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타결 ‘주역’ 김현종 보며 막스베버를 떠올리다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한미 FTA가 드디어 타결되었다. 중구난방에 흔들리지 않고 협상을 진행한 통상교섭본부에 박수를 보낸다. 협상 결과에 비난은 쉽지만, 이번 협상은 한국이 미국을 상대로 하여 얻어낼 수 있는 최대치였다고 믿는다.
정부에서 관료의 모범이 되는 것이 영국의 관료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BBC에서 만든 <Yes, Minister>다. 102세로 서거한 여왕의 모후도 즐겨보았다는 드라마다. 모후는 조지 6세의 왕후로 말더듬이 남편이 고칠 수 있도록 도운 일화가 영화화되었다. 영국 여왕은 입헌군주로서 국정에 간여하지 않으나 일주일에 한번 보고를 받는다.
영국의 국권은 의회와 국왕이 공동으로 행사한다는 것이 불문헌법이다. 엘리자베스 2세는 처칠로부터 지금의 메이까지 수많은 수상을 거쳤다. 보고를 받으며 얻게 된 경륜에서 나오는 조용히 한마디는 깊은 울림을 갖는다.
영국에서 관료의 정점은 ‘permanent under secretary’로 불리는 사무차관이다. 사무차관들은 장관에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한다. 영화는 장관에 청종하는 듯하며 대신을 넘어서는 능청스러운 사무차관들을 묘사하고 있다. 대처는 관료를 철저히 장악했다. 내각은 의회의 신임으로 성립한 것이며, 관료는 그에 종사해야 한다는 원칙에서 추호도 벗어나지 않았다. 대의제 정부와 임명제 관료와의 우열을 분명히 하였다.
일본의 관료는 다르다. 일본 관료들은 ‘일개(一介) 대신’이라는 말을 함부로 한다. 관료독재라 할 만큼 건방지다. 대장성이 중심이다. 영국의 Treasury다. 한국의 관료제도가 본뜨고 있는 것이 일본이다. 예산은 경제기획원 예산국이 주무였다. 예산의 항과 목을 편성하는 것이므로, 그 권력은 막강했다. 장차관들이 줄을 서서 서기관들에 로비를 했다.
금융은 재무부 이재국이었다. 한국은행을 이재국 출장소라 불렀다. 영국에서 예산의 대강은 각료들의 성청(聖聽, star chamber)에서 결정되고 대장성은 그에 따르는 것이 한국, 일본과 다르다.
한국에서 경제관료의 대표자격인 신현확이 있다. 신현확은 5공, 6공을 통해 관료의 실력자였는데, 일본에서 명치 군벌의 배후에 있던 야마가타 아리도모에 비유할 수 있다. 천황이 군벌의 허수아비였다면, 군벌의 막후는 야마카타 아리도모였다. 국무회의 도중 명치 천황이 졸면 칼을 딸그락거려 깨우는 사람이었다.
종전 후 일본은 군벌이 가고 관료가 지배했다. 자민당 정권이 지속되었으나, 일본을 움직이는 것은 관료였다. 한국 관료가 일본을 부러워하는 것은 권력이었다. 본받아야 할 것은 정권이 바뀌더라도 흔들리지 않고 일본을 끌고 나가는 책임감이다.
한미 FTA 협상을 이끈 김현종은 바람직한 관료상이다. 전임 김종훈과 함께 막스 베버가 제시한 ‘관료제’의 이상형(prototype)에 근접한다고 보인다. 관료제의 장점은 경험의 축적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치인이나 관변학자들이 범하기 쉬운 실수를 보완해준다. 정권교체기에 통상교섭본부가 왔다 갔다 하여 귀하게 길러진 전문 인력이 한때 분산되었던 일은 유감이다. 관료가 안정되어야 국가의 기본이 흔들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