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통 미 외교관 ‘스트라우브 논란’ 단상

바른정당 유승민(왼쪽 여) 대표와 데이비드 스트라우브 (David Straub) 세종연구소 세종-LS 객원연구위원이 2017년 12월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바른정당 회의실에서 열린 미 유력 싱크탱크 소속 정책전문가 간담회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뉴시스>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4월 5일자 <중앙일보> 기사 가운데 미국인으로 한국통이 된 데이비드 스트라우브 관련 내용이 나온다. 그의 진위와 관계없이 스트라우브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젊었을 때 어려운 언어를 배울 수 있는 국가로 특히 중국, 일본 또는 한국으로 전출시켜 달라는 그의 요청에 미 국무부는 한국을 제시했다. 2년간 한국어를 배운 뒤 서울의 미 대사관에서 3년 일하는 조건이었다. 그의 부친은 해병대의 일원으로 한국 전쟁터를 누린 참전용사였다. 그는 선뜻 OK했다. 1979년에 한국에 온 그는 1984년까지 있었다.

스트라우브는 “민주화운동가들에게 큰 공감을 갖고 대사관 정치과 생활을 시작했다. 전두환 정권에 대한 혐오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한국을 떠날 무렵엔 지쳤다고 했다. 민주화운동가들이 미국이 전두환을 지지하고 있다며 미국을 비난만 해서였다. 그로부터 15년 만에 정치과장으로 돌아왔는데 더한 반미주의자와 만났다. 노근리 사건과 매향리 사격장 논란, 주한미군기지에서의 포름알데이드 방출사건에 이어 효순·미선양 사건까지 겹쳤다.

필자도 주한미군 관계자와 함께 이런 문제로 고민했다. 그때 한미관계는 최악이었다.

그는 2017년 <반미주의로 보는 한국 현대사>를 내놓았다. 한국에도 비판적이나 애착이 느껴지는 조언을 담았다. 그는 “40년 동안 한국은 내 가족의 일부였고 나의 두번째 집이었으며 내 커리어의 중요한 부분”이라며 “내 나라가 한국의 민족분단을 가져온 역사적 실수를 평화적으로 바로잡아야 하는 절대적 책임을 갖고 있다”고 썼다. 그의 아내는 서울 출신이다.

20년 전 스트라우브와 스탠포드대 동아시아연구소 세미나에서 공감이 가는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말은 같은 어족인 일본말로도 미묘한 내용은 통역이 어렵다. 그의 한국어 실력은 상당했다. 한국에 오래 살며 한국을 사랑하게 된 미국인이 상당히 있다. 스코필드 박사는 3·1운동을 사진으로 찍어 세계에 알린 분이며 정운찬 전 총리의 경기고 학비를 부담했다. 언더우드 선교사 가족은 4대가 한국에 살았다. 이들에게는 조국(祖國)은 미국이나, 모국(母國)은 한국이다.

스트라우브도 이처럼 한국을 알고 사랑한다. 많은 지식인들이 민주화운동을 박정희와 전두환 때문에 시작했다가 반미로 흐르고 종북좌파로 흘러가는 걸 보고 실망하기도 한다.

김대중 대통령은 한미관계가 중요하다는 것을 직접 체험한 사람이다. 이후락에 의해 죽게 된 것을 미국이 구출하였으며, 전두환에 의해 죽게 된 것을 미국이 구명했다. 임동원은 초급장교 시절에 미국 특수전학교를 나왔으며, 나이지리아, 호주 등에서 대사를 지냈다.

근본을 알고 나면 모든 혼란은 명확해진다. 체험은 그 사람의 의식을 철저히 지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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