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중반 교육투자가 한·중·일 현대사 갈랐다
“교육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
[아시아엔=이강렬 미래교육연구소 소장, 전 국민일보 편집국장] 농경시대에 농사는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으로 존중을 받았다. 농사는 천하의 큰 근본이며, 나라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힘이라는 말이다.
‘밥’을 ‘하늘’이라 생각했던 그때에 농민이 없으면 아무도 살 수 없었기 때문이다. 농경시대를 지나 산업혁명, 그리고 정보화혁명을 넘어 지금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접어들었다. 4차 산업혁명의 원동력은 ‘쌀’이 아닌 ‘교육’이다. 지금은 교육이 천하의 근본이 되는 ‘교육천하지대본’(敎育天下之大本) 시대다.
이런 시대를 열 수 있는 힘은 교육, 그 가운데 ‘창의적 교육’(Creative Education)이다. 줄기세포 하나가 심장, 간, 위 등 여러 장기로 분화하듯이 교육은 희망이고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다.
조선시대는 계급사회였고 지금은 계층사회다. 최하층에 속하는 빈민의 자녀들도 교육을 받으면 교수, 고위공무원, 기업 임원이 될 수 있다. 교육의 힘이다. 교육은 가파른 계층 사다리를 오를 수 있도록 도와주는 희망이다.
한중일 3국은 교육사적 측면에서 볼 때 1800년대 중반 이후 ‘교육경쟁’에서 그 승패가 갈렸다. 일본은 1861년 메이지유신 이전부터 대대적으로 해외유학생을 미국과 유럽에 보내 서양문물을 받아들여 근대화에 성공했다.
중국은 1872년 청나라의 조기유학 프로젝트 유미유동(留美幼童)을 시작으로 해외 유학생을 보냈으나 이를 이어가지 못했다. 반면 쇄국정책을 썼던 한국은 가장 늦은 1882년에서야 일본에 유학생, 1884년에 미국 유학생을 보낸다. 이때 미국내 일본 유학생은 1천명에 이르고, 시카고대학 박사가 배출된다.
인간은 어느 동물보다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 물고기가 좁은 호수, 다소 넓은 강, 그리고 무한히 넓은 대양, 어디서 사느냐에 따라 크기가 달라지는 것처럼 인간도 어디서, 어떤 교육을 받느냐에 따라 그 역할이 달라진다. 중국에 거주하는 많은 교민들의 가장 큰 관심과 바람은 자녀교육이다. 이 분들의 가장 큰 꿈은 자녀들이 자신보다 더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것을 ‘승어부’(勝於父)라고 한다. 한마디로 “아비보다 낫거라”이다. 내가 잘 먹고 잘 사는 것보다 자녀들이 나보다 더 행복하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이 필요하다.
경자년 새해가 밝았다. 우리에겐 지난해보다 많은 어려운 일들이 기다리고 있다. 한국사회가 당면한 난마처럼 얽힌 있는 문제들의 근본해법은 교육에 있다. 각 분야별 단기적 해법이 있겠으나 이는 본질적 해결방법이 아니다. 장기적으로 나라가 바로 서려면 교육이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
한마디로 교육이 제대로 이뤄져야 나라가 바로 서고 발전을 한다. 미국이 세계 최고의 강대국인 것은 최고의 대학들이 있기 때문이다. 교육은 대한민국을 진정한 강대국으로 이끌 천하지대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