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차 파킨슨병 아내 간병 여든살 노인의 ‘무아봉처’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요즘 집사람 건강 때문에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고 원불교 미국 서부교구 오렌지 카운티교당 가산 이병철 회장이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내오셨다. 배부른 투정을 한 것 같아 마음 속 깊이 참회 반성하고 깊은 감동을 느껴 본인 승낙을 받아 공유한다.
“덕산님 안녕하십니까? 매일매일 보내주시는 덕화만발을 감명 깊게 받아보는 덕화만발 가족 미국 오렌지 카운티교당 가산 이병철입니다. 몸이 그토록 불편하심에도 불고하고 그런 좋은 글을 쓰시는 덕산님의 열정에 감탄을 금치 못합니다. 오늘은 덕산님과 반대의 생활을 하는 제 얘기를 소개해 보겠습니다.
저는 산수(傘壽)를 바라보는 결혼 49년차의 남편으로서 파킨슨병 16년차 아내의 손과 발이 되어 집안 살림과 아내의 병수발을 3년째 하고 있습니다. 지금 세상이 어디 아내만 건강해서 남편의 뒷바라지를 해야 하는 시대는 아니지요. 그 반대도 있어서 우리 남편들도 가정과 아내를 위해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 생활의 한 단면을 쓴 글 한편을 보냅니다.
‘무아봉처(無我奉妻)의 하루’
자리에서 눈을 떠보니 시계는 6시17분을 가리키고 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하며 기지개를 켜는데 옆에서 자던 아내도 깨었나 보다. 나는 주섬주섬 옷을 걸치고 일어나니 아내도 소변을 보아야겠다고 일으켜 달랜다. 병원에 있을 때 배운 대로 팔을 어깨너머 등을 받치고 일으켜 앉혀 침대에서 내려오도록 붙잡아 준다. 그런데 바로 옆에 있는 ‘커모드’ 라는 간이 변기에 앉아야 되는데 발이 떨어지지를 않는다. 몇 분을 그렇게 엉거주춤 서있다 그만 오줌을 흘리고 만다. 네 차례의 척추 수술 후 자율신경이 무디어져서 오줌이 홀드가 잘 안 되는 모양이다. 또 파킨슨씨병으로 냉각이 오면 발이 떨어지지를 않는다. 할 수 없이 내가 억지로 방향을 틀어 팬티 스타일의 기저귀를 내리고 변기에 앉힌다.
그렇게 어렵사리 용변을 본 후 휠체어에 태우고 욕실로 데리고 가 샤워를 하도록 해준다. 다행히 욕실에는 앉아서 샤워를 할 수 있도록 되어 있어서 혼자서도 할 수 있다. 나는 곧바로 침실로 가서 변기를 가져다 욕실 변기에 오줌을 쏟아 버리고 물로 씻어낸 후, 다시 물을 담아 화장실 한 귀퉁이에 하루 종일 놓아둔다.
그리고는 걸레를 빨아 침실 바닥의 오줌을 깨끗이 닦아 내고 침대 위의 침구를 가지런히 정리한다. 다음엔 세면대 위의 컵에다 물을 담아 놓고, 칫솔에 치약을 묻혀 두고 부엌으로 가서 전기 주전자의 스위치를 누른다. 아침 공복에 파킨슨 약을 먹어야 하는데 냉수를 안 먹이려고 물을 데운다.
다시 욕실로 가서 휠체어 위에 커다란 수건을 깔아 샤워를 끝내고 나오는 아내가 물기를 닦아내도록 해준다.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온 몸의 물기를 닦아준 다음 침실로 데리고 가서 옷을 입힌다. 기저귀부터 속옷, 양말 등, 옷을 다 입힌 후에 다시 세면대로 데려다 주면 혼자서 양치질과 머리를 말리고 간단하게 화장을 한다.
그러면 나는 부엌으로 가서 아침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우선 내가 마실 커피부터 준비해서 커피포트에 커피를 앉히고 스위치를 누른다. 그리곤 냉장고에서 과일을 꺼내어 물로 씻어낸 후 자른다. 바나나와 사과는 빠지지 않는다. 아보카도와 키위 또 복숭아 자두 등 제철 과일에 요즘엔 감과 대추가 있다. 오늘 아침엔 베이글을 구어 먹기로 헸다.
양치질과 화장을 끝낸 아내를 다시 식탁 앞으로 데리고 와 더운 물에 약을 먹도록 한다. 파킨슨 약은 정해진 시간을 엄수해야 약효가 제대로 나온다. 아침을 준비하는 동안 아내는 간단한 운동을 한다. 런닝 머신에 올라가 기계는 작동을 안 시키고 발걸음을 떼는 연습을 하고 다음엔 실내 자전거에 앉아 페달을 밟아 다리운동을 한다.
아직 힘이 없어 길게는 못 하지만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다. 아침 식사가 다 마련되면 둘이는 식탁에 마주 앉아 아침을 먹는다. 식사가 끝나면 나는 설거지와 부엌 정리를 하고, 아내는 하루 일정을 살펴본다. 병원 일정이나 가정방문 간호사가 오는지, 물리치료사가 오는 일정 등을 검토한다. 오늘은 그런 일정이 없다.
어느 날엔 내가 샤워를 하고 있는 중에 아내가 소변이 마렵다고 한다. 몸에 비누칠을 해서 잔득 묻어 있는데도 할 수 없이 수건만 몸에 두르고 나와 아내의 휠체어를 밀고 변기로 데려다 준다. 오줌을 참지 못하기 때문에 조금만 늦으면 그만 실기를 하고 만다. 샤워를 마친 후에는 점심에 먹을 반찬을 마련해야 했다.
고심 끝에 종갓집 김치가 있어 김치찌개를 해보기로 한다. 김치를 냄비에 담아 물을 적당히 붓고 두부와 양파를 썰어 넣고 끓인다. 한참 끓인 다음 들깨 가루를 넣어 조금 더 끌인 다음 맛을 보니 그런대로 괜찮은 것 같다. 맛의 판단은 아내의 몫이다. 그런 다음 멸치 볶음을 해본다.
그런데 화장실에 있던 아내가 부른다. 변이 항문 끝에 있는 것 같은데 잘 나오지를 않는다고 빼내 주면 좋겠다고 한다. 평소에 변비로 고생 하는 아내는 네 번의 수술 후에는 더 힘들어 해서 병원과 요양원에 있을 때에도 가끔 내 손으로 해결해 주곤 했다. 우선 아내를 침대 위에 눕힌 후 일회용 비닐장갑을 끼고 손가락 끝에 바셀린을 조금 바른다. 그리고는 항문에 손가락을 집어넣어 변을 확인한다.
여러 번의 경험으로 변이 굳어 있지 않음을 감지하고 손가락으로 긁어낸다. 수차례 반복해서 항문 속에 있던 변을 다 긁어내니 꽤나 많은 양이 나왔다. 아내가 시원해 하는 모습을 보고 마치 의사나 된 듯 으쓱해 보인다. 이런 일로 오전 시간을 다 보내고 나니 점심시간이 되어 간다.
그동안 아내는 몇 차례 화장실을 더 다녀와야 했다. 거의 매 시간마다 소변이 마려워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내를 휠체어에 태워 화장실에 데려다 주곤 하는데 변기에 앉히고 휠체어에 태우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다. 스스로 발걸음이 잘 떼어지지 않으니 내가 힘으로 붙잡아 앉히고 또 태워야 해서 본인 자신도 힘들고 나도 가끔은 벅차다.
점심 식사 후에 아내를 차에 태우고 405번 고속도로를 따라 달린다. 아내가 화장실이 급하다고 한다. 급히 장애인 주차장에 주차하고 아내를 차에서 내려 휠체어에 태우고 바로 앞에 있는 할인 연쇄점 화장실로 찾아 들었다. 그런데 남녀 공용의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두 개의 화장실이 모두 잠겨 있다. 사용 중인 것이다.
한참을 기다려서야 겨우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이미 때는 늦어서 참변을 당하고 말았다. 내가 ‘무아봉공’을 못하는 대신에 24시간 아내 옆에서 아내의 손과 발이 되어 시중을 들어 주는 일을 감히 ‘무아봉처’라고 써 본 것이다. (하략)
내가 만약 그런 입장이라면 과연 이렇게 ‘무아봉처’를 할 수 있을까? 이 글을 보내온 가산님은 가히 성인 경지에 오른 것 같다. 마음 속 깊이 부끄러움을 느낀다. 두 분의 깊은 사랑에 절로 눈물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