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북미한파, 지구온난화의 경고···올여름 ‘혹서’ 예고편?
[아시아엔=최영진 <아시아엔> <매거진N> 편집위원, 도시·농림기상기술개발사업단(기상청 출연사업) 단장 역임] 기온이 섭씨 15도일 때, ‘니트 원피스에 레깅스, 그리고 후드 짚업’ 정도면 20대의 활동적 여성이 외부활동을 하기에 지장 없는 차림이라는 어느 블로거 글을 보았다.
이 정도면 독자들도 쉽게 섭씨 15도를 상상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하루 밤 사이에 영하 15도로 내려가면 우리 일상은 어떻게 될까? 영하 15도의 날씨를 예보할 때, 보통 손발이 꽁꽁 어는 맹추위, ‘북극한파’라는 표현을 쓴다. 여기에 강풍과 폭설이 동반된다면 우리는 예상하지 못한 수많은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 이런 일은 재난영화 속 사건으로만 존재할까? 이런 일이 2021년 2월 중순 북미대륙에서 일어나 텍사스에서 가장 큰 피해가 발생했다. 이번 겨울날씨 가운데 최대사건인 북미의 돌발 한파의 원인과 진행은 꽤 흥미로운 이야기거리다.
보통 텍사스의 2월은 온화하며, 기온이 14도 이하이거나 24도 이상이 되는 경우는 드물다. 해안지역을 제외한 대부분 텍사스주의 겨울은 건조하고, 대체로 맑기 때문에 햇빛도 충분하다. 일상언어로 표현하면, ‘신선하고 따뜻하며 쾌적하다’고 할 수 있다. 2021년 2월, 30년만의 기록적인 한파와 눈보라가 몰아치면서 쾌적한 텍사스가 얼음판으로 바뀌었다. 북극의 매우 찬 공기는 보통 겨울에는 미국 북부지역까지 내려오는데, 이번에는 텍사스, 오클라호마, 뉴멕시코와 아칸소 등 중남부까지 밀려 내려왔다. 찬공기가 이동하면서 남동부의 온화한 공기와 만나 성격이 다른 두개의 거대한 공기덩어리가 충돌하여 겨울폭풍이 발생했다.
한파를 동반한 폭설은 도로를 빙판으로 만들고, 고속도로에서는 133중 추돌사고가 발생했다. 겨울한파가 자주 발생하는 지역과 달리 이곳에는 제설장비가 부족하고, 빙판길용 타이어를 장착한 차량도 드물다. 정전과 추돌사고가 잇따라 일어났고, 반도체공장이 가동을 멈췄다. 한파와 정전으로 정수장시설도 멈췄다. 이 때문에 화재에도 적절한 대처가 불가능했다. 한파는 연안해역 수온에도 영향을 줘서 찬 수온에 견디지 못한 거북이들이 기절한 상태로 해안으로 밀려왔다. 주민들의 헌신적인 긴급구조가 없었다면 거북이의 떼죽음을 면하기 어려웠다.
결국 미국정부는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영하 15도를 종종 경험하는 지역의 주민들이 볼 때, 영하 15도가 그 정도의 공포스러운 상황일까 하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사회기반시설이 잘 갖춰진 선진국에서 어떻게 이런 사태가 일어날까? 예상도, 준비도 충분히 못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루 밤새 30도가 내려갈 수 있을까?”라는 의문에 과학자들은 제트기류 변화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태양에너지를 열원으로 하는 대기는 공전, 자전, 자전축의 기울기, 그리고 해양과 대륙 분포의 영향으로 항상 불균질하게 가열된다. 또 평형상태를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이며, 3차원 흐름의 기후패턴을 형성하고 있다. 보통의 북반구 겨울에는 북극 소용돌이가 강하게 형성되어 제트기류가 북극의 찬공기를 일정한 범주 안에 가두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북극 소용돌이가 약해지면, 남북으로 진폭이 큰 파동이 형성되고, 부분적으로 균열도 생긴다. 이때 북극의 찬공기는 둑이 터진 곳으로 물밀듯 밀려 내려온다. 이런 파동이 얼마의 속도로 지나가는가에 따라 북극한파의 영향력이 결정된다. 느리게 이동한다면 지상에서 한파 피해는 점점 커진다.
2021년 2월 텍사스한파는 성층권의 ‘돌연 온난화’(Sudden Stratospheric Warming, 이하 SSW)가 원인으로 분석됐다. SSW는 수일 만에 성층권 기온이 40도 정도 상승하는 현상을 말한다. 최근의 SSW는 2021년 1월 5일 발생했다. 몇 주 동안 북극 성층권의 극소용돌이가 약해지고, 풍속이 약해지면서 서풍이 동풍으로 바뀌었다. 풍향이 반전될 때 ‘극소용돌이’가 깨진다. 미국 국립해양대기관리국(NOAA)의 과학자들은 SSW가 제트기류를 약하게 만들고, 북극 소용돌이 안에 갇혀 있던 찬공기가 중위도까지 내려왔다고 이번 한파 진행과정을 설명한다.
이 사건으로 북미, 유럽과 아시아 일부 지역이 영향을 받았다. 무엇이 SSW를 이끌었는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지만, SSW로 이어지는 몇 주 동안 북대서양과 유라시아에 상당히 지속적인 저기압 시스템이 있었다. 이 패턴이 성층권으로 다가갈수록 더 확대되어 큰 파를 형성했다. 북대서양 열대의 폭탄 저기압이 이러한 패턴을 강화했을지도 모른다. 이 현상에 대한 과학적 관심 중 하나는 지구온난화가 SSW에 영향을 주거나 투영되었을까 하는 질문이다. 최근 관측된 SSW에 뚜렷한 경향이 보이지 않았지만, 10년 단위의 변화, 즉 1990년대의 SSW와 2000년대의 SSW에는 중요한 변화가 있었다. 1990년대는 10년에 6번 정도 발생했다면, 2000년대엔 거의 매년 하나 정도 나타났다.
그러나 기후모델들은 온난화된 기후에서 이런 현상이 나타날 것인가에 대해서 일관된 예상을 보여주지 않았다. 어떤 모델들은 극소용돌이가 강화될 것으로, 어떤 모델들은 약화될 것이란 결과를 내놓았다. 그 차이는 지구온난화로 인한 대류권의 기온상승이 어떻게 분포될 것인가 하는 예상과 관련이 있다. 열대 대류권 상부가 더 따뜻해진다면 남북의 기온차가 커지고, 북극 대류권이 더 따뜻해진다면 남북의 기온차가 약화될 것이다. 또한 성층권에 영향을 주는 큰 파장의 흐름들의 강도나 주기, 그리고 그에 따라 SSW의 강도나 빈도도 다르게 예상될 것이다.
기후모델의 예상은 이런 불확실성을 갖고 있다. 다행인 것은 SSW가 발생하고 몇 주 지나서 지상의 날씨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현재의 예보기술은 이를 충분히 잘 예보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텍사스 한파와 같이 수십년만에 일어나는 이런 현상을 ‘기상이변’이라고 일단 부른다. 그런데, 북미에서 기상이변은 2020년 9월에도 있었다. ‘덴버 기상이변’을 검색하면 “40도 폭염 후 폭설 예보, 40년만의 9월 폭설” 또는 “58년만의 9월 한파”란 제목의 기사를 쉽게 볼 수 있다. 미국 국립기상청은 하루 만에 기온이 36도 급강하해 폭설을 동반한 겨울폭풍이 불어 닥칠 것을 예보했다. 불행하게도 이 예보는 정확했으며, 북쪽 지역에서 세력을 확장한 한랭전선이 비와 눈, 강한 바람을 몰고 왔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 사건은 우리나라를 지나간 제9호 태풍 마이삭과 제10호 태풍 하이선이 관련되어 있다. 이 두개의 연이은 태풍의 압력으로 캐나다 북부에 찬공기를 가두고 있던 제트기류가 영향을 받았으며, 그 결과 찬공기가 덴버 지역에 강하게 흘러왔다.
마이삭과 하이선은 각각 2020년 8월28일과 9월1일 발생했으며, 최대 발달 시점에 마이삭은 중심기압 935hpa, 최대풍속 49m/s, 하이선은 910hpa, 54m/s를 기록하였다. 이렇게 강한 태풍이 자주 발생하는 것은 해수온도 상승이 원인이다. 지구온난화 영향으로 열대 해수온도가 올라가면 남북간 에너지 불균형을 빠르게 해소하기 위해 강력한 태풍이 자주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 연구결과로 잘 알려져 있다.
‘기상이변’이란 단어는 발생확률이 매우 낮은 현상이 일어났을 때 사용한다. 그런데 기상이변이 자주 일어난다면, 그것은 무작위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경향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태양에너지의 양이 거의 일정하고, 기후를 형성하는 물리적 조건들이 거의 변하지 않는 상수(물론 이것들이 완전히 상수는 아니다)라면, 무엇이 이 두개의 기상이변을 만들어 냈을까? 모든 경우를 다 살펴보는 것은 논점이 매우 광범위하므로 여기서는 2021년 텍사스 2월 한파와 2020년 덴버의 9월 폭설의 경우를 생각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이 두개의 사건 모두 제트기류가 관련 있다. 2021년 텍사스 한파의 경우, SSW가 제트기류 약화의 원인이 되었다. 열대 북대서양의 폭발적인 저기압이 SSW 발생 수주 전부터 지속적으로 발달하였으며 이것이 SSW로 이어졌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2020년 덴버의 가을한파는 열대 서태평양에서 연이어 발생한 강력한 태풍이 제트기류를 변화시켰다고 분석되었다.
두개 사건이 지구온난화와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기상이변으로 분류될 정도의 강한 한파가 지구온난화 탓이라고 하면 잘 이해가 안 될 수 있다. 혹자는 내가 있는 곳에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을 보니 온난화는 현실이 아니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날씨는 기후가 아니다. 개개의 사건과 장기간의 평균은 다르다. 기후모델들은 왜 비슷하거나 같은 결과를 내놓지 않는 것일까? 이것을 이해하려면, 첫째, 지구의 기후시스템이 복잡계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학자들은 지구시스템의 기본적 구성을 대기권, 수권, 암석권, 빙권과 생물권으로 나누고 있다. 이들 위를 지나는 기단은 각 권역의 영향을 받는다. 이들 각각은 거대한 세력이며 서로 상호작용을 하고 있다.
문제는 어떤 현상이 어떤 다른 현상을 촉발할지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공기 움직임을 지배하는 기본적 원리는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에너지 불균형과 평형을 찾아가려는 자연현상이다. 생물권에서 발생하는 거대한 강제력인 온실가스는 에너지 평형의 계산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둘째, 전자통신기술 발전에도 불구하고 기후모델이 요구하는 수준의 관측을 아직 구현하지 못하고 있다. 셋째, 현재의 컴퓨터는 기후모델이 구현하고 싶은 해상도의 계산을 실행하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양자 컴퓨터가 실용화된다면 최대 고객은 기후모델이 될 것이다.
지구온난화는 어느 곳의 주민에게는 축복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또 다른 많은 곳에서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이 된다. 우리의 과학기술은 아직 기상이변의 발생을 잘 예측하지 못한다. 다만, IPCC(기후변화에관한정부간패널)는 기상이변이 더욱 많이, 더욱 자주 발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2021년 텍사스 한파는 지구온난화의 무서운 경고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