시켜서 드디어 교단으로 진출시키는 활동이 있었다. 선희라는 제자는 84학번쯤 되었으리라. 착하고 안경 낀 눈으로 늘 상글거리며 웃던 아주 부지런하고 씩씩한 여학생이었다. 힘이 좋아 무거운 물건을 번쩍 들기도 하던 그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내가 <백석시전집> 원고를 준비할 때 낱말풀이 작업을 곁에서 도와준 것이 생각난다. 유난히 해독하기 어려운 평북 방언들을 낱낱이 독서카드에 적어서 수백 장의 정리목록을 분류하던 일을 도왔다. 그 선희가 졸업을 하고 드디어 선생님으로 교단에 선다는 소식이다.
몹시 흐뭇하고 기쁜 일이다. 연구실로 찾아온 제자에게 축복을 주고 교사의 직분과 책임을 일러주었다. 발령을 받은 제자가 다소 흥분된 마음으로 이런 각오와 다짐의 편지를 보내왔다. 86년 설날 아침에 쓴 듯하다.
이젠 나이도 어느 덧 회갑이 가까우리라. 그동안 세월이 꿈결처럼 흘러갔다. 가다가 걸음을 잠시 멈추고 뒤를 돌아다본다.
선생님!
봄을 열어준 입춘도 지났건만 날씨는 여전히 춥습니다.
안녕하신지요? 늦은 인사드립니다.
선생님! 부족하기만 한 제가 감히 교단의 주인이 된다는군요. 기쁜 일이면서도 한편으론 몸이 움츠려듭니다.
예행연습을 하던 수업시간에도 온통 긴장으로 가슴 조리었건만 어찌 해낼는지요. 더구나 시인 선생님 앞에서 시를 수업해야 했던 저는 너무도 막막했습니다. 그러한 과정과 실습교육이 있었기에 조금은 힘도 나지만 겁이 납니다.
선생님! 하지만 해내겠습니다. 선생님처럼 존경 받는 선생님도 되어보겠습니다. 아이들을 꼭 이름으로 불러주셨던 선생님을 기억할 것입니다. 하나 하나 꼼꼼하게 가르쳐주셨던 선생님을 기억할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불성실에 대해서는 한 치의 용서도 없으셨던 때로는 무서웠던 선생님을 더욱 깊이 기억할 것입니다.
처음 교과단원이 시라서 여전히 두렵습니다. 그만큼 열심히 준비를 해야겠지요. 교재연구 시작하고 얼마 전에 찾아뵐려고 학교에 갔었어요.
선생님!
도움 주시고 많은 것 일러주셔요.
선생님, 오늘은 음력으로 새해 첫날입니다. 소망 이루셔요. 올해에 계획하신……
저도 호랑이 해에 호랑이띠로 태어난 몫을 단단히 해낼까봐요. 선생님.
1986. 2. 9
善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