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아트의 클래식’ 리처드 해밀턴의 ‘연속적 강박’ 전시회가 남긴 것들

[아시아엔=알레산드라 보나보미 기자] ‘Toaster’와 ‘Swingeing London’. 팝아트의 시초 리처드 해밀턴의 대표작이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작년 11월3일 시작해 올 1월21일 끝난 그의 개인전 주제는 ‘연속적 강박’.

1922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리처드 해밀턴은 1938년부터 1940년까지 영국왕립미술원에서 기본기를 닦은 후, 여러 곳에서 미술을 공부하다 1948년부터 약 3년간 슬레이드 미술학교에 정착해 수학했다. 그 시기, 리처드 해밀턴은 런던 현대예술관(ICA)에서 개인 작품들을 전시하면서 동료 아티스트들과 교감을 나눴다.

1950년대, 리처드 해밀턴과 ICA의 예술가들은 보수적이고 경직돼 있던 예술의 권위주의에 도전하고자 젊은 예술가, 작가, 비평가들이 중심이 된 영국의 전위적인 미술 단체 인디펜던트 그룹(IG)을 만들었다.

당시의 해밀턴은 어느 곳에서나 쉽게 볼 수 있던 대량 생산된 이미지와 제품들에 매료됐다. 그는 대량으로 생산되는 이미지 혹은 제품들이 어떻게 소비자들의 구미를 당기고 어떻게 소비되는지에 대해 흥미를 느꼈고, 그 흥미는 팝아트란 새로운 시류의 출발점이 됐다.

리처드 해밀턴은 팝아트에 대해 “대중적이고, 일시적이며, 소모적이고, 저비용 대량생산이 가능하고, 젊고, 섹시하고, 재치 있고, 교묘하며, 매력적인 사업”이라고 정의 내리면서 “가장 순수한 예술가로서 팝아트를 시도한다. 나는 세상에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는 팝아트 아티스트들의 지침이 됐다.

리처드 해밀턴의 지난 개인전은 한국은 물론 아시아 최초의 전시회였다. 아시아에서는 그리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해밀턴은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예술가 중 한 명이다.

실제로 해밀턴은 앤디 워홀, 로이 리히텐슈타인 등과 같은 팝아트 거장들에 영향을 끼쳤다.

Toaster(1966-7)

‘Toaster’

1966년 해밀턴은 오로지 토스터기 한가지 피사체에만 초점을 맞춘 ‘토스터’(Toaster) 초기작을 세상에 선보였다. 이 작품은 약 40여년의 세월이 흐른 뒤 ‘토스터 디럭스’로 재탄생 되기도 했다. 이 작품은 해밀턴이 현대 산업주의를 자신의 작품에 반영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그는 토스터로 유명한 독일브랜드 ‘브라운’(Braun)의 토스터를 모델로 작업하면서 브라운사의 로고 대신 자신의 브랜드 ‘해밀턴’(Hamilton)을 빨간 글자로 새겨 넣었다. 오차 하나 없는 정교한 가전제품이 그만의 아이콘으로 다시 태어난 순간이었다. 그는 새롭게 런칭한 브랜드 ‘해밀턴’을 위해서 사용설명서-해설-를 더하는 재치도 곁들였다.

Swingeing London(1968-69)

‘Swingeing London’

해밀턴은 1967년 신문에 실린 한 장의 사진에 영감을 받아 이 작품을 만들었다. 롤링스톤스의 멤버 믹 재거(오른쪽)와 미술품 딜러 로버트 프레이저가 마약을 복용한 혐의 경찰에 체포돼 수갑을 차고 있는 모습이 포착된 것이다. 1960년대 런던은 ‘Swinging London’(활기차고 멋진 런던)이란 단어처럼 멋쟁이들로 넘쳐났는데, 그 흐름을 이끌어 가던 뮤지션에게 가혹한 잣대를 들이미는 사회를 비꼬며 ‘Swingeing London’(극도로 비판적인 런던)이란 작품명이 탄생했다.

이 작품에서도 그의 작품관은 여지 없이 드러났다. 그는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이미지를 다양한 기법으로 표현해 ‘Swingeing London’를 연작의 형태로 완성해냈다. 아티스트로서의 태도를 지키는 동시에 도덕적 결벽을 강요하는 사회에 대한 비판을 잊지 않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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