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전쟁에서 미국이 얻을 유일한 소득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19세기 초 아프가니스탄에서 영국은 큰 고초를 겪었다. 전쟁에서 이런 실패는 러시아를 침공한 나폴레옹과 제2차대전 중 독소전쟁에서의 소련을 침공한 독일군이 겪었던 것과 같았다.
영국은 러시아의 부동항 진출을 막기 위하여 아프가니스탄에서 충돌했다. 철수하는 영국군이 카불 고개에서 공격당해 전멸했다. 당시 영국은 세계 선진국이었다. 그러나 20세기 중반까지 화기는 별 차이가 없었다. 삽탄 장전식으로 8발이 사격되는 M1 소총은 2차대전 중에 최초로 사용되었다. 일본군은 그 화력에 놀라 미군이 전부 기관총으로 장비한 것으로 알았다.
그때까지 소총은 모두 단발총이었다. 기관총은 기동하는 보병에 적합하지 않았다. 대신 요새에 배치된 방어에 위력을 발휘하였다. 따라서 단발총을 사용하는 19세기 보병은 피아간에 큰 차이가 없었다. 전력의 차이는 지형을 어떻게 이용하는가에 달렸다. 익숙한 산악지형에서 습격하는 아프간에 이동하는 영국군이 고스란히 당했다.
지형의 유리함은 20세기에도 그대로 통했다. 1980년대에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련군은 엄청난 피해를 입어 브레즈네프의 실각을 가져왔다. 소련판 베트남전쟁이었다. 아프가니스탄의 산악지형을 이동하기 위해 소련군은 헬기를 사용했다. 아프간은 미국이 파키스탄을 거쳐 지급하는 스팅거 미사일을 사용하여 격추시켰다. 소련군은 고립되어 갔다. 베트남전쟁에서 미군은 헬기로 구출되었으나 아프간 전투에서 소련군은 구출되지 못했다.
21세기 중동에서 미군은 어떤 어려움에 처해 있는가? 후세인을 응징하기 위해 이라크를 침공한 ‘사막의 폭풍작전’에서 눈부신 성공을 거두었다. 주한미군사령관 에이브럼스는 걸프전, 이라크전,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모두 참전했다.
아프간 전쟁이 끝났다. 탈레반이 카불에 입성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인 등의 안전한 철수를 지원하기 위해 미군을 급파했다. 에이브럼스가 있었더라도 결과는 같았을 것이다. 베트남전에 키신저가 미국을 망친 것을 반성하듯이 미국에서 아프간전쟁의 ‘시작부터 끝까지’ 대대적 반성이 일어나야 한다.
이것만이 미국이 아프간전쟁에서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소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