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궁금하다” 1965년 노벨평화상 ‘유니세프’의 코로나시대 역할

유니세프한국위원회 창립 25주년 기념을 알리는 펼침막

[아시아엔=박명윤 <아시아엔> ‘보건영양’ 논설위원, 보건학 박사] 필자는 1965년 1월 국제연합 공무원으로 임용되어 국제연합아동기금(UNICEF)에서 25년간 근무했다. 주한 UN기관의 사무실은 한국정부에서 제공한다는 협정에 의하여 주한 UNICEF 대표 사무실은 삼청동 국무총리 공관 인근에 위치한 당시 국립보건원(NIH) 훈련부 2층 건물의 일부를 사용하였다. 직원은 영국인 앨런 E. 맥베인을 포함해 모두 7명이었다.

유니세프의 구호활동은 6.25 전쟁 후 한국 아동들의 영양보급에 크게 기여했다

국제연합아동기금(United Nations Children’s Fund)은 1946년 12월 11일, 유엔총회 결의에 따라 제2차 세계대전 피해 아동과 청소년 구호를 위해 설립된 UN기구다. 처음 명칭은 유엔국제아동구호기금(United Nations International Children’s Emergency Fund)였으나, 1953년 전쟁으로 인한 긴급구호가 끝나고 UN 상설기관이 되어 현재의 명칭으로 바뀌었다. UNICEF는 1965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한국정부는 1950년 6.25전쟁 때부터 1993년까지 UNICEF로부터 2300백만 달러를 지원받아 보건, 영양, 교육, 복지 등 다양한 분야에 사용했다. 초창기에는 주로 보건사업에 집중되어 BCG 백신 지원, 모자보건(MCH) 사업, 결핵(TB) 및 나병(leprosy, Hansen’s disease) 퇴치사업, 보건소 의료장비지원, 의료인 교육(국립보건원 훈련부에서 의사, 간호사 등 교육) 등을 실시했다.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로고

1960년대 당시 한국에서는 자동차, 냉장고 등을 생산하지 못한 관계로 유니세프에서 보건소 예방접종사업을 지원하기 위하여 자동차(독일 VW 소형 세단, 영국 Land Rover 지프)와 냉장고(도시에는 전기냉장고, 전기가 없는 시골 보건소에는 석유냉장고)를 수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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