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영화 ‘오싱’을 생각하다
[아시아엔=안상윤 전 SBS 국장, 베이징특파원 역임] 김호선 감독의 1973년 작 <영자의 전성시대>를 보며 답답해했던 기억이 있다. 가난한 시골 소녀 영자가 서울에 와서 겪는 애환을 그린 영화다. 주인공 영자가 가사도우미하던 집에서 성폭행당하고 승객을 콩나물시루처럼 태운 채 운행하는 버스 안내양으로 일하던 중 떨어지는 사고로 팔을 잃은 후 사창가에서 윤락녀 생활을 하다 악질 포주 탓에 목숨을 잃는다. 영자가 상경해 살려고 몸부림을 치다 나락으로 떨어져 생을 마감하는 삶의 전 과정에서 그녀를 도운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가정부로 일하던 집 주인, 버스회사 간부, 윤락가 악질 포주 등 갈등 제공자만이 있었을 뿐이었다.
필자는 훗날 일본영화 <오싱>을 본 후 한국과 일본 두 나라의 영화 속에 반영된 국민 의식수준을 비교해 본 적이 있다. 비슷한 스토리의 <오싱>은 주인공 오싱이 주인집 노(老) 마님의 배려와 보살핌 속에서 삶을 포기하지 않고 견뎌내는 과정을 보여준다. 노마님은 오싱이 억울한 경우를 당하면 중간자의 위치에 서서 편견 없이 갈등을 중재해 주고, 오싱에게 지혜로운 처신법을 일러주며 용기를 잃지 말라고 격려한다. 갈등 유발자들도 사실을 알게 되자 오싱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
사회적 신분이라는 편견에 지배당하지 않는 열린 마음은 비단 픽션의 세계뿐 아니라 현실에서도 확인된다. 도쿄 신주쿠 가부키조의 후린회관(風林會館) 6층에 있는 카바레는 오랜 세월 장년들의 사교장 역할을 해오다 2020년 4월 문을 닫았는데 NHK의 다큐 ‘72시간’이 이 유서 깊은 카바레의 마지막 3일을 영상에 담으면서 종업원인 정문 ‘보이’를 비중 있게 다루었다. 국졸 출신인 정문 보이는 15살부터 시작해 손님이 오면 6층 카바레까지 엘리베이터로 안내하고 팁을 받는 생활을 57년간 해왔다.
그는 “다시 태어나도 이 일을 하고 싶다”고 자부했다. 마츠시타 정경의숙은 사립 엘리트 양성기관인데 이곳 졸업생인 유민호씨가 전하는 바로는, 정문 수위로 드나드는 사람들에게 90도로 허리 숙여 절 하던 요시다가 2001년 노령으로 별세하자 정·재계 거물을 비롯한 이 학교 출신들이 대거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영화 <오싱>에서 노마님이 보여주는 관용과 자애는 우리 영화에서는 보기 어려운 캐릭터였다. 우리 영화는 그 자리를 ‘갑질’이 채운다. 하대와 모함, 폭행과 욕설, 성희롱과 성추행 등이 그런 ‘갑질’의 전형이다. 현실에서도 비일비재하게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자기가 ‘갑’의 위치에 있다고 느끼면 바로 ‘을’에게 함부로 하려 든다. 한 개인이 용기를 잃지 않고 역경을 이겨낼 수 있도록 돕는 사회 분위기가 공동체를 건강하고 성숙하게 만드는 법인데, 우리 사회에 부족한 덕목이다.
한국은 개인을 하나의 개체로 존중하는 인식이 약하다. 한국인은 타인의 생각 속에 갇히지 않고 스스로의 세계를 갖추려는 훈련이 부족한 캐릭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