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종의 기원 바이러스’···’파괴자’ 혹은 ‘공생협력자’? 

[아시아엔=최영진 대기과학 박사, 기상청 전 기상사업단장, 전 외국어대 교수] 최근 반년 이상 코로나 바이러스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관련 뉴스의 홍수 속에 살고 있지만, 평범한 우리 각자는 정작 바이러스에 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손을 씻고 마스크를 쓰면 바이러스를 막을 수 있을까? 

종의 기원 바이러스

요즘 유행하는 말을 사용하자면, <종의 기원 바이러스>를 읽기 전에는 바이러스에 대해 하나도 몰랐으나 다 읽고 난 후에는 바이러스가 ‘종의 기원’이라고 보는 과학자들의 생각에 수긍이 간다.  

저자 나카야시 히토키는 고베대학교 교수로 세포기능구조학 연구를 하고 있다. 그는 세부 전문분야는 바이러스와 전이 인자다. 이 책은 일본 고단샤 과학출판상 받았다. 역자인 김소연은 일본어 전문 번역가이며, 서울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에서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저자는 바이러스 전문 연구자다. 그는 필자가 잘 몰랐던 신비의 세계로 안내한다. 이 책은 호모 사피엔스 중심 시각으로 살아온 내게 여러 지식의 보따리를 안기고, 생명의 기원과 진화에 대한 지적 호기심을 다시 자극한다.

“바이러스는 어떤 생명체인가?”, “우리와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가?” 등등 수많은 과학자들의 질문과 해결과정을 따라 가보는 여정에 또 다른 질문이 떠오른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진화는 어떻게 진행되었을까? 

판데믹을 일으킨 괴물의 정체

100년 전(1918~1919) 인류 최악의 판데믹(스페인 독감)으로 당시 세계 인구 18억명 가운데 약 30%인 6억명이 감염되었고, 2000만~5000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제1차 세계대전의 희생자보다 많았다. 인류에게 미증유의 위협을 던진 이 괴물의 정체는 무엇일까?

영구동토 브레비그 미션에 1918년 11월 우편물에 딸려온 괴물은 불과 5일만에 알래스카 이누이트족 주민 150명 중에 72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 하얀 십자가 아래 영구동토에는 당시 희생자들이 아직도 묻혀있다.  

한 과학자의 50여년에 걸친 질문에 답을 찾고자 하는 끈질김이 브레비그 미션에서 실마리를 찾았다. 그의 이름은 스웨덴의 요한 훌틴(Johan Hultin). 그는 1951년 브레비그 미션의 사체를 발굴하여, 냉동상태인 사체의 폐에서 괴물을 분리하여 백신을 만들고자 했으나, 감염성을 지닌 살아있는 괴물을 찾지 못했다.

이로부터 46년이 지난 1997년 다시 그곳에 가서 건강한 여성 사체(루시라고 이름 붙임)를 발굴했다. 미 육군 병리학연구소의 토벤버거 연구팀은 루시의 폐조직에서 바이러스 유전자 정보를 확보했다. 스페인 독감을 일으킨 바이러스는 유전자가 H1N1이라는 A형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란 사실이 밝혀졌다. 

이 괴물의 정체를 밝히기 위한 수많은 연구들이 있었기 때문에 누가 최초인가 하는 것에는 의견이 분분하다 한다. 그렇지만, 네덜란드의 베이에링크(Beijerinck)는 현대적 관점으로 보아도 특징을 잘 해석하여 최초라고 평가받는다.

0.2 마이크로미터보다 작은 여과성 병원체인 괴물을 전염성 액체라고 기술하고, 미생물이 아니라 낮은 온도에서도 액체에 잘 녹는 “살아있는 분자” 라고 주장했다. 이 병원체는 보통 세균이 잘 움직일 수 없는 환경에서도 광범위하게 이동한다고 설명하고 이를 “바이러스” 라고 했다. 베이에링크는 최초로 이를 살아있는 생물로 표현했다. 그는 이 병원체가 세포분열이 활발한 살아있는 조직에서만 증식한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그러나 그의 연구가 학계에서 인정받는데 40년이 걸렸다. 바이러스는 살아있는 숙주의 세포 안에서만 증식한다.

바이러스는 기본 구조를 갖추지 않거나 다양한 부가적 구조가 있기도 한데, 공통적인 특징은 피막이다. 피막은 핵산과 캡시드로 구성된 입자의 바깥쪽을 감싸는 지질막 구조다. 피막은 인지질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 구조를 파괴하는 비누에 약하다. 손을 잘 씻으면 바이러스 감염을 막을 수 있는 이유이다.  

바이러스의 생존 전략

에이즈, 사스, 신종플루, 조류독감, 구제역, 에볼라 출혈열 등 공포의 질병 원인은 모두 바이러스다. 바이러스에는 세포막으로 둘러싸인 세포 구조도 없고, 단백질을 합성하는 리보솜도 없다. 성장, 증식, 진화가 생명체를 정의하는 고유한 속성인데, 바이러스는 살아있는 숙주의 세포 안에서만 성장과 증식이 가능하다.

단백질과 핵산이라는 분자 형태로 있다가 환경이 맞으면 증식하고 진화하는 존재, 생명체가 된다.

바이러스는 게놈을 갖고 있다. 최대급 게놈을 갖는 것은 중증 호흡기 증후군(사스, Severe Acute Respiratory Syndrome: SARS)의 원인이 되는 코로나 바이러스이며, 게놈의 크기가 3만 염기정도다. 현재 확립된 학설이 있는 건 아니지만, 3만개가 RNA 바이러스의 유전정보의 안전성과 관련이 있는 한계로 보고 있다.

RNA와 DNA는 본질적으로 같은 정보를 갖고 있다. RNA 분자 구조가 DNA 분자 구조보다 반응성이 높아 저비용, 효율적 구조일 수 있다. 그런데, 반응성이 높다는 것은 반응을 통해 다른 것으로 변할 가능성도 높기 때문에 안정성이 낮아진다.

RNA 복제 효소는 복제할 때 오류 확률이 높아 돌연변이가 생기기 쉽다. 그러므로 게놈의 크기가 작다는 것은 안정성과 관련이 있다. 중요한 것은 안정적으로 자기 복제를 통해 자손을 남기는 것이다. 바이러스의 생존 전략이 숙주를 파괴하는 것일까?  

바이러스는 자신의 게놈을 숙주의 DNA에 끼워 넣어 숙주의 세포 시스템을 이용해서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만든다. 숙주 세포에 침입해서 먼저 하는 일은 숙주의 면역 반응을 억제하는 일이다. 

바이러스는 성장, 증식하면서 숙주에서 빠져나와 다음 숙주로 이동하기도 하면서, 빠져나오기 쉽게 숙주의 호르몬을 억제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 다양한 형태의 메커니즘이 있는데, 어떤 경우는 바이러스 게놈의 일부가 아예 숙주의 세포 안에 영주하면서 숙주의 일부가 되어 진화하기도 한다.  

호모 사피엔스 게놈에 있는 바이러스의 흔적

인간 게놈 지도가 완성되어 알게 된 놀라운 성과 중의 하나는 게놈 내에 유전자가 차지하는 영역은 1.5%로 아주 적다는 사실이다. 이에 비해 바이러스에서 유래한 전이인자 등이 차지하는 비율은 45%나 되었다. 인간 게놈의 주인은 도대체 누구일까? 

최근 연구 결과들은 유전자의 발현을 억제하는 스위치, 양을 조절하는 볼륨 스위치의 역할, RNA 전사 개시에 필요한 유전자 배열 등을 조사해보니 포유류 RNA의 18%가 전이인자에서 유래한 배열을 이용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엄마의 자궁에서 자라고 있는 태아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면역에 관한 우리의 얕은 상식으로는 적혈구의 공격으로 태아는 결코 생존할 수 없다. 하지만 태아는 모체로부터 양분과 산소를 공급받으면서 무럭무럭 자란다. 태반을 감싸는 영양막이 양분과 산소만 통과시키고, 모체의 면역시스템을 차단하기 때문이다.

영양막의 존재는 포유류가 안전한 방법으로 자손을 번식하는데 결정적인 구조이다. 이 영양막을 형성하는 신사이틴(Syncytin)이란 단백질은 바이러스 유전자의 산물이다. 바이러스는 파괴자인가? 공생 협력자인가? 

인간의 신경계나 뇌의 발달에 작용하는 유전자의 발현도 전이 인자에서 유래한 것이며, 인류의 조상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은 우연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지만, 현재의 고등 생물과 바이러스는 다양한 방식으로 유전자를 주고받으며 공생, 공진화 하며 현재에 이르렀다.

1999년 <사이언스>지에 실린 둘리틀(Doolittle)의 생명의 나무는 다윈의 생명의 나무 개념에서 훨씬 더 발전된 개념이다. 다윈의 종의 기원에서는 유전자가 단일한 조상에서 분화되었다는 모델을 사용하는데, 둘리틀은 분화된 나무 가지들 간에 유전자의 수평이동 한다는 모델을 사용한다. 최근의 연구 결과들은 이 개념을 지지한다.   

나카야시키 히토시의 <종의 기원 바이러스>는 200쪽이 채 안 되는 분량이지만, 생물학의 최전선을 맛볼 수 있다. 특히 생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는 훌륭한 책이라고 생각된다.

모든 흥미로운 얘기들을 뒤로하고, 실용적 결론을 말하자면, 첫째, 바이러스는 평균 크기가 0.2 마이크로미터보다 작아서 규격 마스크를 쓰는 것이 효과가 있다. 둘째, 숙주 세포에 침투하기 쉬운 피막의 독특한 구조는 인지질로 되어있어 비누로 씻으면 파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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