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 ‘빈들’ 이정하 “유독 많은 눈이 이 들판을 덮어도”

초겨울 빈들판, 그곳엔 땀과 눈물이 듬뿍 담겨 있다. 사랑도 함께

아버지는 맨손으로 돌아오는 때가 없었다
유독 많은 눈이
이 들판을 덮어도

아버진 눈 속을 헤쳐 땅에 박혀 있는 농약병, 땔나무
하다못해 지푸라기 하나라도 주워들고 오셨다.

그렇게 알뜰히
가난을 모으고 모아
자식들한테는
물려주지 말아야지

너희들 앞길만은 반듯하게 닦아놓아야지, 하시더니
그 길로 어머니
꽃상여 보내신다.

시신이야 썩지 않아 다행이지만
꽁꽁 언 땅에 어디 삽이나 제대로 들어갈까.

너희 엄마 살아생전
고생 못 면하더니
죽어서도 여전히
추운 살림이구나

얼음장 같은
요령소리 뒤따라가며
요령소리보다 더 큰
헛기침 내뱉으며

아버지 돌아서서
평생 없던 눈물 보이신다.
아버지 그날 이후
빈들 바라보는 일 잦으시고

마을에서 밤늦도록
술을 마시는 날이면
그대로 영영
취해버렸으면 싶었다.

그러다가도 아버지
새벽녘, 이 들판 건너올 때 혼자 오시는 법 없었다.
언제나 어머니를 가슴에 안고 오셨다.

 

시를 읽고

24년 전에 돌아가신 아부지가 생각이 납니다. 그의 앞서 14년 전에 함박눈이 내리던 추운 겨울날 어머니는 암투병으로 일찍 생을 마감을 하였고 암 투병으로 인해
가세는 기울어진 채 홀로 어린 자식 7명을 키워내야 하는
막막함, 고독과 외로움에 홀로 싸워야 하는 시골농부의 현실에 술이 아니었으면 무너지는 삶을 감내하기 힘들었을 겁니다. 술이 거하게 취하시면 항상 어머님을 그리워 하시며 자식들 몰래 흐느끼며 눈물을 흘리시는 아부지의 뒷모습에 지금도 생각만 하면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언제 불러보아도 싫지않는 “아부지, 엄니” 넘 보고 싶습니다.  

                                            글 이길주 <아시아엔> 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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