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군·홍군·빨갱이’의 어원과 북미정상회담

북한 조선중앙TV는 지난 9일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 겸 국무위원장이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을 접견했다고 10일 방송했다. 김정은 위원장과 폼페이오 장관은 북미정상회담과 북한에 억류중인 미국인 3명에 대한 석방을 논의했으며, 억류된 미국인들은 폼페이오 장관과 함께 미국으로 귀국했다. <사진=조선중앙TV 캡처/뉴시스>

트럼프 싱가포르서 레이건 될까 카터 될까?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해방 후 소련군이 북한에 들어왔을 당시 그들은 ‘붉은 군대’(적군)으로 불리었다. 볼세비키 혁명 후 만들어진 군대가 赤軍, 제정 러시아 군이 白軍으로 불린데서 시작된다.

붉은 군대를 건설한 최대의 공로자는 트로츠키다. 레닌 사망 후 트로츠키는 스탈린과의 권력투쟁에 패배하여 멕시코로 망명하는데, 스탈린은 암살자를 보내 도끼로 때려 죽였다.

1937년 스탈린은 적군 수뇌를 숙청했다. 투하체프스키를 비롯한 원수로부터 여단장까지 고위 간부 80%가 처형되었다. 赤軍은 공황에 빠졌고 핀란드와의 전쟁에서 고전했다. 히틀러는 이런 赤軍을 얕보게 된다. 1938년 3월 히틀러와 스탈린은 독·소불가침조약을 맺었다. 여우와 너구리는 서로 상대를 속여 넘겼다고 웃었지만, 마지막으로 속은 것은 스탈린이었다. 1941년 6월 6일 히틀러는 바르바롯사작전으로 소련을 전격 침공했다.

소련군은 철저하게 파괴되었다. 반면 룬트슈테트, 만쉬타인 등 독일군 원수들의 활약은 전설적이었다. 1944년 6월 아이젠하워가 프랑스에 상륙하면서 소련의 反攻이 시작된다. 이후 소련은 미국이 제공한 막대한 군수물자에 힘을 얻고, 주코프 원수 등 새로운 지휘관의 활약으로 1945년 6월 독일군으로부터 항복을 얻어낸다. 1945년 8월 8일 소련군은 소련-일본 중립조약을 팽개치고 일본에 침공한다. 일본은 미국의 원폭보다 더 큰 공황에 빠져 히로히토는 8월 15일 무조건 항복을 수락한다. 이는 원수(怨讐)들 사이의 약속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보여준다.

중공군은 紅軍으로 불렸다. 주덕이 사령원, 모택동이 정치위원이었다. 모택동의 신격화가 진행되며 주덕은 그만한 대우를 받지 못했다. 문화혁명 때 주덕과 함께 홍군의 기둥이던 팽덕회는 홍위병들로부터 핍박을 받았다. 등소평의 아들은 2층에서 던져져 허리가 부러졌다. 모택동은 심지어 공식 후계자로 지명된 임표를 제거하려 했다. 임표는 몽골로 도주하다가 비행기가 폭파되어 죽었다. 1979년 이후 등소평의 개혁개방으로 중국은 살아나고 장쩌민, 후진타오를 거쳐 중국은 이제 세계 제2위 경제를 구가하고 있다.

한반도에서 해방 직후 여운형이 주도한 건국준비위원회는 조선인민공화국(인공) 설립을 선포하였다. 주석에 이승만, 부주석에 여운형이 추대되었지만, 인공은 미군이 진주하기까지 급조된 정치단체에 불과했다. 1948년 9월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생겨났다. 8월 15일 정부수립 직후 여순사건이 일어났다. 반란군은 토벌에 쫓겨 지리산으로 숨어들었다. 이승만 정부는 반공법을 제정하고, 공산당 토멸을 시작한다. 이때 국민은 공산당을 통칭 ‘빨갱이’로 불렀다.

4·19혁명 후 제2공화국의 무능으로 국기(國基)가 흔들리는 가운데 들뜬 학생들은 남북회담을 위해 판문점으로 가자고 외쳤다. 5·16 은 ‘형식적이고 구호에만 그친 반공태세를 재정비 강화하기 위한 것’으로 육군사관생도의 혁명지지 행진을 비롯한 국민의 지지를 받았다. 미국도 자유 우방과의 유대를 강화한다는 혁명공약을 보고 5·16을 인정하였다.

赤軍, 紅軍, 빨갱이로 통칭되는 공산당의 20세기가 문을 닫은 지 18년.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여우와 너구리의 한판 승부가 6월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다. 트럼프가 카터가 될는지, 레이건이 될는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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