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봉의 포토보이스 #37] 당신은 듣습니까 아니면 듣는 척합니까?
[아시아엔=김희봉 교육공학박사, <아시아엔> 칼럼니스트, 현대자동차인재개발원] 거리를 지나다니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해보면 이어폰을 착용한 사람을 꽤 많이 볼 수 있다. 음악을 듣는 경우도 있고 통화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이어폰을 착용한 사람들 모두가 무엇인가를 듣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이어폰을 착용한 것은 역설적으로 ‘나는 듣고 싶지 않다’는 무언의 메시지를 보내는 행위이기도 하다. 실제로 아무 것도 흘러나오지 않는 이어폰을 착용하고 있는 이들도 많다.
이는 비단 거리에서만 볼 수 있는 광경은 아니다. 집이나 학교 그리고 직장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즉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귀를 닫을 수 있다.
귀를 닫는다는 것은 ‘듣지 않겠다’ 혹은 ‘소통하지 않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처럼 드러나는 행위나 표현은 그리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서로가 알기 때문이다.
문제는 보이지 않는 이어폰을 착용했을 때다. 이를 ‘심리적 귀마개’(psychological earplug)로 명명해 볼 수 있다. 겉으로는 듣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듣지 않는 것이다. 이른바 듣는 척을 하는 경우다. 이러한 심리적 귀마개를 착용한 상태에서의 소통은 그야말로 형식적이고 소모적이다.
상대방과의 소통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스스로 이와 같은 심리적 귀마개를 한시라도 빨리 빼야 한다.
심리적 귀마개를 빼는 방법 중 하나는 백 트래킹(back tracking)이다. 이는 상대방이 한 말을 그대로 다시 말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상대방이 “저는 A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면 “A라는 말씀이시죠?”와 같은 표현을 하는 것이다.
백 트래킹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말하는 것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시켜주고 대화 시 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해주는 효과가 있다.
다음으로는 상대방의 말을 다르게 표현하는 것이다. 이른바 패러프레이징(paraphrasing)이다. 이는 상대방의 말을 잘 듣고 다른 말로 바꿔서 이야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상대방이 말한 내용을 유사한 의미로 재해석해서 말해주거나 관련된 예를 들어주는 것을 비롯해서 만일 상대방이 장황하게 말했다면 핵심을 추려 간략하게 다시 이야기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의미는 같지만 다르게 표현하는 것도 패러프레이징을 하는 방법이다.
이와 같은 패러프레이징은 상대방의 이야기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 이야기에 공감한다는 표현이기도 하다.
앞서 설명한 백 트래킹과 패러프레이징을 하고자 한다면 무엇보다 상대방이 하는 말을 경청해야 한다. 이는 다시 말해 심리적 귀마개를 빼야만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동안 귀에 딱지가 앉도록 말하거나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소통되지 못했던 내용들이 있다면 적어도 소통의 주체인 둘 중 하나는 보이지 않는 심리적 귀마개를 착용한 상태였을지도 모른다.
소통은 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듣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그리고 들어야 하는 것은 상대방의 입을 통해 나오는 말을 넘어 마음까지도 포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