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오르는 욕정 떨쳐내니···원효와 일체유심조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일체유심조’란 화엄사상(華嚴思想)의 중심으로 제법(諸法)은 그것을 인식하는 마음의 나타남이고, 존재의 본체는 오직 마음이 지어내는 것일 뿐이라는 뜻이다. 즉, 모든 것은 마음에 달린 것이란 거다.
신라 원효대사(元曉大師, 617~686)는 젊은 시절 분별하고 주착(主着)하는 마음을 버리고 일체유심조 이치를 깨쳐 대각(大覺)을 이뤘다. 일화 하나.
“이토록 깊은 밤, 폭풍우 속에 여인이 찾아올 리가 없지.” 거센 비바람 속에서 얼핏 여자의 음성을 들었던 원효 스님은 자신의 공부를 탓하며 다시 마음을 굳게 다졌다. ‘아직도 여인에 대한 동경이 나를 유혹 하는구나. 내 도를 이루기 전에는 결코 자리를 뜨지 않으리라.’
자세를 고쳐 점차 선정(禪定)에 든 원효스님은 휘몰아치는 바람과 거센 빗소리를 분명히 듣는가 하면 자신의 존재마저 아득함을 느꼈다. ‘마음, 마음은 무엇일까?’ 원효 스님은 둘이 아닌 분명한 본래 모습을 찾기 위해 무서운 내면의 갈등에 휘말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등잔불이 기름을 튕기며 탔다. 순간 원효스님은 눈을 번쩍 떴다. 비바람이 토굴 안으로 왈칵 밀려들었다. 밀려오는 폭풍우 소리에 섞여 여자의 음성이 들렸다. 스님은 귀를 기울였다.
“원효스님, 원효스님, 문 좀 열어주세요.” 스님은 벌떡 일어났다. 다음 순간 망설였다. 여인은 황급하게 문을 두드리며 스님을 불렀다. 스님은 문을 열었다. 왈칵 비바람이 방안으로 밀려들면서 방안의 등잔불이 꺼졌다.
“스님, 죄송합니다. 이렇게 어두운 밤에 찾아와서….”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비를 맞고 서 있는 여인을 보고도 스님은 선뜻 들어오란 말이 나오질 않았다. “스님, 하룻밤만 지내고 가게 해주세요.” 여인의 간곡한 애원에 스님은 문 한쪽으로 비켜섰다. 여인이 초막 안으로 들어섰다.
“스님, 불 좀 켜 주세요. 너무 컴컴해요.” 스님은 묵묵히 화롯불을 찾아 등잔에 불을 옮겼다. 방 안이 밝아지자 비에 젖은 여인의 육체가 눈에 들어왔다. 와들와들 떨고 있는 여인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스님, 추워서 견딜 수가 없어요. 제 몸 좀 비벼 주세요.” 여인의 아름다움에 잠시 취해 있던 스님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스님은 떨며 신음하는 여인을 안 보려고 스님은 눈을 감았다. 하지만 비에 젖어 속살이 들여다 보이는 여인의 모습이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모든 것은 마음에 따라 일어나는 것. 내 마음에 색심(色心)이 없다면 이 여인이 목석과 다를 바 있으랴.” 스님은 부지중에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여인을 안아 침상에 눕히고는 언 몸을 주물러 녹여 주기 시작했다.
풍만한 여체를 대하자 스님은 묘한 느낌이 일기 시작했다. 스님은 순간 여인을 침상에서 밀어낸다. ‘나의 오랜 수도를 하룻밤 사이에 허물 수야 없지.’ ‘일체만물이 마음에서 비롯된다 하였으니 내 어찌 더 이상 속으랴.’ ‘이 여인을 목석으로 볼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여인으로 보면서도 마음속에 색심이 일지 않으면 자신의 공부는 온전하다.’ 이렇게 연신 생각했다. 스님은 다시 여인에게 다가간다. 그리고는 여인의 몸을 비비면서 염불을 했다.
여인의 풍만한 육체는 여인의 육체가 아니라 한 생명일 뿐이었다. 스님은 여인의 혈맥(血脈)을 찾아 한 생명에게 힘을 부어줬다. 도움을 주는 자와 받는 자의 구별이 없을 때 사람은 경건해진다. 여인의 몸이 서서히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정신을 차린 여인은 요염한 웃음을 지으며 스님 앞에 일어나 앉았다.
여인과 자신의 경계(境界)를 느낀 스님은 순간 밖으로 뛰쳐나왔다. 폭풍우가 지난 후의 아침 해는 더욱 찬란하고 장엄했다. 간밤의 폭우로 물이 많아진 옥류폭포의 물기둥이 폭음을 내며 떨어지고 있었다. 스님은 훨훨 옷을 벗고 옥류천 맑은 물에 몸을 담근다. 뼛속까지 시원한 물속에서 무한한 희열을 느끼는데 여인이 다가왔다.
“스님, 저도 목욕 좀 해야겠어요.” 여인이 옷을 벗어 던지고는 물속으로 들어와 스님 곁으로 다가온다. 아침 햇살을 받은 여인의 몸매는 눈이 부셨다. 스님은 생명체 이상으로 보이는 그 느낌을 자제하고 항거를 했다. 마침내 스님은 눈을 부릅뜨고 외쳤다.
“너는 나를 유혹해서 어쩌자는 거냐?” “호호호, 스님도. 어디 제가 스님을 유혹 합니까? 스님이 저를 색안(色眼)으로 보시면서.” 스님은 순간 큰 방망이로 얻어맞은 듯한 무한한 혼돈(混沌)이 일었다. ‘색안으로 보는 원효의 마음’이란 여인의 목소리가 계속 스님의 귓전을 때렸다. 거센 폭포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계속하여 여인의 음성이 혼돈으로 가득 찬 머릿속을 후비고 들어올 뿐! ‘색안으로 보는 원효의 마음’을 거듭거듭 뇌이면서 원효스님은 서서히 정신을 차렸다. 폭포소리가 들렸고 캄캄했던 눈앞의 사물이 제 빛을 찾고 제 모습을 드러냈다. 이렇게 의식되는 눈앞의 경계를 놓치지 않고 원효 스님은 갑자기 눈을 떴다.
‘옳거니, 바로 그거로구나! 모든 것이 그것으로 인하여 생기는 그 마음까지도 버려야 하는 그 도리!’ 스님은 물을 차고 일어섰다. 여인은 어느새 금빛 찬란한 후광을 띤 관음보살이 되어 폭포를 거슬러 사라졌다. 원효 스님은 그곳에 암자를 세웠다. 자기의 몸과 마음을 뜻대로 한 곳이라 하여 절 이름을 ‘자재암(自在庵)’이라 했다.
마음의 요란함, 어리석음, 그름을 그대로 두고는 고요와 지혜, 옳음을 얻을 수 없다. 분별하는 마음이 없이 일체를 하나로 보는 것이 정의다. 나와 너, 죄와 복, 선과 악, 그름과 옳음 중 하나만 취하는 것은 원융함을 외면하는 불의(不義)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