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 통일국가 롤 모델은 ‘통일신라’ 혹은 ‘고구려’?
사육신은 조선 국초國初의 비극이었다. 그러나 사육신의 비극 이전에 조선의 참극은 태조로부터 시작된다. 이성계는 전처 한씨 소생의 여섯 아들-방우, 방과, 방의, 방간, 방원, 방연을 젖혀놓고 후처 강씨 소생가운데서도 동생인 막내 방석을 후계로 삼으려 했다. 노망老妄이 들어도 한참 들었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신씨 소생의 아들 그 중에도 다섯째 방원은 사실상 이성계와 같은 개국공신이었다. 정몽주를 때려죽인 것이 방원이다.
문종이 된 세자는 원래 병약했다. 둘째 수양대군이 훨씬 튼튼했다. 후계가 적장자嫡長子가 되는 것은 불가피했다하더라도 세종대왕은 대책을 세웠어야 했다. (적장자가 왕이 된 것은 조선 스물아홉 왕 중에 일곱에 불과하다). 수양대군이 대군에 머물지 않기 위해 일으킨 것이 계유정난癸酉靖難이며 이에 항의하여 분사憤死한 분들이 사육신이다. 아버지의 벌을 대신 받아서인지 세조를 이은 예종은 재위 불과 13개월 만에 죽었다. 조선의 비극은 무어니 해도 이성계로부터 시작되었다. 명明나라의 영락제永樂帝도 조카를 죽이고 황제에 올랐지만, 사실상 창업자였다.
이에 반해 고려 태조 왕건은 포용의 군주였다. 왕건은 본래 궁예의 부하였으나 궁예가 포악暴惡하여 민심을 잃자 주위의 부축에 떠밀려 왕위에 올랐다. 후백제의 견훤은 신라의 경애왕을 포석정에서 죽이자 경순왕은 자진해서 왕건에 나라를 바쳤다. 마의태자麻衣太子가 홀로 반대하여 떠났다. 전방의 도라OP는 마의태자가 신라를 아쉬워하여 뒤를 보았다하여 생긴 지명이다
왕건은 왕후가 스물아홉이었다. 각지의 유력 토호와 두루두루 연을 맺은 것이다. 왕건의 청년 시절 우물물을 청하자 버들잎을 얹어 급하게 먹지 않도록 했다는 장화왕후의 일화가 생각난다. 왕건은 고구려의 유민이 세운 발해가 망하자 유민을 받아들였다. 고려와 화친하고자 하는 거란을 거부하여 사신을 죽이고, 선물로 보낸 낙타를 굶어 죽였다. 고려는 후백제의 백성을 받아들였다.
신라와 고구려, 백제의 백성이 합했다. 명실상부名實相符한 삼국 통일이 이루어진 것이다. 따라서 우리 민족 최초 통일국가는 신라가 아니라 고려다. 고려에서 Korea가 나온 것이 당연하다. 앞으로 남한과 북한이 합하여 통일국가를 이루기에 본으로 삼아야 할 것은 고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