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40년 해묵은 부자간 오해 풀어주다
[아시아엔=이상기 기자] 서울의 한 교회 성경읽기 단톡방에 오늘 오후 다음과 같은 글들이 올라왔습니다. 한 회원이 개인적인 글을 올리자 이에 댓글이 달린 겁니다. 이 단톡방에는 20대에서 70대 남녀 13명이 거의 반반씩 다양하게 참여하고 있습니다. 어떤 댓글들이며, 본래 어떤 글이 올랐을까요?
댓글1 “코로나가 부자지간을 회복시켜 주었군요. 은총”(60대 초반 남성)
댓글2 “마음 따뜻해지는 훈훈한 나눔 감사합니다. 몇주째 절망적인 뉴스들만 접하고 비관하고 있었는데 역시 희망은 말씀 안에 있다는 걸 다시 깨닫습니다.”(30대 후반 남성)
댓글3 “민원일 시달리다 오랜만에 본 훈훈한 소식입니다. ^-^ 민원일 하면서 많이 느낀 게 인간은 조그마한 이해에도 금세 돌변하고 가치관이 바뀌고 얼마든지 남에게 생채를 내는 존재구나~ 하는 거거든요. 아버지께서 일평생 지키신 신념은 오로지 주님만 내 안에 두었기 때문이네요. 저는 언제쯤 흔들리지 않을까요. 좋은 경험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30대 초반 여성)
댓글4 “나이를 먹는 것이 그래서 좋은 거도 같습니다. 힘든 지난 시간들이었겠으나 함께 예수 안에서 질풍노도의 시간과 더불어 바르게 곰삭아 갈 수 있다는 것에 깊이 동감합니다. 형제님의 사랑에 아버지의 마음도 부드러워지셨겠지요. ‘아버지! 사랑합니다~’ 아버지께도 표현..하시지요?^^”(50대 후반 여성)
댓글5 “어제 노사연씨의 노래를 들었습니다. 나이 드는 건 늙어가는 게 아니라 익어가는 거라는 거~. 이것저젓이 다 소중한 거 같아서 붙잡고 살았지만 인생 끝에 꼭 필요한 한가지 없어서는 안 될 그분의사랑”(60대 후반 여성)
댓글6 “아버님을 더 잘이해하게 되는 기회가 되었네요. 저도 아버님 소천하시기 얼마 전에야 그 깊은 마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선물같네요.”(50대 초반 남성)
궁금하시죠? 무슨 글이 올랐길래 이런 반응들을 보인 걸까요? (50대 초반 남성이 쓴 첫 글을 소개합니다.
“오랜 동안 다들 뵙지 못해 그립습니다. 공동체의 중요성을 몸소 느끼게 됩니다. 나누고 싶은 신변잡기가 있어 올립니다.
제 아버지는 오래 전 은퇴하셨지만 예장합동 목사입니다. 예장합동은 보수적인 것으로 유명합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전형적인 예장합동 목사님들처럼 한국 기독교의 전통적인 사고에 굳어 계신 원칙주의자입니다. 예배시간에 박수치는 것도 금지, 주일에는 아무리 필요한 것이 있어도 돈 10원 한장 쓰는 것도 금지였습니다.
정말 전형적이고 보수적이십니다. 여든이 되셨어도 고집은 여전하시죠. 당연히 주일 성수도 목숨같이 여기셔서 저는 부모님과 함께 사는 동안 두차례 드리는 주일예배를 단 하루도 빠져 본 적이 없습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학교 합창단이었던 저는 3학년 때 학교 축제 기간에 맞춰 친구들과 중창 공연준비를 했습니다. 4부 화성에 2명씩 8명이 점심시간에 짬짬이 모여서 3개월을 연습하고 준비했더랬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공연이 주일 오후 2시로 잡힌 겁니다. 조정을 해보려고 했지만 학교가 다양한 공연 스케줄이 겹치지 않도록 전체적으로 맞춰 놓은 거라 변경이 불가능했습니다. 우리 교회는 2시에 오후예배가 있습니다. 아버지께 11시 대예배는 드릴 테니 평생 중에 이번 한번만 봐달라고 사정을 했지만, 결국 허락을 못 받았고, 공연 약속을 어긴 저는 친구도 잃었습니다.
이 정도로 확고하시기 때문에 코로나 문제와 예배 문제가 이렇게 부딪히며 난리여도 안부전화를 드리며 예배 얘기는 꺼내지도 못했습니다. 사실 작은 교회에서 예배를 강행하다가 집단 감염자가 나오는 상황이 저는 남의 일 같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시무하시던 교회도 아주 작은 교회이고, 그런 교회는 사실 집회를 멈추는 순간 재정이고 뭐고 끝장나기 정말 쉬운 열악한 환경이란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마도 계속 주일예배를 모이고 있을 것 같아서 아버지께 여쭤보기조차 겁났던 거죠. 그저 건강 괜찮으신지 안부나 여쭐 뿐이었죠. 이 와중에도 주일 성수 말씀하시면 싸울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어제 통화를 하다 기어이 예배 모임 얘기를 꺼내고 말았습니다. 예상대로 그 교회는 주일예배를 모이고 있다고 하시더군요. 놀라웠던 것은 아버지의 반응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주신 계명이 딱 두가지인데, 이런 시절에 주일 성수하겠다고 예배에 모이는 것은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을 어기는 거라구요. 자기 혼자 앓는 것이 아니고 증상도 없이 옮길 수도 있는 데 어찌 예배만 생각할 수 있냐고 하시더군요.
그리고 마스크도 안 쓰고 집회를 해서 행정처분을 받게 된 모 교회 얘기를 하시며, 신천지보다 더 나쁜 짓이라고 일갈하셨습니다. 신천지는 이단이니 사람들이 그러려니 하겠지만, 이러니 저러니 이견이 있어도 그래도 교회인데 그 꼴을 보고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나, 그걸 본 사람들에게 어떻게 예수님과 복음이 제대로 전해질 수 있겠나 한탄하시더군요.
아버지 의견에 동의하고 말고를 떠나서, 어제 통화를 통해 제가 아버지를 많이 오해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생각해 온 아버지는 그저 답답한 원칙주의자였는데, 그 원칙이란 게 다름 아닌 예수님이었구나, 말씀이었구나, 아버지의 원칙주의 삶은 비록 말씀에 대한 해석의 여지는 다르더라도 말씀 따라 사시려고 애쓰신 결과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50년을 가족으로 살아도 서로 모르는 것이 많다는 것도 느꼈습니다.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 알 수 없으나 아버지와 더 많이 대화해야겠습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이 글들을 읽으신 <아시아엔> 독자께선 어떤 느낌이 드셨는지요?
처음 글을 올린 바로 윗글을 쓴 이의 글로 기사를 마무리 합니다.
“훈훈하다고 생각 못했는데 훈훈하다고들 해주시니 감사하네요. 아버지가 예배 참석 안하고 계신다며, 나만 믿음이 작은가봐 하며 웃으셨어요. 건강 유의하시고 든든한 주님 기대시기 바랍니다.”
마음에 와닸습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