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로 가요, 백제문화 숨결 느끼러···

백제의 마지막 역사를 담고 있는 충남 부여군. 부여가 유네스코 문화유적지구에 오를 수 있을까?

유네스코 인천광역시협회(협회장 하석용)는 국내외 문화유적지를 답사하는 ‘유네스코 시민대학 인문학과정’을 개설하고 그 첫 번째 행선지로 부여를 선택했다. 백제를 대표하는 부여를 신라를 대표하는 경주처럼 유네스코 문화유적지구에 올리려는 노력의 일환에서이다.

하석용 회장은 “백제가 신라에게 멸망하면서 많은 문화재가 소실돼 지금은 남아있는 게 거의 없어 안타깝다”며 “이것이 멸망한 나라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백제의 대표 석탑 ‘정림사지 오층석탑’

한국, 국토대비 세계 정상급의 세계유산 보유

한국은 현재 세계문화유산 10건, 인류무형유산 14건, 기록유산 9건 등 모두 33건이 유네스코에 등재돼 있다. 국토면적에 비해 등재된 세계유산과 인류무형문화유산 수는 모두 세계 정상급이다.

유네스코에 등록된 세계유산은 153개국에서 936점이다. 이 중?문화유산이 725점으로 가장 많고 자연유산 183점, 복합유산 28점이다. 2011년 8월 세계유산협약 가입국은 188개국이다.

한국에서는 최근 ‘난중일기’와 ‘김치’를 각각 세계기록유산과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 신청했다.

부소산성길 걸으며 해설하는 하석용 회장(가운데)

부여는 성왕부터 의자왕 660년 멸망까지 123년간의 백제 문화를 보여주는 곳이다. 남아 있는 문화재는 많지 않지만 부여의 문화재에서는 뛰어난 예술성과 백제인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부소산성, 정림사지 오층석탑, 궁남지, 능산리 고분군, 백제금동대향로 등이 대표적인 문화재다.

부소산성(사적 제5호)은 그 일대가 평지이고 앞에는 백마강이 흐른다. 전략적 요충지로서의 가치가 커 부소산성이 만들어졌다.

왕궁을 지키기 위해 도시 외곽에 만든 성을 나성이라고 하는데, 부소산성의 끝자락에는 그 나성이 있던 ‘구드레’가 있다.

정림사지 오층석탑 근방에서 기념촬영하는 탐방객들

정림사지 오층석탑(국보 제9호)은 부여 정림사터에 세워져 있는 석탑으로 우리나라 석탑을 대표한다. 좁고 낮은 1단의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세웠다.

당나라 소정방이 정림사지 오층석탑에 새겨놓은 글이 희미하게 보인다.

신라와 연합해 백제를 멸망시킨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백제를 정벌한 기념탑’이라는 뜻의 글귀를 이 탑에 새겨놓아 한때 ‘평제탑’이라고 잘못 불리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이 석탑은 익산 미륵사지 석탑과 함께 백제 시대에 세워진 귀중한 탑으로, 우리나라 석탑의 시조라고 할 수 있다.

흐린날 궁남지의 반영

궁남지(사적 제135호)는 궁의 남쪽에 있는 연못으로 서동 의자왕의 아버지 무왕의 서동 설화가 얽혀있는 연못이다. ‘부여 궁남지’로 이름이 바뀐 뒤 해마다 여름이면 연꽃축제로 유명한곳이다.

능산리 고분군 전경

능산리 고분군(사적 제14호)은 일제강점기 때 1∼6호 무덤까지 조사돼 내부구조가 자세히 밝혀졌고 7호 무덤은 1971년 보수공사 때 발견됐다. 고분의 겉모습은 모두 원형봉토분이고 내부는 널길이 붙은 굴식돌방무덤(횡렬식 석실분)으로 뚜껑 돌 아래는 모두 지하에 만들었다.

능산리 무덤들은 일찍이 도굴되어 두개골 파편·도칠목관편·금동투조식금구·금동화형좌금구 등 약간의 유물만 수습됐다. 최근 무덤들 서쪽에 절터가 발굴되면서 백제금동대향로(국보 제287호)와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국보 제288)이 출토돼 능산리 무덤들이 왕실 무덤지역이라는 것을 재확인시켜준 바 있다.

최고의 걸작품, 백제금동대향로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백제금동대향로

백제금동대향로(국보 제287호)는 연꽃과 산봉우리로 상징되는 백제인의 이상 세계를 완벽하게 구현한 당대 최고의 걸작품으로 평가된다. 용과 봉황이 어우러진 완벽한 조형미를 자랑하며 백제인들의 뛰어난 예술적 감각과 높은 문화적 품격을 느낄 수 있다.

백제 나성과 능산리 무덤들 사이 절터의 한 구덩이에서 450여 점의 유물과 함께 발견된 이 향로는 높이 61.8㎝에 무게가 11.8㎏이나 된다. 23개의 산이 첩첩산중을 이루고 기마수렵상 등 16인의 인물상, 39마리의 상상과 현실의 동물 등이 변화무쌍하게 표현돼 있다.

뚜껑 꼭대기에는 별도 부착된 봉황이 여의주를 품고 날개를 편 채 힘차게 서 있는데 약간 치켜 올라간 꼬리의 부드러움은 백제만의 특징이다. 봉황 앞가슴과 악사상 앞뒤에는 5개의 구멍이 뚫려 있어 연기가 자연스럽게 피어오를 수 있게 했다. 이 향로는 창의성과 조형성이 뛰어나고 불교와 도교가 혼합된 종교적 복합성까지 보이고 있어 백제의 공예와 미술문화, 종교와 사상, 제조기술까지도 파악하게 해주는 귀중한 작품이다.

우리 문화에 대한 자부심 가져야?

하석용 협회장은 “외국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이 ‘나가 보니 우리나라 문화재는 정말 아무 것도 아니더라. 솔직히 우리나라에 보여줄 게 뭐가 있나’라는 식으로 누워서 침 뱉는 자기비하의 발언을 접할 때마다 무척 안타깝다”며 “민족적 정체성 확립이나 세계를 바라보는 공정한 시각을 갖기 위해서는 우리 역사를 바로 알고 그를 바탕으로 ‘나’에 대한 확고한 자부심부터 가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이런 맥락에서 유네스코 시민대학을 통해 우리 역사 바로 알기 작업 등을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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