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삶’ 순국 111주기 안중근 모친 “아들아, 대의에 죽는 게 어미에 대한 효도다”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사람이 대의(大義)를 위하여 귀중한 목숨을 초개(草芥)처럼 버릴 수 있을까? 아마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라를 위하여, 신앙을 위하여 기꺼이 죽은 사람이 세상에는 존재한다. 그런 위인의 뒤에는 어김없이 위대한 어머님이 계셨다.
‘시모시자(是母是子)’라는 말이 있다. “그 어머니에 그 아들”이라는 뜻이다. 1910년 1월 30일자 「대한매일신보」는 ‘시모시자’라는 제목의 기사를 낸 바 있다. 만주와 일본의 신문에서도 이를 전재한 유명한 논설이라고 한다.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30분 안중근 의사는 국적(國賊) 이토 히로부미를 하얼빈역에서 사살하였다. 온 세상을 놀라게 했던 이 거사(擧事)가 있은 지 5개월 후,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에 안 의사는 순국을 하게 된다.
안 의사 거사 후에 놀란 일본 조야(朝野)는 헌병과 순사를 동원하여 샅샅이 주변을 살핀다. 이때 안 의사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도 평양경찰서에 끌려가 여러 차례 심문을 받았다. 조 여사는 태연자약한 자세로 말했다.
“중근의 금번 거사는 러일전쟁 이후 나라가 위국(危國) 지경에 들어가는 현상을 보고 위국(爲國) 헌신적 사상에 기초한 것이다. 중근은 일상생활에서도 한 치의 어긋남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국채보상운동에도 적극 참여하여 가산을 쾌히 쾌척하였으며, 오직 나라의 안위를 걱정했다”고 거침없이 설명했다.
당시 심문하던 순사와 헌병들도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찬탄을 금치 못했다 한다. 안중근 의사의 거사는 우리도 크게 놀랐거니와 그 모친 조 마리아의 위인됨도 한국의 걸출한 인물이라고 중국과 일본에서 찬탄의 기사를 연이어 내보낸 바 있다.
특히 사형집행을 앞둔 옥중 아들 안중근에게 쓴 조마리아 여사의 편지는 많은 사람의 흉금을 울리고 있다.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公憤)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맘 먹지 말고 죽으라. 옳은 일을 하고 받는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아마도 이 편지가 어미가 너에게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여기에 너의 수의(壽衣)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거라. 어미는 현세에서 너와 재회하기를 기대치 않으니, 다음 세상에는 반드시 선량한 천부(賤婦)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너라.』
그 후 1910년 3월 26일 안 의사는 서거하고 천하가 발칵 뒤집혔다. 1911년 중국의 신해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던 발단도 이 사건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손문(孫文)이 격문(檄文)을 돌렸다. “이천만 조선족의 젊은 청년이 경천동지할 위업을 이룩하였거늘 4억의 지나인이여 잠자는가, 죽었는가?”
나라의 위기나 신앙의 위기를 당하여 과연 우리는 목숨을 초개처럼 던질 수 있을까? 나라를 위하는 순국(殉國)이나 종교를 위한 순교(殉敎)는 범부(凡夫)나 중생(衆生)은 감히 할 수 있는 일은 아닐 것이다.
순국은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침이며 순교는 종교를 가진 사람이 자기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침이다.
원불교에서는 목숨을 버리지 않고 순국하고 순교하는 방법이 있다. 소태산(少太山) 부처님께서 대각(大覺)을 이루신 후 표준제자 9인과 함께 창생(蒼生)을 구원할 서원을 세우고, ‘사무여한(死無餘恨)’의 결의로 마지막 기도를 올린 결과 백지에 혈인(血印)이 나타났다.
소태산 부처님이 이를 보고 “기도의 정성에 천지신명(天地神明)이 감응한 증거”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대들의 몸은 곧 시방세계에 바친 몸이니, 순일(純一)한 생각으로 공부와 사업에 오로지 힘쓰라”는 법문을 내린 것을 ‘법인성사(法認聖事)’라고 한다. 바로 이 법인성사의 정신으로 죽을 만큼 나라를 위하고, 신앙을 위하여 오롯이 이 한 몸 바치면 이것이 진정한 순국이고, 순교가 아닐까?
우리민족에게는 안중근 의사가 있어서 구한말이 초라하지 않았다. 대한의 맥박이 끊기지 않았다. 그분의 역사의식과 오롯한 자세는 두고두고 우리 민족의 영원한 스승이 된다. 올해는 안 의사 서거 111주기가 되는 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