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구르와 티벳은 중국의 계륵인가?···이젠 아프간까지?


중국의 위구르족 탄압이 새록새록 밝혀지고 있다. 위구르 자치구는 160만㎦다. 한반도의 7배가 넘는데 인구는 2천만이 되지 않는다. 이 공백을 노려서 한족이 집단 이주하고 있는데 사회주의에서는 국가가 직장을 책임져야 한다. 그런데 중국 정부의 조치에 만족하지 못하는 한족의 불만도 크다.

위구르족은 20세기 초 이슬람공화국을 창설했다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창립되며 중국공산당 치하로 다시 들어갔다. 당국은 일체의 외부 출입을 제한하고 있는데 영국의 가 침투하여 공개하고 있다. 서방 언론인에 의해 북한이 서서히 밝혀지는 것과 같다.

여성이 성폭력을 당하고 있음은 일제의 종군위안부와 같은 데 21세기 위구르에서 벌어지는 참극은 20세기 나치의 인종 청소와 같다.

위구르는 이슬람족이며, 위구르어는 터키어 계통으로 한어(漢語)와 전혀 다르다. 그래서 위구르족은 중국어를 배워야 한다. 마치 일제말 조선인에 국어(일본어) 상용을 강제하던 것과 같다. 그러나 위구르는 외롭지 않다. 인근의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파키스탄은 같은 회교권이다.

냉전시대 파키스탄은 미국의 주요 거점이었다. 미국의 가볍고 사용에 편리한(경편, 輕便)한 방공무기가 파키스탄을 거쳐 아프간 반군으로 유입되어 소련 쇠망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위구르족이 이런 전략을 사용한다면 중국을 주적으로 규정한 바이든의 미국에 어떻게 대항할 것인가?

티벳은 123만㎦이며 인구는 262만이다. 과거에는 토번(土蕃)으로 알려졌으며 당나라 때에는 공주를 보내 우호를 맺을 정도의 강국이었다. 청나라도 직영이 아니고 이번원(理藩院)에서 통치했다. 청해성(靑海省), 감숙성(甘肅省)에도 상당수 티벳족이 산다.

1949년 중국공산당이 들어서며 다시 복속되었다. 배우 리차드 기어의 영화 <티베트에서의 7년>은 1950년 10월 중국공산당이 티벳에 침공하는 과정과 티벳인의 저항을 그려 서방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중국공산군이 한국에 침공하던 때다.

대만도 티벳이 중국의 일부임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한족이 티벳족을 놓치고 싶지 않은 심정을 폭로하고 있다. 인도, 버마를 통치하던 영국이 티벳에 일시 개입했던 역사가 있어 미국보다 더 관심이 많다.

인도 다람사르에서 망명정부를 이끌고 있는 달라이 라마는 영어로 자유로이 소통하여 티벳의 존재를 알리고 있다.

위구르와 티벳은 중국 소수민족 중 95%의 한족과 가장 이질적이며 역사적으로 동화하기 힘든 민족이다. 가장 약한 고리인 셈이다. 따라서 인권문제가 단순한 인권문제가 아니라는데 중국의 고민이 있다.

바이든 정부에 의해 미군이 철수한 아프가니스탄 역시 중국이 넘어야 할 산이 될 전망이다. 아시아, 아프리카 대륙에서 일대일로 정책을 추진 중인 중국의 걱정거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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