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정약용한테 배울 7가지 경륜

강원도 횡성 민족사관고 입구에 세워져 있는 다산 정약용(왼쪽)과 충무공 이순신 동상. 두분 동상은 개교 당시부터 이 자리를 굳게 지키고 있다.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만큼 힘들고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낸 선비도 없을 것이다.

다산의 자는 미용(美鏞), 호는 다산(茶山)·사암(俟菴)·여유당(與猶堂)·채산(菜山) 그리고 근기(近畿)다. 정조 연간에 문신으로 봉직했으나, 청년기에 접했던 천주교로 인해 장기간 유배생활을 하였다.

그는 이 유배기간 동안 자신의 학문을 더욱 연마해 육경사서(六經四書)에 대한 연구를 비롯해 <경세유표>·<목민심서>·<흠흠신서> 등 500여권에 이르는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그는 또 성호 이익의 학통을 이어받아 발전시켰으며, 각종 사회개혁 사상을 제시하여 ‘묵은 나라를 새롭게 하고자’ 노력하였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역사현상 전반에 걸쳐 전개된 그의 사상은 조선왕조의 기존 질서를 전적으로 부정하는 ‘혁명론’이었다기보다 파탄에 이른 당시의 사회를 개량하여 조선왕조의 질서를 새롭게 강화시키려는 ‘개혁론’에 가까웠다.

그는 조선에 왕조적 질서를 확립하고 유교적 사회에서 중시해 오던 왕도정치 이념을 구현함으로써 ‘국태민안’의 이상적 상황을 이끌어내려 했다.

민족사관고에 세워져 있는 다산 정약용 동상

다산한테서 배울 경륜은 무엇일까?

첫째, 인생이 힘들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산은 경상도 포항 장기와 전라도 강진에서 18년 동안 삶과 죽음이 오가는 유배지에서 살았다. 그의 유배생활보다 우리가 더 고단하지는 않을 것이다. 고단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묵묵히 견디며 극복해 갈 뿐이다.

둘째, 공부가 어렵다고 말하지 않는다.
한 생애 500권의 책을 읽기도 어려운데 다산은 500여권의 책을 썼다. 가히 초인적인 능력이다. 필자도 원불교 입교 5년 때부터 <진흙 속에 피는 꽃>으로 시작하여 겨우 13권 책을 내는데 30여년이 걸렸다. 그것이 다 수행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다산에게서 ‘지성여불’(至誠如佛)의 정신을 배워 가며 수행하면 얼마나 좋을까?

셋째, 사람을 사귀는데 나이를 묻지 않는다.
다산은 20살이나 어린 혜장선사, 초의선사와 학문의 친구가 되었다.

넷째, 성공에 집착하지 않는다.
다산은 벼슬길에 있던 때보다도 벼슬에서 멀어졌을 때 큰 이룸이 있었다. 인생의 깨달음은 성공보다 실패에서 더 크게 배울 수 있다. 필자는 젊어서 많은 실패를 겪었다.

다섯째, 사람을 의심하지도 말고 너무 믿지도 않는다.
다산은 같은 조정에서 국사를 논하던 사람들에 의해 유배되었다. 그것도 어린 시절의 친구에 의해서 말이다. 세상의 인심이 그렇다.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는다”는 말을 새삼 떠올린다.

여섯째, 전문성이 없다고 한탄하지 않는다.
다산은 배우지 않았어도 ‘수원화성’을 설계했고, 당대 최고 기술인 ‘거중기’(擧重機)를 발명했다. 누구나 공부하면 전문성을 확보 할 수 있다.

일곱째, 인생에 여유가 없다고 걱정하지 않는다.
다산은 사약이 언제 전해올지 모르는 유배지에서도 차를 즐겼다. 그래서 호도 ‘다산(茶山)’이다. 천록(天祿)이라는 것이 있다. 하늘에서 복을 내린다는 뜻이다. 마음에 사심(邪心)이 없으면 진리께서 내리는 상이다. 우리의 마음을 요란하지 않게, 어리석지 않게, 그르지 않게 쓰지 않도록 공부하는 것이 수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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