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크리스마스!” 아기 예수 방글라데시 로힝야난민촌에

로힝야난민촌 아이들에 오신 예수님. 저들에게 희망을 주시러오신 구주 예수님.

[아시아엔=방글라데시/김해성 로힝야난민촌 섬김이] 평화의 왕 아기 예수님이 척박한 방글라데시 로힝야 난민촌에도 오셨다!

우리 고아원 해피홈은 미얀마에서 엄마 아빠를 잃은 아이들을 찾아 보육하는 자리다. 아이들 200여명과 성탄을 맞이하여 예배를 드렸다. 언어가 서로 다르기에 한국말이 선포되면 방글라데시 말로 통역하고 이를 다시 로힝야말로 통역하는 복잡한 단계다.

로힝야난민촌 고아원 해피홈, 우리의 딸 아들 이들에게 꿈을 주는 건 우리 모두의 몫이다

“여러분들의 엄마와 아빠는 어디에 계신가요?”
아이들이 시무룩하게 대답한다.

“죽었어요!”

“어디에서 돌아가셨나요?”
“미얀마에서요!”

“어떻게 돌아가셨지요?”
“칼에 찔려서요!” “총에 맞아서요!” “불에 타서요!”

이내 아이들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한다. 눈물을 훔치며 흐느끼던 울음이 와락 통곡으로 터져버리고 말았다.

나도 함께 울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아이들의 울음이 자자든다.
이 아이들은 미얀마에서 소수민족으로 살다가 2017년 8월 25일 직후부터 미얀마 군경에 의해 학살당한 로힝야 사람들의 자녀들이다.

집과 마을은 미얀마 군경이 놓은 불에 타 잿더미가 되었다. 이 아이들은 할머니나 일가 친척들의 손에 이끌려 목숨을 걸고 강과 바다를 건너 방글라데시로 건너왔다. 그리고 난민촌을 형성하고 난민으로 살고 있다.

조용히 2천년 전 첫번째 성탄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오늘은 2019년 12월 24일이지요?”
“내일은 2019년 12월 25일입니다. 무슨 날인가요?”

로힝야난민촌 아이들, 저들에게 꿈을 주는 건
우리 모두의 몫이다.

몇 아이들 입에서 ‘크리스마스’라는 대답이 들려왔다. (이슬람국가인 방글라데시에서도 성탄절은 국가공휴일이고 모두가 쉬는 날로 지정돼 있다. 이슬람 경전인 <꾸란>에도 예수님 이야기가 가장 많이 할애되어 기록되어 있고 많은 이들이 예수님을 알고 있다. 그렇지만 이슬람 사람들은 가장 크고 유일한 선지자는 ‘마호메트’로 인식하고 있다)

그렇게 성탄이야기가 시작되었다.

“2000여년 전 로마황제는 이스라엘 식민지 백성에게 호적을 하도록 했어요. 세금을 받아 먹으려는 수법이었죠. 황제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어 요셉과 마리아는 남산만큼 부른 배를 안고 요셉의 고향인 베들레헴을 향했지요. 몸 풀 곳이 없어 외양간 한 켠에서 간신히 아기를 낳았지요. 강보에 싸서 말 밥통에 뉘였구요.

한편 별을 연구하는 동방의 박사 세 사람이 산 넘고 물 건너 별을 따라 왔지요. 그런데 아기 왕은 왕궁에서 탄생하리라 생각했던 박사들은 예루살렘에 있는 왕궁을 찾아가 헤롯왕을 만나게 되었지요. 새로운 왕의 탄생 소식에 헤롯왕과 예루살렘은 술렁이게 되었지요. 헤롯왕은 가만히 박사들에게 별이 나타난 때를 묻고 돌아갈 때 아기 왕이 태어난 곳을 알려주면 자기도 경배하겠노라고 거짓말을 합니다. 드디어 동방의 박사들은 별을 따라 베들레헴에 도착했고, 별이 멈춘 곳, 외양간 말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뵙고 경배를 했지요. 그리고 준비해 온 황금과 유황과 몰약을 선물로 드렸구요.

예수탄생

이후 동방의 박사들은 꿈에 지시를 받아 헤롯왕에게 들리지 않고 다른 길로 돌아서 고국에 가게 되었지요. 천사는 요셉의 꿈에 나타나 헤롯이 아기를 죽이려 하니 아기와 모친을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 지시할 때까지 머물라고 하지요. 헤롯왕은 동방 박사들에게 속은 줄을 알고 화를 내며 군인들을 보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들을 박사들에게 알아본 그 때를 기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게 되었지요.

(요세푸스의 역사 기록에 의하면 당시 베들레헴 근동에서 2만여명의 사내 아이들이 학살을 당했다는 기록이 있다)

2천여년 전 첫번째 성탄절은 아이들의 학살로 솟구치는 피가 얼룩진 성탄절이었지요. 학살당한 아들을 부여 안고 울부짖는 엄마와 아빠, 그 가족들의 절규가 넘치는 성탄절이었지요.

시간이 흘러 헤롯이 죽은 후에 천사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 아기의 목숨을 찾던 자들이 죽었다’고 소식을 전해 주지요. 그래서 요셉이 아기와 그 어머니를 내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왔다는 것이지요.”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듯이. 로힝야난민촌 아이들의 발을 씻기는 어른들 마음은 미안함이다. 아이와 같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했다. 

요즘 표현으로 하자면 아기 예수님은 학살을 피해 이집트로 국외 망명을 하고 난민으로 살아간 아픈 난민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미얀마에서 살던 우리 아이들은 어느 날 갑자기 미얀마 군경에 쫓기다가 붙잡혀 처참하게 학살당하는 부모의 모습을 보았다. 불타는 집과 마을을 뒤로 하고 목숨을 걸고 강과 바다를 건너왔다.

이렇게 죽음의 자리를 건너 온 우리 아이들에게 아기 예수님 당시의 학살 이야기는 결코 남의 이야기처럼 들리지는 않았을 터다. 우리 아이들은 자신들의 처지를 떠올리며 다시 눈물을 짓기 시작한다. 그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면 구원을 받는다고 결론을 지었다.

로힝야난민촌 아이들, 저들에게 필요한 건 사랑과 관심이다. 저 아이가 내 아들 딸, 내 조카, 내 손자라면?

“아기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아민”
“그 예수님이 우리에게 평화를 주십니다” “아민!”
“그 예수님이 우리에게 희망을 주십니다” “아민!”
“그 예수님이 우리에게 구원을 주십니다” “아민!”

(‘아민’은 우리의 ‘아멘’과 동일한 뜻으로-나도 그렇게 믿습니다!”란 뜻이다. 이슬람 사람들도 기도하며 ‘아민’을 외친다)

드디어 고아원 해피홈의 200명 아이들이 손을 들고, 일부는 가슴에 손을 포개고 뜨겁게 외치는 소리가 넘쳐난다.

“이사노비! 아말 비또레 아센!”
“이사노비! 아말 비또레 아센!”
“이사노비! 아말 비또레 아센!”
(“예수님! 내 마음에 오세요!”)

200명 아이들이 목이 터져라 외치는 소리, 감동과 눈물이 넘쳐난다.

평화의 왕 아기 예수님이 방글라데시 로힝야난민촌에도 오셨다!

우리 고아들의 마음에도 오셨다!

로힝야난민촌 아이들, 천진난만한 저들의 꿈을 깨지 말자. 저들에게 희망을 나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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