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한가위 ‘감사하는 생활’로 준비해볼까요?

까치밥의 넉넉함과 고마움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나는 감사를 한다는 것이야말로 모든 수행의, 모든 기도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래 감사하고 살아야지’ ‘감사생활 좋은 거지’ 하면서도 직접 감사생활을 하는 게 쉽지 않다.

원불교 교법(敎法) 중에 ‘일상수행의 요법’이라는 것이 있다. 원불교 교리를 망라한 것으로 아홉 가지로 나누어 누구나 일상생활에 베풀어 사용하라는 가르침이다. 그 다섯 번째 조항에 “원망생활을 감사생활로 돌리자”는 항목이 있다.

원망생활을 하는 사람은 언제나 불평불만과 고통에 허덕이고 인생을 비관하기가 쉽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은혜를 입었으면 은혜를 갚는 것이 바른 길이다.

감사생활을 하고 싶으면 이렇게 한번 해보자. 노트나 백지, 컴퓨터에 ‘감사일기’라고 쓰고 그리고 나에게 과연 감사한 것들이 무엇이 있는가를 한번 적어 보는 것이다. 작은 수첩을 들고 다니면서 될 수 있다면 하루나 한 주, 아니 한 달 정도 계속해서 매 순간순간 감사한 일이 생기면 그 때마다 계속해서 적어 보는 것이다.

어느 사람이 묻는다. “내가 이렇게 고생하며 월급 받고 사는 건데 왜 감사하게 생각해요?” 아니다. 당연히 감사하게 생각해야 한다. 오래 전에 인도와 네팔, 티벳 등지를 다녀온 적이 있다. 하루에 2달러 정도의 임금을 받고 일하는 것을 보았다. 이런 나라나 아프리카 같은 곳에서 살고 있는 이들에 비하면, 또 직장 없이 마음고생 하는 이들에 비하면 지금의 우리는 당연하거나 평범한 것이 아니라 너무나도 감사한 삶을 누리고 있는 것 아닌가?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잘 크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태어나자마자 장애나 큰 병을 가지고 태어났거나, 지금 병원에서 병마와 싸우고 있거나, 사고를 당했거나, 그러지 않고 이렇게 잘 크고 있다는 사실은 너무도 감사한 일이다. 당연한 일이 아니다. 이렇게 아이가 건강히 내 곁에 있고, 사고치지 않고, 집 나가지 않고, 큰 병도 없고, 큰 교통사고가 난 것도 아니고, 그렇게 잘 커주고 있는 것이 정말 당연한 일인가? 그 얼마나 크게 감사할 일인가?

먼저 감사해 하고, 먼저 다가가시라. 먼저 우리가 감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보고 찾았다면 충분히 감사해 하고, 그 감사를 표현하고, 사랑해 주자. 진심으로 끊임없이 감사하면 모든 문제는 아주 쉽게 자연스럽게 풀려나간다.

우리의 삶에서 최소한의 의식주가 보장되어 있다면, 그것은 무조건 감사해야 할 일들로 가득한 거다.

나를 괴롭히는 사람에게조차, 나를 힘들게 하는 상황에조차 감사할 정도가 된다면, 그 사람의 삶은 일상을 뛰어넘고, 업(業)을 뛰어넘어 보다 깨어있고 삶을 초월하는 새로운 차원으로 접어들 수 있다.

사실은 깨달은 자의 시선이 바로 모든 존재에 대한 감사와 찬탄의 시선이다. 중생의 눈에는 모든 것이 시비(是非)거리이거나, 괴로운 일이거나, 답답하고 꼬이는 일이지만, 불보살의 눈에는 그 모든 것이 감사할 일이고, 나를 돕는 법계(法界)의 배려이며, 찬탄할 만한 일들이다.

감사수행은 어떤 힘을 지닐까?’
1. 모든 긍정의 감정들 가운데 가장 강력한 힘.
2. 가장 수동적인 것 같으나 가장 적극적인 삶을 이끌어내는 힘.
3. 인간의 생존과 영적번영에 생태적으로 요구되는 필수 핵심감정.
4. 진정한 자기해방의 감정다.
5. 개인의 내적안녕뿐 아니라 사회건강을 지키는 사회적 감정.
6. 고품격의 인간내적상태를 고양(高揚)시키는 감정.
7. 스스로 하는 영적(靈的) 마사지.
8. 감사 자체가 보상이며, 보상을 연쇄적으로 일으키는 무한생산성의 감정.
9. 평범하지만 위대한 삶의 변화로 이끄는 힘.

이만 하면 우리가 감사생활을 해야 할 충분조건이 채워진 것 아닌가? 원망생활 하는 사람은 미물곤충에게서도 해독(害毒)을 입는다 하였다. 반면 활을 하는 사람은 진리의 위력(威力)을 얻어 하는 일마다 무위이화(無爲而化) 자동적으로 술술 풀리게 된다.

진리에 어긋나는 일은 탐욕이다. 탐욕이 이루어지는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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